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가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단지 긍지와 기쁨만이 아니라 용기와 자신감의 원천일 수도 있다. 정체성 개념이 이웃을 사랑하자는 대중적 고취에서부터 사회자본과 공동체주의적 자아 규정이라는 고차원적 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찬사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체성은 또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것도 닥치는 대로 죽일 수 있다. 한 집단에 대한 강한, 그리고 배타적인 소속감은 다른 집단과의 거리감과 분리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집단 내의 연대성은 다른 집단과의 불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우리가 이웃이나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 또는 동료 시민이나 같은 종교의 신도 등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정체성 의식은 그 관계의 강도와 온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정 정체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연대감을 풍부하게 하고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에 대한 최근 문헌을 살펴 봐도, 동일한 사회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모두의 삶을 얼마나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그래서 일종의 자원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적 대면관계와 연대를 통해 서로에 대해 매우 훌륭한 일을 해주는 잘 통합된 공동체가, 그 지역으로 들어온 이주자들의 창문에는 벽돌을 던지는 바로 그 공동체일 수 있다. 배제라는 불행은 포용이라는 선물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수 있다.
나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략…) 혈통(血統)의 조국을 부인하고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는 이데올로기는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左右翼)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風波)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사는[生] 것이다.
(…중략…)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다 지난해 지방 작은 도시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 양지현 씨는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학생 간 친밀도(親密圖)를 그렸다. 일진과 피해학생의 관계, 학생 간 친분 관계 등을 측정해 봤다. 그런데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학생 나민식 군은 친밀도에 아예 없었다. 학교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없는 ‘무관심’ 대상이었다. 양 교사는 “민식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섬’ 같은 존재였고, 친구들이 민식이를 유령 취급했다”고 했다. 일종의 ‘전따’였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학교폭력도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이국적인 외모와 서툰 한국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이나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학생보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에 들어온 ‘중도 입국’ 학생들이 더 많은 폭력을 당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서병훈 군이 그런 사례다. 2년 전 학교에서 친구들은 교사의 눈을 피해 서군을 점퍼로 뒤집어씌운 채 얼굴을 때렸다. 서군이 쓰러지자 이번엔 일진 등이 얼굴을 발로 밟아 코뼈가 부러졌다. 인도네시아인 어머니를 둔 서군은 한국인 아버지를 따라 왔다. 한국인 어머니와 캄보디아인 아버지를 둔 김수미 양도 캄보디아에 살다 최근 한국에 왔다. 친구들은 한국어가 어눌한 김양을 왕따시켰고, 집단 폭행도 했다.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은 도시보다는 외부인이나 외부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군·읍·면 단위 학교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라 근대 이전의 시대가 주로 영토와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자생적 민족주의’에 가깝다면, 근대에는 자생적 민족주의에 나름대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채색을 덧입힌 특정한 형태의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채색’은 여러 가지 형태일 수 있다.
(…중략…) 공세적 민족주의의 대표격인 제국주의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서구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자국을 옹호한 논리다. 유럽 각국이 자신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고취하며 신대륙 원주민을 포함한 여타 지역을 침탈하는 배경에는 언제나 인종적·생물학적 우월성을 고취하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국의 민족이 정(正)이라면, 그들의 침탈대상은 반(反)이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우월하다면, 타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은 열등하다는 철저한 주객의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한 논리이다. 이러한 주객의 이분법적 세계인식은 19세기 이후 형성된 파시즘과 나치즘 등 극단적 민족주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이때 주객의 도식에서는 기존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위치했던 ‘객’의 자리를 유대인이나 다른 인종들이 대신했을 뿐이다. 공세적 민족주의는 종종 국수주의를 표방하면서 타민족 지배를 정당하게 여기며, 자국 민족의 절대적 우위를 이상으로 삼는다. 게르만 민족의 인종학적 우월성을 철저하게 신봉했던 히틀러의 극우적 민족주의는 인류역사에 잔인한 흔적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통해 극우적 민족주의, 인종적 우월주의가 얼마나 피폐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이후에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민족의 이름이 타민족·타국가·타인종을 짓밟는 광란의 살육까지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민족이 인종적·민족적 우월주의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공세적·공격적 민족주의의 얼굴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얼굴이 드러낼 마상에 주의 깊은 분별력으로 무장해야 할 당위성을 얻게 된다.
