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비싼 와인값 잡기 위해 필요"

"수입 와인에만 특혜주고 탈세 부추길 것"

[시사이슈 찬반토론] 인터넷에서 와인 팔아도 될까요
수입 와인을 인터넷을 통해서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미국 유럽연합(EU) 칠레 등 우리나라와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와인들이 관세 인하분만큼 국내 판매 가격이 내리지 않고 있는 점을 들어 인터넷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와인을 판매하면 경쟁이 치열해져 판매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게 공정위의 생각이다. 반면 주류산업 주무부처인 국세청은 세금 탈루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이다. 청소년의 제한 없는 주류 구입 가능성 등을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터넷 판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FTA 효과를 막는 독과점 수입품 유통구조를 즉각 점검하라고 지시하면서 논의에 더욱 불이 붙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이에 따라 공정위와 국세청 양쪽 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했지만 역시 합의에는 실패했다. 와인 인터넷 판매를 둘러싼 찬반 양론을 알아본다.


찬성

공정위는 2009년부터 경쟁 제한적 시장 진입 규제 개선의 일환으로 독점적 와인 시장에 인터넷 판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면 경쟁이 촉진돼 수입가의 몇 배에 달하는 와인의 유통마진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와인은 수입 도매 소매 등 유통 단계마다 중간 마진이 눈덩이처럼 붙는 데다 각종 세금도 수입 원가의 50%를 넘는다. 1만원짜리 와인이 국내에 들어오면 4만원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공정위 이 외에도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자는 측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면 수입자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돼 가격을 지금보다 20~30%는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에서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도 든다.

국세청이 주장하는 세금 탈루 우려에 대해서는 무선주파수인식기술(RFID)을 활용하면 오히려 투명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위스키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RFID 칩을 수입 와인에 부착하면 국세청이 통관부터 소비자 수령 단계까지 모든 유통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현금으로 판매하는 것보다는 탈세를 줄일 수 있다는 목소리 역시 있다. 온라인 구매를 신용카드 등을 사용해서 한다면 탈세가 오히려 감소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음과 청소년 피해를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청소년 음주 문제는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술을 살 수 있고 술 마시는 것을 자랑인 것처럼 생각하는 음주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엉뚱하게 인터넷 와인 판매가 청소년 음주를 부추긴다고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

사실상의 와인 인터넷 판매 허용 주무부처인 국세청은 세금 탈루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인터넷 무자료 거래 등으로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탈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와인 세수도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RFID를 도입하면 탈세 우려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 RFID 도입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위스키 제품에 RFID 칩을 적용하기까지 막대한 재정비용이 들어갔고 도입 과정에서 위스키 업체와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다고 지적한다.

와인 수입 업체들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는 최근 58개 회원사의 입장을 정리해 통신판매 반대 입장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와인 수입업체의 한 관계자는 “통신판매가 허용되면 가격 경쟁이 잇따르며 자금력을 확보한 대형 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소형 주류도매상이나 소규모 수입상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인 인증 절차 등을 거친다고 하지만 와인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온라인 업체들이 까다로운 인증절차를 만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와인 가격 안정과 규제 완화라는 명분만 있고 국민 건강 문제는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역시 만만치 않다.

국산 주류와 역차별하는 결과가 된다며 반대하는 측도 있다. 현재 위스키 소주 맥주 같은 대중주는 인터넷 판매가 금지돼 있고 안동소주 복분자주와 같은 전통주의 경우만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예외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팔 수 있다. 그런데 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면 국산 위스키 소주 맥주 등에 비해 수입산 와인에 부당하게 혜택을 주는 조치가 된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시사이슈 찬반토론] 인터넷에서 와인 팔아도 될까요
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반대하는 주장 중 세금 탈루 가능성은 사실 큰 설득력이 없다. 다른 상품의 인터넷 판매에도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 별도의 장치를 통해 주세 포탈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본다. 청소년 보호 문제도 현실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청소년들이 사실상 큰 제약 없이 술이나 담배를 구입할 수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를 이유로 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금지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크지 않다.

그렇다고 와인 인터넷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술과의 형평성이다. 국산 소주 맥주 등은 계속 금지하면서 수입 와인만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쥬류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실제 부작용이 얼마나 클지는 둘째치고 사회 통념상 현 시점에서는 시행하기는 곤란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와인의 인터넷 판매는 다른 주류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시행하는 데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그보다는 와인 값의 거품을 뺄 수 있는 다른 방법, 수입이나 유통 단계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별도의 방안을 모색해 보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