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으로 고용시장 찬바람



#독일·미국으로 '엑소더스'

#'급한 불'은 끈 그리스
[Focus] PIIGS의 또다른 비극… 젊은이들이 떠난다
포르투갈 사람 10만명이 작년에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 스페인은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민간 사람이 국내로 들어온 사람을 추월했다. 그리스에서는 수만명이 짐을 꾸려 독일로 향하고 있다. 재정위기와 성장동력 상실로 신음하고 있는 ‘PIIGS(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에서 노동인구가 다른 나라로 탈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떠나는 PIIGS의 또 다른 비극이 현실화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견디지 못한 PIIGS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나고 있다. PIIGS 국가 대부분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을 실시하면서 고용 사정도 나빠지고 있다. 실업률은 10~20%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청년실업(16~24세)은 더 심각하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청년실업률은 50%에 육박, 젊은이들의 절반가량이 실업자다.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도 청년실업률이 30%대에 이른다. 경제가 성장을 멈추자 희망을 상실한 젊은이 등 실업자들이 조국을 등지면서 PIIGS 국가들은 비어가고 있다.

과거 이민자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불렸던 스페인.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2008년까지 매년 평균 50만~60만명의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스페인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9월 자연 출생을 제외한 인구는 5만명이 줄어들었다. 1990년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역전 현상이다.

포르투갈에서는 작년에 인구의 1%가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브라질 등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나 자원개발이 활발한 앙골라 등으로 향했다. 2010년 초부터 작년 6월까지 18개월간 브라질에서 워킹비자를 받은 포르투갈인만 5만2000명에 달한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스페인에서 건축설계사 엔지니어 등 고급 인력도 흡수하고 있다. 브라질은 실업률이 5%대로 ‘완전 고용’에 가깝다. 또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등을 앞두고 각종 개발계획이 예정돼 있어 고학력 전문인력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PIIGS 국가를 떠난 사람들을 흡수하고 있다. 작년 상반기 독일로 이민온 사람은 43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나 늘었다. 그리스 출신 이민자가 9000명으로 84% 늘었고 스페인에서도 7200명이 넘어왔다. 구제금융을 받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일 언어권인 미국과 호주로 향하고 있다.

WSJ는 앞으로 유럽 엑소더스가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가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인구의 유출이 남유럽의 미래를 더 어둡게 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유럽을 떠나는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경제 재건에 필요한 두뇌들이어서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정책연구기관인 미그레이션폴리시인스티튜트의 데모트리오스 파파데메트리오 대표는 “유럽 경제의 여건이 나아졌을 때 도약을 주도할 핵심 인재들이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으려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다. 낮은 취업률과 세금 걱정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에서 MBA 과정을 개설한 학교 세 곳 중 두 곳은 지원자가 줄었다. 명문으로 꼽히는 스페인 네바라대 IESE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지원자 수는 10% 이상 감소했다.



그리스에 대한 1300억유로(194조원)의 2차 금융지원안이 최종 확정됐다. 이로써 그리스는 다음달 20일 만기가 돌아오는 145억유로의 국채를 상환할 수 있게 돼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속된 긴축정책으로 성장동력을 잃은 그리스가 국가 부채를 계획대로 줄이지 못해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은 지난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2014년까지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장 클로드 융커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은 “그리스는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긴축을 통해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160%인 국가부채 비율을 2020년까지 120.5%로 낮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 보험사 등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 채권단은 원금의 53.5%를 탕감해준다. 이에 따라 그리스가 민간 채권단에 지고 있는 부채(2000억유로)는 1000억유로 아래로 떨어진다. 민간 채권단은 지난해 유럽 정상들과 탕감 비율 50% 안에 합의했지만 그리스의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자 추가 탕감을 결정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 국채로 얻은 수익을 그리스에 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을 받더라도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설리 한국경제신문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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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성장을" … 영국 등 12개국, EU집행委에 공동서한

‘성장이냐 긴축이냐.’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경제정책의 초점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긴축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에 맞서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이 고용과 성장 중심의 정책을 주장하며 단체행동에 나서 주목된다.

영국 등 EU 12개국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열린 20일 헤르만 반롬푀이 EU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에게 “긴축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과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서한을 보냈다. 5쪽 분량의 서한에 서명한 나라는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이다.

이들은 “지금의 위기는 성장의 위기이며 긴축정책은 성과 못지않게 많은 폐해가 있고 한계가 드러났다”며 “시장 접근과 경쟁을 방해하는 EU 내의 규제를 철폐하고 보호무역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내 서비스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아시아와 중남미 등 신흥국가들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도 EU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 서한은 내달 1~2일 EU 정상회의에 대비해 EU 경제정책의 전환을 제안하기 위해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등이 주도해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몬티 총리는 “그리스 위기와 관련한 긴급 상황은 이제 지나갔다”며 성장에 집중할 에너지를 빼앗는 긴축 관련 협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로존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긴축정책을 주도해온 독일과 프랑스는 서명을 거부해 갈등 양상을 드러냈다. 서한에 서명한 국가의 한 고위 관리는 “독일과 프랑스는 역내 서비스시장 개방 확대 등에 대한 제안을 지지하지 않았다”며 “두 나라는 자신들이 초안을 만든 것이 아니면 늘 서명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