마 정체성에 토대를 둔 사고방식이 얼마든지 쉽게 야만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면, 그 해결책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호소 자체를 전반적으로 억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 정체성이 폭력과 테러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풍부함과 따뜻함의 원천일 수도 있으므로 정체성 개념을 단순히 일반적인 악처럼 다루는 것은 이치에 별로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호전적인 정체성이 일으키는 폭력은 그 정체성과 ‘경쟁하는’ 다른 정체성들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이해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런 경쟁적인 정체성들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성이라는 폭넓은 공통성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른 수많은 정체성들도 포함된다. 이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런 방식은 정체성에 관한 하나의 특정한 카테고리를 공세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중략…) 한 인간의 정체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한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의 존재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분열과 갈등으로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특정한 하나의 카테고리만 부각됨으로써 생겨나는 편 가르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은 절대로 적절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분열의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단 하나의 굳어진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대척되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정체성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화합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된다.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가 독보적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하는 어느 하나의 협소한 카테고리 속으로 좁혀질 때,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독보적인 정체성이라는 환영은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의 특징인 다원적이고 다양한 세상을 은폐하고 갈등과 분열을 가져온다.
(…중략…) 집단들이 이목을 끌고 우선순위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경쟁할 때, 개인은 다양한 여러 정체성 중 어느 것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는 구체적 맥락에 따라 바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정체성들이 확고히 다원적이며, 하나의 정체성의 가치는 다른 정체성이 지니는 가치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은 특정한 맥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충성과 우선순위들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제 1]> 제시문 [가]의 관점에 근거하여, 제시문 [나]와 같은 사고방식이 어떻게 제시문 [다]에 나타난 사회문제와 연관되는지를 분석하시오. (40점, 700자 내외)
<논제 2]> 제시문 [라]에 지적된 문제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떠한 대안을 세울 수 있는지 제시문 [마]를 참고로 구체적으로 논하시오. (60점, 900자 내외)
해제
논제 설명과 출제의도
제13회 생글논술경시대회 논제는 수험생들이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가 어떻게 집단 정체성을 다루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게끔 문제가 고안됐다. 언론 보도에서도 종종 확인하듯이, 현대의 과도한 개인주의 발호와 공동체 해체 및 절연(絶緣)현상은 심각한 사회폐단으로 지적된다. 집단적 결속력과 연대의식은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범위가 크든 작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필수요소이다.
근래 우리사회에서 한층 더 각광받는 화두로 부상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론은 한 사회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인 낱낱의 역량과 제도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상호신뢰와 연대감, 적극적 사회참여활동 등 공동체적 가치가 정립되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비단 사회자본론뿐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단 정체성은 항상 그 중요성이 강조됐다. 구성원들끼리 스스로의 사회적 정체성에 관해 자부심을 느끼고 서로를 향해 거리낌 없는 도움과 결속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공동체는 여타 집단보다 훨씬 더 앞선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적 정체성이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말은, 반대로 뒤집어 생각할 때 소속집단 외부의 타인에 대해 그만큼 배타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집단 정체성이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을 강조할수록 소외와 차별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배타적 집단 정체성은 여러 이데올로기에서 차용되어 역사적 악영향을 끼쳤고, 현재에도 그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종과 종교, 경직적 이념의 계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투쟁을 벌이는 현상은 주변에서 너무나도 자주 관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단적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떠한 집단에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느끼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가족에서부터 시작해 학교, 지역, 직장, 성별, 종교, 국가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정체성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해 나갈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집단적 정체성을 어떻게 성숙하게 활용하고 발전적으로 형성해 나가느냐이다. 이 고민은 수험생 각자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개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숙고하고 답을 찾았을 것이다.
출제 제시문 설명
제시문 [가]는 아마르티아 센이 저술한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에서 발췌한 글이다. 센은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을 지적하며, 정체성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고한 집단적 정체성은 긍정적 작용도 하지만 동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 [나]는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김구의 ‘나의 소원’에서 발췌, 축약한 글이다. 그런데 김구의 ‘나의 소원’은 보통 자주적 문화국가를 염원하는 대목에 초점이 맞춰져 글의 다른 부분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김구 선생의 절절한 글에는 일제치하의 탄압과 간난신고의 이념분쟁을 겪으며 몸으로 깨우친 민족주의가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문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라든가, ‘혈통의 조국’과 ‘혈족의 동포’ 등의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혈연적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라는 주장은 혈연주의 내지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제시문 [다]는 2012년 5월7일자 신문기사를 인용했다. 간명한 신문기사의 특성상 별다른 부연설명은 필요하지 않으나, 이번 경시대회의 주제 및 다른 제시문과의 연관관계를 고려하였을 때 수험생들이 특별히 눈여겨 읽어야 하는 대목은 마지막 문장이다. ‘학교폭력은 도시보다는 외부인이나 외부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군·읍·면 단위 학교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내용은 집단적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을 확인하게끔 해준다.
