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31년만에 무역 적자 … '수출 왕국'  일본의 굴욕
일본의 작년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며 ‘수출왕국’의 자존심이 구겨졌다.

일본 재무성이 최근 발표한 2011년 무역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총 2조4927억엔의 적자를 냈다. 동시에 발표된 작년 12월 일본의 월간 무역수지는 -2051억엔으로 3개월 연속 적자였다.

일본의 부진은 수출 감소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작년 일본의 수출은 2010년보다 2.7% 감소한 65조5547억엔이었다. 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이다. 반면 수입은 2년 연속 늘었다. 작년 일본의 수입은 2010년 대비 12.0% 증가한 68조474억엔이었다.

일본의 수출 부진은 31년 전과는 다른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31년 전 무역적자는 2차 석유파동이 원인이었지만 작년의 적자는 대지진을 비롯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일본 제조업에서 촉발된 것이기 때문이다.

# 수출왕국 지위 흔들

일본이 31년 만에 적자국이 된 것은 엔고(円高)현상과 유럽 재정위기 등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수출이 타격을 입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대지진으로 인한 부품공급라인 훼손 등도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더 큰 원인은 엔고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자동차와 소비자 가전제품, 반도체 등을 전 세계에 수출하며 수출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왔다. 특히 막강한 제조업 기반에 일본 정부가 수출에 용이한 무역 정책을 편 덕에 일본은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려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4일 ‘일본 수출시대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더는 일본이 수출대국이 아닌 이유를 제시했다. WSJ가 우선적으로 꼽은 이유는 작년 3월 발생한 대지진이다. 당시 자연재해로 일본에 있던 제조업 공장이 파괴되면서 단기적으로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타는 사상 유례없는 엔화 강세다. 작년 10월 말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로화 대비는 11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고현상은 일본산 제품값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만들었고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현지 생산보다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등 고육지책을 펴고 있다. WSJ는 일본의 기계장비업체 모리세이키를 예로 들었다. 모리세이키는 1948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올해 해외에서 공장을 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리 마사히코 회장은 “일본 밖에서 만드는 기계 매출을 전체 4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원유나 천연가스 가격 인상도 수출에 타격을 줬다. 대지진으로 인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지자 일본은 원전 대신 화력발전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액(4조7730억엔)은 전년 대비 37.5% 급증했다.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제품 생산 비용도 상승하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중국과 브라질이 빠르게 경제 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 석유와 가스의 가격을 올리고 있어 일본 수출 경쟁력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의 침체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의 가격과 품질 경쟁력이 한국과 중국에도 뒤처지는 분야가 늘고 있는 데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도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일본 정부 '문제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상황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론한다.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성 관료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추세는 사실이지만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며 “일본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의 부자나라”라고 강조했다.

실제 일본의 경상수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득수지는 지속적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재무성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해외 투자 규모는 251조엔 규모다. 해외 투자 규모가 크고 배당 수익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본은행(BOJ)도 무역적자 현상이 일시적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BOJ 총재는 “무역수지 적자는 일본 대지진 여파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무역적자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전 가동률이 미미한 상태에서 이를 대체할 화력발전용 연료 수입이 늘고 있고 유럽 재정위기가 세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어 일본 수출이 살아날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에다노 유키오 일본 경제산업상은 최근 WSJ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아무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 추세가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다치 마사미치 JP모간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수출 침체와 산업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일본에서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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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경제 올해도 먹구름… "눈높이 낮추고 내실 다지자"

일본 경제가 올해도 유럽 재정위기 등 여파로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자 일본 정부는 경제 내실 다지기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최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BOJ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통해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로 하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시라카와 마사하키 BOJ 총재는 “엔고 현상과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BOJ가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것에 대해 수출 둔화와 엔고로 기업들의 이익이 감소할 것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알랜 시나이 디시젼 이코노믹스 대표도 “중앙은행은 제로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는 것 외에 내놓을 추가적인 대책이 없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최근 국가 채무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올해 재정 건전화에 정책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2009년 883조엔이던 일본의 국가 채무는 지난해 998조엔으로 늘어 올해는 1000조엔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정부 부채가 내년 3월 말이면 1085조엔까지 팽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채무 증가는 세출 증가로 생긴 재정적자를 매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올해 일본 예산안 중 세출은 90조엔이지만 조세수입은 세출의 47% 수준인 42조엔에 불과하다. 결국 부족분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사 S&P는 지진 등 복합위기로 인해 일본의 국가 채무가 더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은 소비세 인상 등 세입제도를 개선하고 각종 재정사업에 대해 공개예산심의 등의 건전화 정책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