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몰락과 탐욕의 대가

저축은행 사태는 한마디로 총체적 부실의 결과다. 저축은행은 ‘서민·중소기업을 위한다’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부문별한 투자로 부실을 늘렸고, 금융당국은 이런 행태에 제대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고객의 돈을 빼돌리고, 원칙을 무시하고 돈을 멋대로 빌려준 것은 모럴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준다.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지기 직전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려 밀항하려다 체포된 어느 저축은행 회장은 우리 사회의 ‘무너지는 양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조차 하다. 무너진 원칙이나 기본은 모두가 힘을 합쳐 이를 바로 세워야 한다.

#투자의 기본이 무시되다

투자의 기본은 포트폴리오다. 만일의 위험에 대비해 다양한 상품에 분산투자하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일반인들의 주식투자에도, 금융회사가 자금을 운용하는 데도 똑같이 적용되는 금융자산 운용의 황금룰이다. 욕심을 줄이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은 이 원칙을 철저히 무시했다. 고객의 소중한 돈을 속된 말로 ‘몰빵 투자’한 것이다. 몰빵의 대상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부동산 PF는 한때 저축은행업계의 ‘캐시카우’(Cash Cow·확실히 돈벌이가 되는 상품이나 사업)로 불렸다. 부동산 시행사에 PF로 돈을 빌려주면 연 10%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저축은행들은 이 수익을 맹신해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보장하며 예금을 끌어모았다. 저축은행들의 몸집이 지방은행에 버금가게 커진 것도 PF대출 때문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PF 대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저축은행들이 담보로 잡은 부동산 가치가 급락하고 시행사들의 부도가 속출하면서 수천억원의 대출자산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반토막이 나거나 심지어 3분의 1로 급감했다. 부동산 PF 대출로 몸집을 키웠다가 ‘PF대출 부실의 부메랑’을 맞은 것이다. 포트폴리오라는 투자의 정석을 망각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다.

[Cover Story] 농락당한 고객…어디에도 원칙은 없었다

#모럴해저드 수렁에 빠지다

투자의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다. 전술을 잘 세워도 상대의 지략이 더 뛰어나면 전쟁에서 패할 수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는 병가지상사로 치부하기엔 너무 도덕적으로 망가졌다는 것이 문제다.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려 밀항을 시도한 저축은행 회장, 2000억원대의 골프장 겸 온천리조트를 차명(소유자를 남의 이름으로 하는 것)으로 보유한 회장, 자신의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회장, 수천억원을 차명으로 부실대출해주고 분식회계(기업이 재정상태나 경영실적을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할 목적으로 부당한 방법으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계산하는 회계)를 한 회장 등은 저축은행의 모럴해저드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신용불량자가 저축은행의 회장이라는 사실은 서글픈 아이러니다. 한마디로 상당수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회삿돈을 자신들의 뒷주머니를 채우는 데 쓴 것이다.

고객의 자산을 투명하게 운용해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기본이다. 고객의 돈을 개인용도로 쓰거나 경영상태를 실제보다 부풀리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포트폴리오라는 투자의 정석도 명심해야 한다. 돈에 대한 탐욕으로 무분별하게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투자하다 큰 손실을 입으면 피해는 고객에게 돌아간다.

#금융당국, 감독 태만하다

대형 저축은행은 하나같이 부동산 PF의 덫에 걸려 파국을 맞았다. 이 지경까지 사정이 악화된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 저축은행들이 수익률에 사로잡혀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 하는 데도 금융당국은 별다는 조치 없이 방관했다. 대형 저축은행의 부실화는 정부의 규제완화가 초래한 측면도 크다. 2001년 저축은행(당시 상호신용금고)의 예금보호한도를 1인당 2000만원에서 다른 시중은행과 똑같은 5000만원으로 상향하면서 고객들의 예금이 늘었지만 저축은행은 이 늘어난 돈을 무리하게 운영하면서 오히려 부실규모가 커졌다.

금감원이나 감사원 출신 고위 관료들이 저축은행에 ‘낙하산’으로 내려가 바람막이 역할을 했던 관행이 저축은행 부실을 키운 요인이 됐다는 목소리도 크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감원·감사원 출신들이 버티고 있으면 아무래도 해당기관의 조사강도가 약해지고 징계수위도 낮아진다”며 “그런 ‘로비효과’를 알기 때문에 금융회사들도 기를 쓰고 영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의(名醫)는 병의 근원을 먼저 찾아내고 거기에 맞는 처방을 내린다. 상당수 저축은행이 모럴해저드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저축은행 추락의 원인이라면 금융당국, 저축은행 대주주, 고객들이 원칙과 도덕의 회복을 위해 각자의 자리를 바로잡아야 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저축은행들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된 이유를 토론해 보자. 사람들이 모럴해저드에 빠져드는 원인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저축은행을 정상화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 지 논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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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다시 상호신용금고로?

[Cover Story] 농락당한 고객…어디에도 원칙은 없었다
상호저축은행(저축은행)의 명칭을 상호신용금고로 회귀시키는 방안이 추진된다. ‘은행’이라는 명칭 때문에 시중은행과 동격으로 여겨 돈을 맡기는 고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저축은행 대주주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법률 개정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끝나면 저축은행 명칭을 상호신용금고로 회귀시키는 안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상호신용금고는 1972년 ‘8·3 긴급경제조치’에 따라 사채업을 양성화한 것으로 서민을 대상으로 한 비은행 금융회사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00여개의 상호신용금고가 무더기로 파산하자 정부는 상호신용금고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추진했다. 2003년 3월엔 명칭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변경했다. 은행법 적용을 받지 않는 제2금융권중 유일하게 ‘은행’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객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신용금고에 스스로 살길을 터주자는 취지였다. 2007년엔 저축은행 최고경영자(CEO)의 직함도 기존의 대표이사나 사장 대신 저축은행장으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은행이라는 명칭이 주는 신뢰는 저축은행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 고객들은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동격으로 보고 저축은행에 돈을 맡겼다. 예금금리가 시중은행보다 1%포인트 정도 높은 것도 저축은행으로 고객이 몰리는 요인이었다.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저축은행을 사금고화해 각종 비리를 저질러도 금융감독원이 대주주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저축은행들이 사실상 ‘감독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비리의 온상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