제시문 [라]는 이상훈이 집필한 ‘우리에게 민족은 무엇인가:신학, 종교 그리고 민족’라는 책에서 발췌 및 편집한 글이다.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넘어선, ‘유도되고 강화된’ 민족적 정체성이 ‘주객의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타적 논리는 다른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기제로 작동했다는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
제시문 [마]는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 결론부에서 발췌해 축약했다. 센은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하는 집단적 정체성이 자칫 초래할 수도 있는 경직적 사고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다원적이고 중첩적인 집단 정체성의 본질을 깨닫고 맥락에 적합한 이성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한 개인 안에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이 공존함을 깨닫는다면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논제별 요구사항과 답안의 필수구성요소
논제 1번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에 관한 이해 여부를 묻는 논제 1번은, 일반론을 구체론에 적용하는 문제이다. 수험생은 제시문 [가]가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집단 정체성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난 뒤, 이를 구체적으로 김구 선생이 주장하는 혈연적 민족주의와 접목하여 제시문 [다]의 기사에서 보도되는 학교폭력 문제에 적용하면 된다. 제시문 [나]의 민족적 정체성 호소와 제시문 [다]가 말하는 이질적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가]의 논리적 틀 안에서 정확히 연계되면 답안이 성공적으로 작성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답안이 단순한 제시문 반복이나 베끼기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앵무새’ 답안은 문장력은 물론이거니와 독해의 깊이도 의심받는다. 표현의 능숙성은 본인의 이해 여부를 확실히 드러내고 뜻하는 바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이다.
논제 2번
바람직한 집단적 정체성 형성을 모색하는 답안을 작성하기에 앞서 논제의 조건을 꼼꼼히 검토해보자. 이는 논술답안을 작성하는 수험생의 기본 덕목이다. 좋은 견해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논술시험은 ‘질문에 대한 답’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답안 작성에 들어가야 한다. 2번 논제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가장 크게 보면, ①문제 해결 및 예방을 위해 대안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 ②제시문 [라]에서 지적된 문제들이 어떠한 것인지 파악해야 하며 ③그러한 문제가 ‘현재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조건도 놓치면 안 된다. 지나간 시대나 다른 사회가 아니다.
물론 ‘우리사회’는 대한민국 사회로 한정해도 되고, 글로벌 시대인데 굳이 한국으로 한정하기 싫으면 21세기 지구촌 사회로 설정해도 무방하다. 인종, 종교, 지역, 이념 등 현재 우리사회의 목불인견의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④그리고 대안 수립의 거시적 방향성이 이미 제시돼 있다. 특정 카테고리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제시문 [마]를 참고해야 한다. 한 개인에게는 다원적 정체성이 깃들어 있으니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처신하자는 기조에 맞춰 구체적 내용이 구성돼야 한다. ⑤그리고 또 하나, 대안을 ‘구체적’으로 논해야 한다. 본인의 논리적, 창의적 우수성을 보여 주려면 따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으로 기술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히 논제가 이를 확정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답안의 내용은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막연한 논의, ‘허울만 그럴 듯한, 듣기에만 좋은 말’로 답안이 채워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글이 유기적으로 완성된다면 고득점 답안이 작성된다.
