경제민주화… 명분과 현실의 딜레마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사실 경제학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최근 정치권에서 말하고 있는 경제민주화도 그래서 의미가 모호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견을 종합하면 대체로 빈부격차 해소, 양극화 해소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기업을 규제해 중소기업의 입지를 강화시키자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정치권은 ‘양극화 해소’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으로 대기업이나 부자를 지나치게 규제하면 시장경제의 근간인 자율과 창의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시장경제의 근본원칙을 비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Cover Story] 경제민주화가 뭐지?…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

#뜨거운 논란'경제민주화'

여야간 다소의 입장 차이가 있지만 정치권은 ‘경제민주화’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을 규제해 중소기업의 입지를 넓혀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단축시키고 의무휴업을 늘린 것이 하나의 정책 사례다. 대형마트 규제는 영세상인과 재래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를 억누르는 정책이 과연 적절한 정책인지는 논란이 많다. 벌써부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등 근로자 수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는 항상 발전하는 업종과 쇠퇴하는 업종이 병존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탄생하면 그로 인해 도태되는 업종이 나타난다. 이때 도태되는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가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최선의 방책은 도태되는 업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근로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전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억누르는 정책이 주로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경제민주화는 비민주적’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재계 목소리를 주로 대변하는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최근 ‘경제 민주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 대다수는 경제민주화가 기업의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고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피해를 준다고 주장했다. 신석훈 한경연 박사는 “경제민주화는 시장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존재하지만 국가 역시 불완전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며 시장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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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의 해법은'시장경제'

양극화를 해소해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명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기업을 억누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면 그 대가는 국민 모두가 치러야 한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대기업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대기업은 더 강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고, 중소기업은 더 강한 중견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더불어 사는 사회다.

최근 빈부격차, 경기 침체의 장기화 등으로 인해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독과점, 공해 등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경기 안정화,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해소 차원에서 강조되고 있다. 양극화를 어느 정도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정답이 없다. 경제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공리주의의 견해에 따르면 시장참여자들이 일할 의욕을 잃지 않은 적절한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제민주화도 이런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지만 자칫 의미가 모호해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인센티브를 꺾는 부작용이 나타나서는 곤란하다.

시장경제의 장점인 자율과 창의는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차별과 인센티브는 혁신의 결정적 모멘텀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폰 미제스는 “침체된 사회에서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와 결합되면 치명적 일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국가가 지속적으로 번영하려면 민주가치와 시장의 효율이 조화와 균형을 갖춰야 한다. 정치권이 ‘양극화 해소’를 고민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지만 시장경제 근본을 흔드는 것은 삼가야 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시장경제 원리와 부합한지를 논의해 보자.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양극화 해소방안을 고민해보자. 시장경제가 도전받는 이유를 토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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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논란 뿌리는 '헌법 119조 1항과 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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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논란이 불거진 것은 최근만은 아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시장이나 기업활동에 각종 규제를 가할 때마다 내세운 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지난해엔 민주통합당이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라는 당내 기구를 발족시키면서 또 한 차례 논쟁이 가열되기도 했다. 우리사회 경제민주화 논쟁의 뿌리는 우리나라 헌법에 있다. 경제부문을 다루고 있는 헌법 제9장(119~127조)을 보면 왜 우리사회에서 경제민주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지 알 수 있다.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자유시장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반면 2항은 ‘국가는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정부에 의한 규제와 시장개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 정당성을 주장할 때 금과옥조처럼 주장하는 조항이다. 9장 123조에서는 농업과 어업, 중소기업 보호 육성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 순환출자금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일감몰아주기 근절, 불공정하도급 근절, 중소서민 상권침해 제한 등등의 많은 규제정책들은 모두 이들 헌법 조항을 근거로 댄다.

우리 헌법이 이런 조항을 두게 된 것은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이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정책적 조항을 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119조 2항을 앞세우지만 1항은 경제의 기본원칙을, 2항은 예외 혹은 보충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