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지로 '압도적 승리'

#러시아 영향력 확대될듯

#정치적 혼란 가능성도
[Global Issue] '돌아온 차르'  푸틴,   더 강한  러시아  기치 올릴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60)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집권에 성공했다. 러시아 헌법상 3연임이 불가능해 2008년 대통령직을 내놓고 총리로 내려온 푸틴이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을 다시 꿰찬 것이다. 연임이 가능한 상태여서 앞으로 12년간 러시아 대통령직을 수행할 가능성도 높다. ‘차르’(러시아 황제)로 불리는 푸틴의 대통령 당선으로 러시아는 ‘더 강한 대국’의 기치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부정선거 등의 논란이 확산되고 있어 당분간 내부적으로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푸틴의 압도적 승리였다. 푸틴은 지난 4일 실시된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63.7%의 지지율로 임기 6년의 대통령에 당선됐다. 최대 야당인 공산당 당수 겐나디 주가노프가 17.8%, 재벌 출신 무소속 후보 프로호로프가 7.98%로 3위를 차지했다. 푸틴은 당초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연임하면서 고유가를 등에 업고 ‘강한 러시아’를 외치며 나름 경제를 활성화시킨 푸틴에 대한 향수가 강했고, 강력한 라이벌도 없었다. 지지는 도시보다 농촌이 높았다. 전제 지지율은 63.7%였지만 모스크바에선 47%만이 푸틴을 지지했다. 수도에서 푸틴 찬성이 절반을 넘지 못한 것이다.

푸틴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국가안보위원회(KGB) 요원을 거쳐 3선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작은 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유도와 삼보(러시아 격투기) 등을 익혔고, 이를 자신을 ‘강한 러시아’의 상징으로 포장하는 데 이용했다. 푸틴은 1999년 8월 총리에 올랐고, 그해 12월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이 건강문제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며 대통령 대행을 맡았다. 이듬해 대선에서 승리하며 권력을 잡았다.

눈발이 오락가락하던 4일(대선 당일) 밤 푸틴은 크렘린궁 광장에 마련된 연단에 올랐다. 그는 운집한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혁신과 진보에 대한 열망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싸움에서 이겼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팔을 치켜들며 “러시아에 영광을”이라고 외치던 푸틴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강한 이미지의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일부에선 부드러운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연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푸틴은 주요 국정 현안에선 ‘반부패’와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강한 리더십을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그의 발언이 이를 암시한다. 푸틴은 지난달 23일 모스크바 유세에서 “우리는 정복자들의 국가다. 조상 대대로 그런 유전자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다시 승리할 것이다”라고 외쳤다. ‘강한 러시아주의’와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도래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사실 푸틴의 뒤를 이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보다 카리스마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집권 3기를 맞은 푸틴이 미·중(G2)시대에 세력 판도의 균형추 역할을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과 결정적 갈등은 피하면서 적당한 수위의 갈등을 야기해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일 것이라는 얘기다. 경제 문제는 미국에 편승하고, 군사·안보 문제는 중국 인도와 발을 맞춰 미국을 견제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부주석이 이끌게 될 중국과는 밀월관계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 부주석은 올가을 후진타오를 이어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푸틴의 대선 성공으로 향후 양국관계는 낙관적”이라고 논평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향후 푸틴의 러시아가 중국을 견제해야 할 상황도 빈번히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이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고 있지만 상당 기간 대선 후유증으로 러시아가 혼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푸틴도 이런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인지 “누구와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또 푸틴이 대선 과정에서 엄청난 공약을 쏟아낸 것도 부담이다. 전문가들은 푸틴이 선거공약을 모두 지키려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전 세계 석유생산량 1, 2위를 다투고 있다. 경제개혁 과정에서 기업들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반푸틴 세력은 이번 대선이 부정선거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주가노프는 “부정선거 결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시위를 선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위로 이번 선거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푸틴 당선자는 “한번도 야권과 대화를 거부한 적이 없다”며 야당 측과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푸틴이 다시 이끌 러시아는 당분간 혼란을 겪을 가능성은 있지만 ‘강한 러시아’의 기치는 한층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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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신흥재벌 '올리가르히' 손 보나

[Global Issue] '돌아온 차르'  푸틴,   더 강한  러시아  기치 올릴까
블라디미르 푸틴의 재집권으로 러시아 정치·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신흥재벌을 뜻하는 ‘올리가르히’의 운명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부패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안정적 집권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푸틴이 올리가르히 개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올리가르히는 페레스트로이카 시절 옛 소련이 30가지 경공업 분야에서 개인사업을 허용하면서 등장했다. 1990년대 러시아가 수렁에 빠진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막대한 국유자산을 매각할 때 국유자산을 각종 편법을 통해 헐값에 인수하면서 부를 쌓았다. 푸틴 당선자는 대선운동 기간에 올리가르히들에 “1990년대에 정직하지 못하게 국유자산을 헐값에 넘겨받은 만큼 이제 그에 상응하는 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푸틴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올리가르히들을 ‘손봤던’ 과거가 있다. 푸틴은 2000년 집권하자마자 “원숭이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올리가르히들에 칼을 들이댔다. 반기를 들었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로고바자그룹 회장과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모스트 회장은 푸틴의 탄압에 밀려 영국과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블라디미르 포타닌 인테로스 회장과 바기트 알렉페로프 루코일 회장, 블라디미르 카다니코프 아브토바즈 사장 등에겐 탈세 혐의로 각각 1억달러 이상의 과징금을 물렸다.

한편 일각에선 향후 푸틴의 올리가르히 개혁이 시늉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아랍어 방송 알자지라는 “러시아 정치 엘리트들과 올리가르히가 이해를 공유해온 그간의 큰 틀에는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