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가난한 사람의 주머니 털어"

"오락에 가까워… 지나친 규제 안돼"

복권을 사는 것은 사행 행위일까, 아니면 좋은 꿈을 꾸고나서 즐거운 마음에 희망도 사고 좋은 일에 쓰이는 돈을 낸다는 점에서 더 장려해야 할까.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최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연말까지 복권 발행을 줄이거나 잠정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복권 판매액이 사감위가 설정한 올해 복권 발행 허용한도(2조8046억원)를 이미 초과했기 때문이다. 복권이 너무 잘팔려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1주일에 600억원가량 팔리는 복권 판매량을 감안해 복권위는 올해 판매액이 3조1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끝모를 불황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다 올해 새로 도입된 연금복권 판매가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을 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권 판매가 옳은 일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왔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찬반이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에서 현실적으로 복권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도 복권이 잘팔려 복권 발행을 중단해야 할 상황까지 온 것을 계기로 복권 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복권의 지나친 판매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로또가 본격 촉발시킨 복권 열풍이 도를 넘어섰다고 보고 있다. 사감위는 복권 카지노 경마 경륜 등 정부가 관리하는 사행산업의 올해 매출이 1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본다. 국내총생산(GDP)의 1.5%를 넘는 규모다. 복권이 다른 유사한 형태의 사행산업을 조장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복권 사업 확장에 부정적이다.

국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50조~80조원으로 추정되고 해외 원정 도박으로 날린 돈이 마카오 필리핀만 합쳐도 GDP의 9%인 2조3000억원에 달하는데 복권이 이런 사행산업에 주는 영향이 없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복권을 사는 사람 대부분이 중산층 이하라는 점을 들어 복권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도박영향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고졸 이하 학력자는 대졸자보다 네 배 많이, 흑인들은 백인보다 다섯 배 더 많이 복권을 산다고 한다. 복권이 ‘가난한 자의 세금’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다 이런 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복권은 없는 사람의 지갑에서 나온 돈을 또 다른 없는 사람에게 지원해주는 꼴이 되고 그런 점에서 복권이 사회전체적으로 부의 재분배나 이전 효과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내 도박중독자가 성인의 9.5%인 350만명에 달하는데 이는 영국(1.9%) 캐나다(2.2%) 호주(2.4%)의 네다섯배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도박중독으로 인한 빚, 실직, 범죄, 재활 등 사회적 비용을 연간 78조원으로 추정한 사감위의 자료를 들어 복권사업 확대에 반대한다.


반대

복권위는 복권 발행을 줄이면 가수요가 일어나 오히려 판매가 늘게 되고 발행을 중단하면 영세 판매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복권기금을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하는데 복권을 왜 사행산업이라고 비난만 하느냐는 불만도 있다. 복권 구입자에게만 초점을 맞춰 투기성만 부각할 게 아니라 이를 판매하는 영세상인과 판매수익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처럼 중독되지 않고 즐기는 수준에서 그친다면 복권은 이기심과 이타심을 함께 만족시키는 매력적인 수단이라는 주장도 있다. 복권 발행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여가를 즐기는 행위의 하나로 보면 되는 것인데 지나치게 사행성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마치 명절에 적은 돈을 걸고 가족이나 친지끼리 모여 하는 화투나 윷놀이를 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연호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권 판매가 정해진 한도를 넘어선 것은 처음인데 이는 7월 도입된 연금 복권이 인기를 끌고 로또 1등 당첨금이 한때 이월되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복권 시장이 과열됐다는 일각의 우려는 일종의 착시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복권은 도박이라기보다는 오락에 가까운 데다 중독성도 높지 않은 만큼 오히려 현행 사행산업 총량한도 내에서 복권 비중을 높이고 중독성이 큰 산업 비중을 낮추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생각하기

복권을 도박과 같은 차원에서 봐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중독성도 크지 않고 큰 돈을 잃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복권과 도박은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두가지의 경계가 모호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의 기본 심리는 같다는 점에서 연결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사실 이렇게 애매한 점이 복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2002년 로또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탓도 있지만 1등 당첨금이 최고 수백억원에 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로또 광풍’이 불었고 이런 영향으로 첫해 로또 판매액은 당초 예상치인 3600억원보다 10배 이상 많은 3조7000억원에 달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나치게 사행심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의식, 이후 로또 1게임당 금액을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추고 1등 당첨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45.6%에서 30%로 낮췄다. 이후 로또 1등 당첨액이 적으면 수억원, 많아야 20억~30억원 정도로 줄어들자 판매가 상당히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 이는 복권과 도박 간의 경계가 사실 매우 애매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복권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바로 도박화될 수 있다는 점도 일깨워준 것이다.

결국 발행주체가 어떻게 설계하고 판매 방식을 정하느냐에 따라 복권은 그야말로 재미삼아 즐기는 오락거리가 될 수도, 국민 상당수를 한탕주의에 빠뜨리는 일종의 도박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복권의 종류나 성격을 결정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하고 판매점 개수까지도 세심하게 따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어려운 점은 어디가 적정선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로또는 여전히 1등 당첨 금액이 상당히 높지만 사회적으로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보고는 찾기 어렵다. 그래서 복권정책은 그 사회의 특성과 국민성, 경제상황 등도 종합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어려운 정책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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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12월 5일자 보도기사>

불황 속에 복권이 불티나게 팔려 위험 수위가 임박해지자 사행산업 감독기구가 복권 판매 중단을 권고하고 나섰다.

5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복권 총 매출액은 2조7948억원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매출은 3조1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달까지 판매액만으로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권고한 연간 발행한도까지 98억원만을 남겨둔 상태다. 소비심리가 커지는 12월에는 3000억원 이상 팔릴 것으로 복권위는 전망한다. 사감위는 올해 매출액이 발행한도를 큰 폭으로 초과할 것으로 우려되자 최근 복권위에 온라인복권(로또)의 ‘발매차단 제한액 설정’을 권고했다. 연말까지 복권 판매를 대폭 줄이거나 사실상 중단하라는 것이다. 총리실 산하 사감위가 설정한 올해 복권매출 총액은 모두 2조8046억원이다. 판매량이 한도를 넘으면 2009년 사감위 활동 개시 이후 처음으로 복권매출 총량이 초과한다.

복권위는 사감위의 판매 중단 권고에 반대한다. 소비자의 반발을 사고 전국 복권판매점 1만8000여곳의 판매 중단으로 자영업자들의 영업에 심각한 타격이 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복권위는 지난 10월27일 전체회의에서 총량 초과에 따른 문제보다 판매 중단이 더 위험하므로 판촉자제 등을 추진하되 인위적으로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복권은 도박?

아니면 오락?

애매모호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