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50) 수상한 고객들의 도덕적 해이
야구선수 출신의 주인공 배병우는 현재는 잘나가는 보험설계사다. 몇 해 전에는 우수한 영업실적을 올려 보험왕에 올랐고, 최근에는 자산관리회사로부터 고액의 연봉에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은 상태다. 병우가 꿈꾸던 ‘대한민국 상위 0.1%’가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잘나가던 그의 인생이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꼬이기 시작한다. 고객 중 한 명이 그의 말을 듣고 술을 마신 채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던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고로 병우는 자살방조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회사는 고객의 죽음이 보험금을 노린 고의적인 사고는 아닌지를 가리기 위해 내사에 착수한다. 궁지에 몰린 병우는 과거 보험왕을 차지하기 위해 자살 전력이 있는 고객들과 보험계약을 체결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이상은 2011년 개봉한 류승범 주연의 영화 ‘수상한 고객들’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영화는 주인공 병우가 고객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펼치는 좌충우돌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보는 내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곳곳에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고 위험에 스스로 노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상한 고객들과 보험계약을 채결한 병우는 물론 한때는 잘나가던 보험맨이었지만 경기 악화로 고시원을 전전하며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오 부장,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4남매를 키우는 비정규직 환경미화원 최복순, 그리고 사채 빚에 허덕이며 버려진 버스 안에서 남동생과 살아가는 소녀가장 소연과 틱장애를 앓고 있는 노숙자 영탁까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그들이 처한 현실은 이 영화가 결코 가벼운 코미디 영화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들 모두는 보험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보험 가입의 목적 자체가 달랐다. 일반적으로 보험은 가입자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신체적 혹은 금전적인 손실을 당했을 경우 이를 보상받기 위해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고 주기적으로 약정된 금액을 납입하는 거래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 속의 수상한 고객들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함으로써 보험금을 타는 것이 목적이었다.

한편 보험회사의 최대 목표도 다른 여타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이윤 극대화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고객들에게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는 보험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보험계약 체결 후 발생할 수 있는 보험가입자들의 행동변화다. 예를 들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A씨가 사고로 인한 피해를 보험회사가 보상해 줄 것을 믿고 전보다 운전을 난폭하게 하거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삼는다고 하자. 이럴 경우 보험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그만큼 높아지기 십상이고, 실제로 사고가 발생해 보험금이 지급되면 회사는 손실을 입게 마련이다. 이와 같이 보험가입자가 보험가입 후 전보다 위험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는 것을 가리켜 ‘도덕적 해이’ 또는 ‘모럴해저드(Moral Hazard)’라고 한다.

정보의 비대칭과 역선택

하지만 보험회사가 고객들의 도덕적 해이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병우가 고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때로는 가정사까지 해결해주며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수많은 보험가입자들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을뿐더러, 만난다고 해도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는 보험가입자와 보험회사 간 정보가 비대칭해, 즉 거래당사자들이 가진 정보의 양이 서로 달라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보험회사 측면의 방편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통상적으로 보험회사들은 보험금이 지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할지라도 보험의 종류와 그 약관에 따라 일정률의 금액을 보험금에서 공제하고 지급하는 ‘보험금 공제제도’를 실행하고 있다. 이 경우 사고로 발생한 손실의 일부를 보험가입자 본인이 부담하게 되므로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보험료를 높게 책정하는 것도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책의 하나다. 사고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높은 보험료를 책정하면 보험 가입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어떤 사람의 사고 위험이 높은지가 사전에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오히려 사고의 위험이 높은 사람들만 보험에 가입하는 이른바 ‘역선택’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개개인의 운전자들은 자신의 운전 행태나 습관을 보험회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고 위험에 많이 노출된 운전자들이 그렇지 않은 운전자들보다 확률적으로 더 많을 수 있다. 따라서 통상적인 자동차 보험료는 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낮은 운전자들에게는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경우 보험가입에 대한 매력이 사라져 결국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사고의 위험이 평균보다 높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결국 보험회사는 이들과만 거래해야 하는 역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위험도 따라 보험료 차등

하지만 자동차보험회사들이 이러한 역선택 현상을 모르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이에 대해 미국의 자동차보험회사들은 보험가입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차량과 그들의 나이와 직업, 그리고 거주 지역 등을 기준으로 사고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를 차등적으로 책정하고 있다. 예컨대 고액의 차량이나 스포츠카의 보험료가 저렴한 가격의 차량이나 미니밴보다 높고, 수리 빈도가 높은 차량모델일수록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운전자의 연령이 높거나 고학력의 사무직 고객에게는 보다 저렴한 보험료가 적용된다. 한편 사고 발생률이 통계적으로 높은 지역이나 도로의 상태가 불량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를 지불해야만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정보의 비대칭

경제 행위의 과정에서 거래당사자들이 가진 정보의 양이 서로 다른 경우를 말한다. 중고차를 판매하는 상인은 차의 성능이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만, 소비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소비자는 정보 부족으로 차를 제값 이상 주고 구매할 수도 있다. 보험시장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현상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