홍정원 S·논술 선임연구원 gogoxingxing@naver.com
가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단지 긍지와 기쁨만이 아니라 용기와 자신감의 원천일 수도 있다. 정체성 개념이 이웃을 사랑하자는 대중적 고취에서부터 사회자본과 공동체주의적 자아 규정이라는 고차원적 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찬사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체성은 또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것도 닥치는 대로 죽일 수 있다. 한 집단에 대한 강한, 그리고 배타적인 소속감은 다른 집단과의 거리감과 분리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집단 내의 연대성은 다른 집단과의 불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우리가 이웃이나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 또는 동료 시민이나 같은 종교의 신도 등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정체성 의식은 그 관계의 강도와 온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정 정체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연대감을 풍부하게 하고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에 대한 최근 문헌을 살펴 봐도, 동일한 사회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모두의 삶을 얼마나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그래서 일종의 자원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적 대면관계와 연대를 통해 서로에 대해 매우 훌륭한 일을 해주는 잘 통합된 공동체가, 그 지역으로 들어온 이주자들의 창문에는 벽돌을 던지는 바로 그 공동체일 수 있다. 배제라는 불행은 포용이라는 선물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수 있다.
나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략…) 혈통(血統)의 조국을 부인하고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는 이데올로기는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左右翼)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風波)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사는[生] 것이다.
(…중략…)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다 지난해 지방 작은 도시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 양지현 씨는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학생 간 친밀도(親密圖)를 그렸다. 일진과 피해학생의 관계, 학생 간 친분 관계 등을 측정해 봤다. 그런데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학생 나민식 군은 친밀도에 아예 없었다. 학교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없는 ‘무관심’ 대상이었다. 양 교사는 “민식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섬’ 같은 존재였고, 친구들이 민식이를 유령 취급했다”고 했다. 일종의 ‘전따’였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학교폭력도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이국적인 외모와 서툰 한국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이나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학생보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에 들어온 ‘중도 입국’ 학생들이 더 많은 폭력을 당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서병훈 군이 그런 사례다. 2년 전 학교에서 친구들은 교사의 눈을 피해 서군을 점퍼로 뒤집어씌운 채 얼굴을 때렸다. 서군이 쓰러지자 이번엔 일진 등이 얼굴을 발로 밟아 코뼈가 부러졌다. 인도네시아인 어머니를 둔 서군은 한국인 아버지를 따라 왔다. 한국인 어머니와 캄보디아인 아버지를 둔 김수미 양도 캄보디아에 살다 최근 한국에 왔다. 친구들은 한국어가 어눌한 김양을 왕따시켰고, 집단 폭행도 했다. 마을공동체교육연구소장은 “다문화가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은 도시보다는 외부인이나 외부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군·읍·면 단위 학교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라 근대 이전의 시대가 주로 영토와 혈연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자생적 민족주의’에 가깝다면, 근대에는 자생적 민족주의에 나름대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채색을 덧입힌 특정한 형태의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채색’은 여러 가지 형태일 수 있다.
(…중략…) 공세적 민족주의의 대표격인 제국주의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서구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자국을 옹호한 논리다. 유럽 각국이 자신들의 민족적 우월감을 고취하며 신대륙 원주민을 포함한 여타 지역을 침탈하는 배경에는 언제나 인종적·생물학적 우월성을 고취하는 나름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국의 민족이 정(正)이라면, 그들의 침탈대상은 반(反)이요,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우월하다면, 타민족의 민족적 정체성은 열등하다는 철저한 주객의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한 논리이다. 이러한 주객의 이분법적 세계인식은 19세기 이후 형성된 파시즘과 나치즘 등 극단적 민족주의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만 이때 주객의 도식에서는 기존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위치했던 ‘객’의 자리를 유대인이나 다른 인종들이 대신했을 뿐이다. 공세적 민족주의는 종종 국수주의를 표방하면서 타민족 지배를 정당하게 여기며, 자국 민족의 절대적 우위를 이상으로 삼는다. 게르만 민족의 인종학적 우월성을 철저하게 신봉했던 히틀러의 극우적 민족주의는 인류역사에 잔인한 흔적을 남겼다. 제2차 세계대전의 양상을 통해 극우적 민족주의, 인종적 우월주의가 얼마나 피폐한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이후에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민족의 이름이 타민족·타국가·타인종을 짓밟는 광란의 살육까지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민족이 인종적·민족적 우월주의의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공세적·공격적 민족주의의 얼굴을 하는 순간, 우리는 그 얼굴이 드러낼 마상에 주의 깊은 분별력으로 무장해야 할 당위성을 얻게 된다.
