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 유럽 이어 北美로 ‘영토 확장'

한·미 FTA와 한국 경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3월15일 0시에 공식 발효된다. FTA 발효와 함께 양국은 단계적으로 모든 수입상품의 관세를 철폐한다. 우리나라는 작년 7월 유럽연합(EU)에 이어 거대 경제권 두 곳과 모두 FTA를 발효했다. 아시아에서 처음이다.
-3월13일 연합뉴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한·미 FTA와 한국 경제 & 국민연금과 10%룰
한·미 FTA가 우여곡절 끝에 협상 타결 4년10개월만에 발효됐다. FTA는 2개 이상 국가나 지역이 교역에서 서로 배타적 특혜를 부여하는 양자 협정이다. 쉽게 얘기하면 서로 시장을 개방해 양국 국민이 보다 질 좋고 우수한 제품을 싸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서 우리나라가 9061개(미국으로부터의 전체 수입 품목의 80.5%), 미국은 8628개(한국으로부터의 전체 수입 품목의 85.5%)의 수입상품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승용차는 FTA 발효 4년 후 관세가 없어진다. 한국은 관세를 8%에서 4%로 내리고 4년 후 완전히 철폐한다. 농업 분야에선 품목 수 기준으로 37.9%, 수입액 기준으로 55.8%가 발효 즉시 관세가 없어진다. 한국은 소고기 돼지고기를 포함해 30개 품목의 경우 수입 물량이 급증하면 세이프 가드(safe guard)를 발동해 관세를 추가로 부과할 수 있다. 세이프 가드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수입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국내 소비자 후생이 커진다. 포드와 크라이슬러가 자동차 가격을 낮추는 등 일부 수입상품에선 벌써 가격인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5000만원대 수입 승용차의 경우 400만원가량 가격이 내리고 만원짜리 와인은 2000원, 10만원짜리 가방은 9000원의 관세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또 인터넷으로 미국산 가방이나 의류를 구입해 특송화물로 받을 경우에도 상품가격이 200달러 이내면 관세를 물지 않는다.

둘째는 국내 기업들의 미국 시장 진출 확대다. 미국은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23%를 차지하는, 단일 국가로는 가장 큰 거대 시장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은 한·미 FTA 발효 후 10년간 GDP가 5.7% 늘어나 35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셋째, 외국 기업이 한국을 수출전진기지로 삼기 위해 몰려들면서 고용 기회가 확대된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 EU 아세안과 FTA를 체결한 나라다. 한국에서 제품을 만들어 이들 국가로 수출하면 관세 혜택을 받아 자기 나라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것보다 경쟁력이 높다. 일본 섬유업체 도레이첨단소재가 구미에 2020년까지 총 1조3000억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 건 이 때문이다.

넷째, 국내 경제의 효율성 증대다. 한·미 FTA로 시장이 넓어진 반면 기업들이 직면하는 경쟁의 강도는 훨씬 세졌다. 예전에는 한국내에서만 통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으나 이제 미국에서도 통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울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은 국내 산업의 체질을 단련시키고 법률 회계 등 낙후된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미 FTA는 전략적 이유로도 필요하다. 중국이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이어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마당에 이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지렛대는 미국밖에 없다. 한·미 FTA는 동북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FTA를 빨리 맺자고 안달인 것도 한·미 FTA가 전략적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뒤따르듯 한·미 FTA에도 비용이 있다.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일부 분야는 도태될 수 있는 것이다. 농·축산업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농수산업과 농어민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4조1000억원의 재정자금을 직접 지원하고, 간접적으로 30조원에 달하는 세제 지원을 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한·미 FTA는 4월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의 핵심 이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이기면 미국과 FTA를 재협상하든지 아예 폐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한·미 FTA는 대통령이 폐기 의사를 미국 측에 통보하면 그걸로 효력이 끝난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 6·25전쟁 후 60여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자유무역 덕분이다. 1996년 국내 유통시장을 전면 개방했을 때 한국 기업들이 도태될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월마트 같은 세계적 유통기업들은 이마트 등에 밀려 한국에서 철수했다. 한·칠레 FTA 체결로 칠레산 포도 수입이 자유화된 이후에도 충북 영동의 포도 농가는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시장 개방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는 우리가 얼마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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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주식 한 종목을 10% 넘게 사도 될까?

국민연금과 10%룰
국민연금이 상장사 주식 보유 한도를 10%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한다. 그간 상장사 지분율이 10%를 넘는 순간 각종 공시 의무 등이 생기는 것(10% 룰)을 우려해 투자 지분을 10% 아래로 유지해 왔으나 기금 규모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10% 룰을 유지하는 게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3월13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한·미 FTA와 한국 경제 & 국민연금과 10%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엔 ‘5%룰(rule)’과 ‘10%룰’이라는 규정이 있다. 둘 다 한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취득하면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이다. ‘5%룰’은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새롭게 취득하거나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가 1% 이상 지분을 사거나 팔때 5일 이내에 감독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규정이다. 5%룰은 대주주 변경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한편 갑작스러운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에 대해 대주주가 방어할 시간을 줘 경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10%룰’은 한 펀드가 보유 자금의 10%를 초과해 한 종목에 투자하거나, 한 회사 전제 발행주식의 10%를 초과해 단 한 주라도 더 취득할 경우 해당 내역을 5거래일 이내에 감독당국에 보고토록 한 제도다. 예를 들어 펀드 자산이 100억원이라면 한 종목 투자 한도는 10억원으로 제한된다. 10%룰 역시 기업 경영이 특정 펀드나 기관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 펀드 수익률이 특정 회사의 주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그동안 종목당 보유 비율이 10%를 넘지 않도록 투자를 조절해왔다. 지분율이 10%가 넘으면 일반 투자자가 추종 매매해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고 공시업무도 과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금 규모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10%룰을 지키고선 투자할 만한 종목이 별로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게 10%룰 완화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작년 말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 자산은 약 350조원으로 이 가운데 63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보유 지분 확대는 기업의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연금을 어떻게 운용할지는 사실상 정부가 결정한다. 따라서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기업의 경우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소지가 큰 것이다. 이 때문에 10% 이상 투자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는 제약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