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와 양적완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이 7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 경제동향을 증언한다. 미국 실업률 상승,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한 그의 발언을 통해 향후 통화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Fed가 추가 경기부양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한 응답자는 80%에 달했다. 시장은 추가 부양조치로 3차 양적완화를 꼽는다. - 6월4일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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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경제가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2008년 9월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3년9개월여 만이다. 이번 파국의 주범은 유럽이다. 각국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이 잘못 대응했다간 자칫 1930년대 세계를 휩쓸었던 대공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부동산가격 버블(거품) 붕괴에 따른 금융회사 부실화가 원인이었던 미국과는 달리 유럽의 위기는 △나라 살림 부실(과도한 재정적자) △금융회사 부실 △정치적 지도력 부재 등 악재가 어우러지면서 점차 ‘퍼펙트 스톰’의 양상을 띠어가고 있는 중이다.

세계경제가 재차 수렁속에 빠져들고 있는데도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국은 나라 곳간이 텅 비어 위기에 대응할 수단이 별로 없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도 국가부채가 엄청나 정부의 운신 폭이 좁은 실정이다. 그래서 또다시 거론되고 있는 게 바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대표되는 통화정책 완화다.

양적완화는 기준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췄는데도 경기를 되살리는 효과가 없어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직접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돈을 푸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국·공채나 주택저당증권(MBS)을 사주거나 직접 대출해주는 방식이 동원된다. 인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조장, 꽁꽁 얼어붙은 소비와 투자 심리를 녹여 경기를 살려보자는 게 목표다. 본원통화 공급 확대→시중은행 대출 증가→통화량 확대 및 시장금리 하락→소비 및 투자 진작으로 경기를 부양시키자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런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통해 5조달러 이상을 풀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을 포함한 이들 4개 중앙은행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급한 유동성은 글로벌 GDP(국내총생산)의 8%가 넘는다. 이렇게 풀고도 모자라 세계경제를 살리려면 중앙은행이 다시 돈을 찍어내 무차별로 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다는 뜻이다.

미국의 IB인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경기둔화, 미국 경제지표의 약화, 유로존 경기침체 등으로 글로벌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향후 수개월 내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을 추가 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ECB가 기준금리를 낮추고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취할 것이며, Fed도 추가로 시중 자산을 매입해 돈을 풀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일본 등도 또다시 양적완화를 시행할 것이며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은 기준금리나 지급준비율을 인하해 역시 시중 유동성을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해진 양적완화 조치는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는 걸 막는 등 일정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There is no free lunch)’고 지적했듯 막대한 유동성 팽창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양적완화의 대표적인 부작용(기회비용)으로는 △인플레 기대심리에 따른 국민들의 구매력 약화 △각국 정부의 지속불가능한 재정 정책 △저축자로부터 채무자로의 부의 이전 등이 꼽힌다. 다시 말해 양적완화 정책은 저축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함으로써 저축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중장기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며 자원배분의 왜곡을 통해 실물경제의 자생적 조정능력을 떨어뜨려 궁극적으로 또 다른 경제위기를 야기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Fed의 양적완화는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 하락을 초래, 달러화로 표시되는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려 인플레와 국민 삶의 질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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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가져오기도 한다. 모건스탠리가 “전 세계적인 통화정책 완화가 글로벌 경기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면서도 “통화정책에 대한 과잉 의존으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오랫동안 빚으로 나라살림을 해온 데 따른 것이며, 미국의 금융위기는 부동산 버블에 취해 온 나라가 흥청망청 해댔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이제라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위기를 극복할 묘안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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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는 복지, '모럴 해저드' 부작용 부를 수도
기초생활보장제와 '일하는 복지'
기획재정부가 지난 1일 열린 재정관리협의회에서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안주해 있는 근로능력자들을 가려내 자립과 탈수급으로 유도할 방침을 밝혔다. 총수급 기간을 제한해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에는 단계적으로 수급액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만시지탄이 없진 않지만 이 제도의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 6월4일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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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기초생활보장제는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절대빈곤가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는 제도다. 절대빈곤가구는 △부양 의무자가 없거나 부양 의무자가 있더라도 부양 능력이 없어 사실상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소득과 보유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쳐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월 149.6만원) 이하인 가구다.

이들에겐 △생계·주거 급여(최저생계비 - 소득인정액 차액 지원) △의료급여(본인부담금 일부 제외한 의료비 지원) △교육급여(초·중·고생의 입학금·수업료·학용품비 등 지원) △해산·장제급여(출산 50만원, 장제 50만원 지원) △자활급여(근로능력자 대상 자활근로·자산형성·탈수급 등 지원) 등 총 7개 급여가 지원된다.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에 투입한 예산은 2001년 3조5000억원에서 2006년 5조4000억원, 2010년 7조원, 2011년 7조3000억원, 2012년 7조5000억원 등 매년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는 국민들은 135만~157만명 수준이다. 2011년 말 기준으론 147만명(85만기구)이었으니 가구당 연간 평균 857만원을 지원받은 셈이다.

기초생활보장제는 빈곤 완화에 기여했지만 일하려는 의욕을 줄이고 부정수급자가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수급대상자 147만명 가운데 장애인 노인 등을 제외한 18~64세의 근로능력 보유자는 30만명에 달한다. 수급자가 되면 주민세 비과세, 인터넷요금과 TV 수신료 감면, 영구 임대아파트, 초등학생 교재비, 겨울철 난방유, 건강검진 등이 지원된다. 이들의 실질 소득은 기초생활보장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하는 가구보다 높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기초생활을 보장받는 수급대상자가 일을 해 일정 소득을 올려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면 혜택들이 일시에 중단된다.

이러니 수급자들이 일을 하려 하지 않거나 일하더라도 근로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스웨덴 등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기초생활보장제 혜택기간을 제한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세금을 허투로 쓰지 않고 도덕적 해이도 방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