마 정체성에 토대를 둔 사고방식이 얼마든지 쉽게 야만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면, 그 해결책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정체성에 대한 호소 자체를 전반적으로 억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책을 구하기 힘들 수 있다. 정체성이 폭력과 테러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풍부함과 따뜻함의 원천일 수도 있으므로 정체성 개념을 단순히 일반적인 악처럼 다루는 것은 이치에 별로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호전적인 정체성이 일으키는 폭력은 그 정체성과 ‘경쟁하는’ 다른 정체성들이 만들어내는 힘으로 저지할 수 있다는 이해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런 경쟁적인 정체성들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성이라는 폭넓은 공통성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다른 수많은 정체성들도 포함된다. 이는 사람들을 분류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런 방식은 정체성에 관한 하나의 특정한 카테고리를 공세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중략…) 한 인간의 정체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한 것이라는 주장은 우리의 존재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분열과 갈등으로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특정한 하나의 카테고리만 부각됨으로써 생겨나는 편 가르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은 절대로 적절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분열의 경계선으로 작용하는 ‘단 하나의 굳어진 정체성’이라는 개념과 대척되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정체성이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화합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 된다.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가 독보적 영향력을 강하게 발휘하는 어느 하나의 협소한 카테고리 속으로 좁혀질 때,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은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독보적인 정체성이라는 환영은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의 특징인 다원적이고 다양한 세상을 은폐하고 갈등과 분열을 가져온다.
(…중략…) 집단들이 이목을 끌고 우선순위를 차지하겠다고 서로 경쟁할 때, 개인은 다양한 여러 정체성 중 어느 것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는 구체적 맥락에 따라 바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정체성들이 확고히 다원적이며, 하나의 정체성의 가치는 다른 정체성이 지니는 가치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은 특정한 맥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충성과 우선순위들에 대한 상대적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제 1]> 제시문 [가]의 관점에 근거하여, 제시문 [나]와 같은 사고방식이 어떻게 제시문 [다]에 나타난 사회문제와 연관되는지를 분석하시오. (40점, 700자 내외)
<논제 2]> 제시문 [라]에 지적된 문제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떠한 대안을 세울 수 있는지 제시문 [마]를 참고로 구체적으로 논하시오. (60점, 900자 내외)
해제
논제 설명과 출제의도
제13회 생글논술경시대회 논제는 수험생들이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우리가 어떻게 집단 정체성을 다루어야 하는지 스스로 고민하게끔 문제가 고안됐다. 언론 보도에서도 종종 확인하듯이, 현대의 과도한 개인주의 발호와 공동체 해체 및 절연(絶緣)현상은 심각한 사회폐단으로 지적된다. 집단적 결속력과 연대의식은 개인이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범위가 크든 작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회가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필수요소이다.
근래 우리사회에서 한층 더 각광받는 화두로 부상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론은 한 사회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인 낱낱의 역량과 제도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상호신뢰와 연대감, 적극적 사회참여활동 등 공동체적 가치가 정립되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비단 사회자본론뿐만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단 정체성은 항상 그 중요성이 강조됐다. 구성원들끼리 스스로의 사회적 정체성에 관해 자부심을 느끼고 서로를 향해 거리낌 없는 도움과 결속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공동체는 여타 집단보다 훨씬 더 앞선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집단적 정체성이 공동체 구성원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는 말은, 반대로 뒤집어 생각할 때 소속집단 외부의 타인에 대해 그만큼 배타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집단 정체성이 이방인에 대한 배타적 우월성을 강조할수록 소외와 차별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배타적 집단 정체성은 여러 이데올로기에서 차용되어 역사적 악영향을 끼쳤고, 현재에도 그 문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종과 종교, 경직적 이념의 계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투쟁을 벌이는 현상은 주변에서 너무나도 자주 관찰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단적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떠한 집단에 어느 정도의 소속감을 느끼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가족에서부터 시작해 학교, 지역, 직장, 성별, 종교, 국가에 이르기까지 집단적 정체성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항상 존재해 나갈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집단적 정체성을 어떻게 성숙하게 활용하고 발전적으로 형성해 나가느냐이다. 이 고민은 수험생 각자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개진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숙고하고 답을 찾았을 것이다.
