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47) 변검(變)과 '용의자의 딜레마'
덩샤오핑(鄧小平)의 고향이자 소설 삼국지의 주 무대인 촉한(蜀漢)의 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중국 남서부의 쓰촨성(四川省). 쓰촨은 가장 높은 산의 높이가 7556m에 달할 정도로 산세가 험하고 지형이 매우 복잡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지리적 요소는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쓰촨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쓰촨의 문화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변검(變)이다. 변검은 배우가 다양한 표정의 탈을 얼굴에 쓰고 그것을 순식간에 바꾸는 기술로, 쓰촨의 대표 문화예술 중 하나이다. 하지만 변검이 예술의 한 분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19세기 말 캉쯔린이라는 배우가 중국의 4대 전통극 중 하나인 ‘천극’에서 세 장의 탈을 바꿔 쓰는 기예를 선보인 것이 변검의 시초가 되었다. 그 후 1987년 왕다오정이 다양한 공연 기법과 기구를 선보이면서 변검은 비로소 쓰촨을 넘어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로 자리잡게 되었다.

중국의 남아선호사상 비판

우리나라에서 변검은 1997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영화 ‘변검(The king of masks)‘은 주인공 변검왕과 ’구아’라는 여아(女兒)가 변검을 둘러싸고 펼치는 인간애를 감동적으로 그려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따뜻한 인간애만이 아니었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중국 사회에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하고자 하였다. 즉, 남아(男兒)에게만 전수하는 전통을 고수해온 변검을 통해 남아선호사상과 그 폐해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실 중국의 남아선호사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는 중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남아는 중국의 가계에서 가문을 존속하고 영속시키는 주체로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가문의 입장에서 여아보다 남아를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부모의 노후에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 역시 아들의 몫이었다. 따라서 부모의 입장에서는 남아를 낳는 것이 마음 든든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편 농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과거 중국의 사회에서는 가족의 수가 노동력과 동일시되고는 하였다. 따라서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남아를 선호하는 현상이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특성으로 인하여 중국에서는 남아를 낳는 것이 가문과 부모 자신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최선의 선택, 즉 우월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하지만 개인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선택이 전체에게도 항상 최선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보자. 두 명의 용의자 A와 B는 1년 정도의 형량을 받을 범죄로 경찰서에 감금되어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이 보다 심각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진위를 파악하기 위하여 경찰은 상대방의 자백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용의자들을 심문하려고 한다. 이때 두 용의자가 위중한 범죄 사실을 자백하지 않으면 이들에게는 징역 1년형이 내려지고, 자백을 하면 10년형이 선고된다. 그런데 용의자 중 한 명만 자백을 하면 자백한 용의자는 협조의 대가로 석방되지만, 자백하지 않은 용의자의 형량은 20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용의자의 자백'은 옳은 선택?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용의자들은 자백을 하고 징역 10년형을 선고받는 선택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자백을 하면 바로 석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방이 자백을 하더라도 본인 역시 자백을 하면 10년형을 선고받아 자백하지 않을 경우에 비해 짧은 징역형을 선고받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자백 여부와 상관없이 자백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는 항상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즉, 두 용의자에게 자백은 최선의 선택(우월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두 용의자 모두가 자백하지 않았을 때의 형량(징역 1년)보다 무거운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는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여 행하여진 행동이 전체적으로는 손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중국의 남아선호사상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 스스로에게는 남아를 낳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지 모르지만, 남아선호가 팽배해짐에 따라 사회 전체에 야기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향후 결혼 적령기 남성의 상당수가 결혼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재력이나 지위 등이 결혼의 주요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결혼에도 도시와 농촌, 부자와 빈자 사이에 양극화가 발생하여 사회 문제화 되기 십상이다. 또한 남녀 성비가 불균형한 사회에서 인신매매와 매춘 등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편 지나친 남아선호는 인구 감소는 물론 낙태를 부추겨 가임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출산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아선호사상이 불러올 사회문제에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중국은 태아의 성을 출산 전에 확인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남아선호를 줄이고 성비 불균형도 해소하겠다는 의도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그럴싸한 방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태아의 성감별 금지로 인해 오히려 불법적인 낙태가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고, 심한 경우 여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폐쇄성 벗은 변검술

영화 변검에서 주인공 변검왕은 변검술을 전수하기 위해 데려다 키운 구와라는 아이가 여아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변검은 대대로 남아에게만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변검왕은 구와에게 모질게 대하고, 둘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던 중 구와의 잘못으로 변검왕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미안하게 여긴 구와가 자신의 목숨을 던져 변검왕의 누명을 벗겨주려 하였고, 이를 계기로 구와에 대한 변검왕의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결국 영화의 말미에 변검왕은 구와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했던 변검술을 전수해주게 된다.

현실에서도 변검은 쓰촨성 출신의 남성에게만 전수하는 폐쇄성을 갖고 있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변검술이 중국 정부의 기밀사항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차츰 바뀌어 이제는 여자 변검술사도 등장하였고, 최근에는 외국인에게도 그 기술이 전수되고 있다고 한다.

남아선호사상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으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아선호라는 인습은 사라지기 힘들 것이다. 변검의 세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이 쓰촨의 높은 산맥을 넘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용어 풀이

용의자의 딜레마

경쟁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이 자신에게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하여 내린 선택이 결국에는 최악의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게임이론(Theory of games)의 대표적인 예다. 게임이론은 1944년 폰 노이만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에 의해 처음 주창된 것으로, 군사학은 물론 경제학, 정치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