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무차별 진출로부터 전통상인 지켜야"

"재래시장 살리는 효과 적고 소비자 불편만 키워"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전국 지자체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전주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난 11일부터 실제 규제를 시작했다. 전주시는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과 심야시간대(밤 12시~오전 8시)에는 대형마트와 SSM이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지난 11일 전주시내 18개 SSM은 모두 문을 닫았으며 대형마트의 경우는 유통산업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이 마무리되지 않아 일단 정상 영업을 했다. 서울에서는 강동구의회가 최근 관련 ¼조례를 통과시켜 대형마트와 SSM은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고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에는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규정을 어길 때는 1000만~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뒀는데 강동구의회는 이르면 3월 중순부터 이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영업규제를 시행해 나감에 따라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과 실효는 적고 소비자들의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입장이 팽팽하다.현재 전국에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는 대형마트는 홈플러스 70개점과 이마트 10개점 등 약 80개가 있다.


찬성

대형마트와 SSM 규제에 찬성하는 측에서는 대기업 자본이 무차별적으로 골목 상권까지 파고들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전통시장, 소상공인들이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정 범위 내에서의 영업제한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반성장 공생발전, 그리고 상생의 취지에 비춰봐도 대형 자본의 무제한적인 유통시장 진출은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야간 운영에 따른 에너지 과소비도 줄일 수 있고 직원들의 근무환경 개선에도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많다. 녹색소비자연대 측은 “대형마트가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지만 경쟁적 유통구조인 동네상권이나 재래시장이 몰락하게 되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한 영업을 하게 돼 결국에는 소비자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주시 전통시장 상인연합회는 “대형마트로 집중된 고객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활기를 띠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들은 대형마트 입점자들이 부분적으로 피해를 보겠지만 고사 위기에 처한 영세상인에 비할 바가 아니라며 상생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참여연대도 “근로 건강권 보호와 지역경제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상생을 위한 강력한 후속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외국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든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까르푸와 같은 대형마트들은 도심 외곽에 자리잡도록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영업시간도 제한해 심야 시간에는 동네 작은 가게들이 영업을 독점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반대

대형마트 등의 영업을 제한해도 동네상권과 재래시장을 살리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 2007년에 발표된 ‘대형마트 영업일수 및 영업시간 규제가 소비 및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할 경우 소비 위축 등의 영향으로 4조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하는 반면,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등 소매업 총매출 증가는 1조5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2007년 이후 최근 5년 사이 대형마트에 대한 중장년층의 의존율이 높아지고 인터넷 주문 배송 등 새로운 영업전략이 도입되면서 재래시장 매출 증가율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불편을 들어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이미 주말이나 심야에 몰아서 먹거리 등을 쇼핑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주말 영업을 금지시키면 맞벌이부부나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이 겪을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점을 든다. 지역 고용 사정도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대형마트에 입점하거나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수입도 줄어든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실제 전주시내 대형마트 입주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자신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처사라며 비난하고 나섰다. 정부가 장기간 추진해 온 유통서비스 혁신이나 유통근대화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유통근대화는 한마디로 농수산물 등의 복잡한 유통단계를 줄여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소비할 수 있게 하고 물가도 잡자는 것인데 이는 구매력 있는 대형마트 등이 산지에서 직접 대량으로 물건을 떼어와야 가능하다. 지금와서 대형마트의 지방 진출을 막는다는 건 이런 유통서비스 혁신을 포기하는 셈이 된다는 지적이다.

생각하기

사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나 SSM의 영업규제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그곳을 찾는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올지는 의문이라며 그보다는 정부가 전통시장 시설에 더 투자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많다. 전국상인연합회의 한 관계자가 “동네슈퍼와 전통시장이 더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유통구조 혁신에 의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상품권 활성화, 현대적이고 깨끗한 시설 확대 등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이 부분도 정부가 더 고민해줬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그런 점에서 SSM 등에 대한 규제는 그 자체보다는 지역 소상공인이나 전통시장 상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 등에 대한 규제는 대형 자본에 대한 응징과 같은 차원에서 사람들의 속을 좀 후련하게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실제 전통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좀 더 긴 안목에서 유통산업 근대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월마트나 프랑스의 까르푸가 처음 국내에 상륙했을 때 이들이 머지 않은 미래에 국내 유통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국내 시장에서 실패를 맛보고 철수했다. 시장이란 그렇게 단순히 자본의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것이다. 대형마트나 SSM 규제, 유통근대화도 좀 더 넓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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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3월11일자 보도기사

전북 전주지역의 기업형슈퍼마켓(SSM)들이 11일 모두 문을 닫았다. 전주시의회가 매월 둘째와 넷째주 일요일에는 의무적으로 영업을 중단하도록 한 조례에 따른 것으로, 이날이 조례가 적용된 첫날이다. 전주지역의 SSM은 모두 18개이며, 사전에 본사와의 협의를 거쳐 모두 휴무 방침을 정했다고 전주시는 설명했다. SSM들은 며칠 전부터 매장 입구에 휴무 안내문을 내걸었으나 미처 알지 못한 채 찾아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고객이 적지 않았다.

SSM들이 일제히 의무휴업을 수용한 것은 최고 3000만원에 달하는 과태료 부담에다 불매운동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을 규정하는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이날 정상 영업했다. ‘반쪽’ 의무휴업인 탓에 동네 슈퍼마켓과 전통시장이 얻은 반사이익도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전통시장 상인 정점자 씨(56)는 “SSM을 찾았다가 되돌아나온 손님들이 가까이 있는 전통시장으로 오는 사례가 더러 있다”며 “그러나 많은 수는 아니어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대형마트까지 한꺼번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