출제 제시문 설명
제시문 [가]는 아마르티아 센이 저술한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에서 발췌한 글이다. 센은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을 지적하며, 정체성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부정적 측면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고한 집단적 정체성은 긍정적 작용도 하지만 동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제시문 [나]는 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김구의 ‘나의 소원’에서 발췌, 축약한 글이다. 그런데 김구의 ‘나의 소원’은 보통 자주적 문화국가를 염원하는 대목에 초점이 맞춰져 글의 다른 부분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김구 선생의 절절한 글에는 일제치하의 탄압과 간난신고의 이념분쟁을 겪으며 몸으로 깨우친 민족주의가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문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라든가, ‘혈통의 조국’과 ‘혈족의 동포’ 등의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혈연적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라는 주장은 혈연주의 내지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제시문 [다]는 2012년 5월7일자 신문기사를 인용했다. 간명한 신문기사의 특성상 별다른 부연설명은 필요하지 않으나, 이번 경시대회의 주제 및 다른 제시문과의 연관관계를 고려하였을 때 수험생들이 특별히 눈여겨 읽어야 하는 대목은 마지막 문장이다. ‘학교폭력은 도시보다는 외부인이나 외부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군·읍·면 단위 학교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내용은 집단적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을 확인하게끔 해준다.
제시문 [라]는 이상훈이 집필한 ‘우리에게 민족은 무엇인가:신학, 종교 그리고 민족’라는 책에서 발췌 및 편집한 글이다. 자연스러운 유대감을 넘어선, ‘유도되고 강화된’ 민족적 정체성이 ‘주객의 이분법적 도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타적 논리는 다른 이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의 기제로 작동했다는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
제시문 [마]는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 결론부에서 발췌해 축약했다. 센은 강력한 결속력을 발휘하는 집단적 정체성이 자칫 초래할 수도 있는 경직적 사고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다원적이고 중첩적인 집단 정체성의 본질을 깨닫고 맥락에 적합한 이성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한 개인 안에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이 공존함을 깨닫는다면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
논제별 요구사항과 답안의 필수구성요소
논제 1번
정체성의 양면적 속성에 관한 이해 여부를 묻는 논제 1번은, 일반론을 구체론에 적용하는 문제이다. 수험생은 제시문 [가]가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집단 정체성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난 뒤, 이를 구체적으로 김구 선생이 주장하는 혈연적 민족주의와 접목하여 제시문 [다]의 기사에서 보도되는 학교폭력 문제에 적용하면 된다. 제시문 [나]의 민족적 정체성 호소와 제시문 [다]가 말하는 이질적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가]의 논리적 틀 안에서 정확히 연계되면 답안이 성공적으로 작성된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답안이 단순한 제시문 반복이나 베끼기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앵무새’ 답안은 문장력은 물론이거니와 독해의 깊이도 의심받는다. 표현의 능숙성은 본인의 이해 여부를 확실히 드러내고 뜻하는 바를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이다.
논제 2번
바람직한 집단적 정체성 형성을 모색하는 답안을 작성하기에 앞서 논제의 조건을 꼼꼼히 검토해보자. 이는 논술답안을 작성하는 수험생의 기본 덕목이다. 좋은 견해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논술시험은 ‘질문에 대한 답’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리하고 답안 작성에 들어가야 한다. 2번 논제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가장 크게 보면, ①문제 해결 및 예방을 위해 대안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 ②제시문 [라]에서 지적된 문제들이 어떠한 것인지 파악해야 하며 ③그러한 문제가 ‘현재 우리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조건도 놓치면 안 된다. 지나간 시대나 다른 사회가 아니다.
물론 ‘우리사회’는 대한민국 사회로 한정해도 되고, 글로벌 시대인데 굳이 한국으로 한정하기 싫으면 21세기 지구촌 사회로 설정해도 무방하다. 인종, 종교, 지역, 이념 등 현재 우리사회의 목불인견의 갈등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④그리고 대안 수립의 거시적 방향성이 이미 제시돼 있다. 특정 카테고리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제시문 [마]를 참고해야 한다. 한 개인에게는 다원적 정체성이 깃들어 있으니 상황에 맞게 판단하고 처신하자는 기조에 맞춰 구체적 내용이 구성돼야 한다. ⑤그리고 또 하나, 대안을 ‘구체적’으로 논해야 한다. 본인의 논리적, 창의적 우수성을 보여 주려면 따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구체적으로 기술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특히 논제가 이를 확정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답안의 내용은 반드시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막연한 논의, ‘허울만 그럴 듯한, 듣기에만 좋은 말’로 답안이 채워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조건에 따라 글이 유기적으로 완성된다면 고득점 답안이 작성된다.
홍정원 S·논술 선임연구원 gogoxingxi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