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줄잇는 '공짜 복지' 공약… 경제 성장은 어찌하라고 !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가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정부로부터 평생 받을 수 있는 추가 혜택은 각각 6824만원(새누리당 공약 기준), 1억8640만원(민주통합당 공약 기준)이다. 초·중·고등학교에선 아침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대학 등록금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장병들의 급여가 크게 올라가고 취업준비 수당도 지급된다. 만 5세까지는 정부로부터 매달 30만원씩 양육수당도 받는다. 의료비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주요 총선 공약을 토대로 만든 가상 시나리오다. 어느 공약 하나 솔깃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정작 이런 재원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달하느냐의 본질적 문제는 정치인 대다수가 회피한다. 쇼핑 리스트를 들고 마트(시장)에 가면서 정작 카드(돈)는 빼놓고 가는 격이다.

연일 쏟아지는 무상복지 공약

‘요람에서 무덤’에 걸친 선심성 공약들이 연일 쏟아진다. 새누리당은 5세 미만의 아동에겐 최대 월 30만원의 양육수당을 지급한다는 입장이고, 민주통합당은 5세 이하 아동에겐 월 20만~70만원의 보육료 전액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학교의 무상급식은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초·중·고 아침 무상급식을 4·11 총선공약으로 검토중이고,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가 당의 핵심 정책임을 분명히 했다.

대학생 혜택도 크게 늘어난다. 새누리당은 국가장학금제도를 만들어 연간 개인별 평균 장학금 액수를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높인다는 방침이고 민주통합당은 등록금 자체를 절반으로 낮춘다는 복안이다. 입대하면 월급과 별도로 매달 30만원씩 ‘사회복귀지원금’을 준다는 내용도 공약에 포함돼 있다. 월급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고졸 취업준비 수당도 연간 최대 300만원까지 지급되고 중소기업 취업 예정자 등록금 지원(연간 최대 700만~1000만원)도 공약사항이다. 전·월세 대출 이자 경감, 입원 진료비 건강보험 보장률 90%로 상향 조정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홀리는 공약들이다. 대기업 청년 의무 고용, 경로당 난방비 등을 제외하고 굵직한 것만 계산해도 공약으로 추가되는 1인당 복지혜택은 새누리당이 6824만원, 민주통합당이 1억8640만원에 달한다. 민주통합당의 액수가 큰 것은 무상의료 공약 때문이다.
[Cover Story] 줄잇는 '공짜 복지' 공약… 경제 성장은 어찌하라고 !
복지와 세금은 동전의 양면

복지 강화가 건강한 사회의 근간임은 분명하다. 노후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절대적 빈곤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빈부격차 확대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복지라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국가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단계에 진입하면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욕구는 더 커진다.

하지만 복지는 재원(돈)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 아무리 명분이 그럴듯해도 재원에 대한 대책 없이 선심성 구호만 내거는 것은 정치권의 무책임한 ‘공약(空約)’일 뿐이다. 재원 확보는 결국 세금을 늘리는 것이다. 세금은 ‘세원(稅源·세금을 거두는 대상)은 다양화하고 세율은 낮추는 것’이 원칙이다. 부당한 탈세를 차단하는 것도 세수 확보의 기본이다.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세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표를 얻는 데 부담이 된다는 계산으로 ‘1% 대 99%’라는 대립적 구도를 만들어 1%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는 것은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혜택을 받는 만큼 국민들 골고루가 부담을 나눠 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복지라는 명분이 정치인들의 표를 얻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포퓰리즘에 하향평준화 우려

정치권의 포퓰리즘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성장에 필수적인 인프라 예산을 복지 쪽으로 돌릴 경우 성장잠재력이 허약해져 궁극적으로 국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필리핀 태국 등은 이러한 포퓰리즘의 휴유증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대표적 나라들이다. 지나친 무상복지는 국민들의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좌승희 서울대 겸임교수(제도경제학회 회장)는 “역동적인 경제주체를 역차별하고 취약한 계층만 우대하는 정책들은 경제 활동의 동기부여를 차단해 하향평준화를 조장한다”며 “한국 민주주의는 포퓰리즘 민주주의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대외적으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금융부문에서 국부(國富)가 유출되는 상황에서 복지 수요의 급증으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복지 욕구도 충족시키는 최상의 방책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몸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단 것’만을 주겠다고 선동하는 정치권, 후세들이 어떤 부담을 지든 당장 ‘입에 맞는 단 약’에 현혹되는 유권자들이 많을수록 국가 백년대계의 기반은 그만큼 취약해진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논술 포인트

무분별한 복지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와 포퓰리즘이 국가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토론해봅시다. 경제성장과 복지포퓰리즘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보고, 복지를 위한 합리적 재원 확충 방안도 논의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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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 확대는 지속 불가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일침

“세금 인상 없는 복지 확대는 한마디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201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리스토퍼 피사리데스 런던정경대(LSE) 경제학과 교수(사진)가 정치권의 장밋빛 복지 공약 남발에 일침을 가했다. 피사리데스 교수는 지난달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코리아 2012’ 국제회의에서 주제발표와 기자회견을 통해 “세금과 복지는 함께 움직인다”며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수준으로 복지를 높이려면 결국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생발전에 대해서는 “기업은 기본적으로 주주와 소비자를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며 “공생발전이란 취지는 좋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없다면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단언했다. 최근 중소기업과 영세 상공인이 대기업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특혜나 부정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적 경쟁우위는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다만 영세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피사리데스 교수는 “불평등을 축소하기 위해 정부가 고소득자에게 과세하는 것은 성장에 필요한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와 복지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 규제의 실패”라고 평가했다. 또 “자본주의가 내부 문제 때문에 자멸할 것이란 지적이 있지만 현재까지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체제는 찾기 어렵다”며 “자본주의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소득 불평등 등 약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