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해외원조는 공생의 미학 …  수혜국 자생력 키운다
국제원조의 본질은 ‘지구촌의 공동번영’이다. 가난한 국가들이 자생력을 키우도록 도와줘 더불어 잘사는 지구촌을 만드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원조는 국격도 높인다. 글로벌 리더의 조건 중 하나로 원조가 꼽히는 이유다.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변신한 우리나라도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원조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 중요시되는 것처럼 국가의 국제적 책임 또한 갈수록 의미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 잘사는 지구촌’은 국제원조에 담긴 기본철학이다. ‘더불어 잘산다’는 말엔 공생의 의미가 담겨있다. 원조는 가난한 국가에 대한 단순한 적선이 아니라 공여국가 스스로도 궁극적으로 혜택을 받는 윈 윈게임이다. 근대적 의미의 국가원조는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가들을 재건시키기 위해 미국이 마련한 유럽부흥개발계획(일명 마셜플랜)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1948년부터 1951년까지 3년 동안 무려 130억달러를 유럽의 18개 국가의 재건사업에 지원했다. 그 결과 유럽 국가들은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연 3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폐허에서 빠르게 재기할 수 있었다. 경제가 회복되자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개선되고 인권이 향상되면서 유럽에 민주주의 정치와 시장경제의 기반이 마련되는 효과도 거두었다.

마셜플랜은 당시 사회주의 소비에트 연방의 확산을 막는다는 목적이 있었으나 미국으로서는 대서양 건너 유럽과 무역을 확대하면서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마셜플랜은 국가간 협력이 국제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세계 각국이 갖게 하고 국가 원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실제 마셜플랜을 시행하기 위해 1948년 설립됐던 OEEC는 1961년 OECD로 확대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가원조는 이처럼 더불어 잘 산다는 공생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아프리아 등 저개발 국가에 많은 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나 국가 이미지 제고, 국내 기업의 현지 진출 등 부수적인 효과도 상당하다. 하지만 최근 자국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앞세우는 원조 사례도 없지 않다. 중국의 원조가 그런 사례로 흔히 꼽힌다. 중국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해외원조 규모를 연평균 29.4%씩 늘렸는데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자원 보고인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확보하고 현지에 ‘메이드 인 차이나’의 이미지를 높이려는 의도인 것이다. 또 미국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제3세계에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해외원조는 이처럼 다양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형식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에서 개발 원조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의 최대 이슈도 ‘개발효율성’이었다. 한마디로 고기를 주는 대신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단순한 물질적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격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개발 원조로 원조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대표 국가로 뽑힌다. 우리가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지원으로 빈곤을 탈출한 경험을 십분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프놈펜 인근의 바데이 지역은 원래 1모작만 하던 곳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08년 이곳에 20㎞짜리 제방을 만들어 3모작을 가능하게 했다. 현재는 이 지역의 소득이 높아져 대학에 가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페루 마추픽추 인근에 도자기 학교를 지어주었더니 한국 도자기 기술을 배운 지역 주민들이 1달러에 팔던 도자기를 지금은 10달러에 판다. 이들은 여윳돈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산다. 필리핀 북부지역에 첨단 정미소를 지어줬더니 유실률이 5%로 줄어 이 지역 쌀생산이 25%가량 늘었다. 2008년 당시 아로요 대통령이 첨단 정미소 4개를 더 지어달라고 요청했고, KOICA는 300만달러짜리 정미소를 4개 지역에 나눠 지어줬다. 현재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쌀이 태극기가 그려진 포장지에 담겨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모두 개발원조로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높인 케이스다. 중국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대대적 개발원조를 벌이고 있다. 개발원조의 핵심은 인프라 구축, 기술지원, 인재 양성이다. 개발원조는 공여 국가의 기업들에 새로운 시장도 열어준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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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 도자기 기술 전수했더니 한국제품 사더군요”

[Cover Story] 해외원조는 공생의 미학 …  수혜국 자생력 키운다
“1200억달러 규모의 세계 개발원조 시장은 우리 기업엔 블루오션입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개발원조 참여가 필요합니다.”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열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참석한 박대원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사진>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는 국격을 높일 뿐 아니w라 우리 기업과 경제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이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위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는 박 이사장은 “이번 총회에서는 단순히 물자를 주거나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고 기술 지원과 경험을 전수하는 ‘개발원조’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며 원조도 ‘개발원조’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KOICA는 무상원조를 시행해온 20년간 직접 돈을 주는 대신 학교, 병원, 농어촌 개발을 위한 관개시설 등을 직접 지어주었다”며 “과거에는 개도국들이 현금이 아니어서 크게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결과가 나오자 생각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선진국들도 한국의 원조방식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는 페루에 도자기 기술을 전수한 사례를 들어 개발원조의 효용성을 설명했다.

페루 쿠스코 지역엔 KOICA가 세운 도자기 학교가 있다. 이 학교가 생기기 전엔 농민들이 농한기에 컵을 만들어 마추픽추 관광객들에게 개당 1달러에 팔았다. 그런데 한국 도자기학교에서 도자기 굽는 법을 배운 뒤로 잉카 도자기의 품질이 크게 좋아지면서 하나에 10달러에 팔린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 냉장고와 TV, 자동차를 산다. 굳이 한국제품을 선전하지 않아도 이 같은 원조활동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한 친근감이 생기면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원조의 목표를 경제성장에 두면 안 된다”며 “경제성장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한국이 경제위상에 맞춰 원조 규모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원조 규모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3%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0.1% 선이라며 우리나라 경제력이 10위권 수준인데 국제적인 기여 역시 OECD 평균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0.3% 선으로 원조를 늘리면 국민 1인당 한 달에 1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며 “한 달에 커피 3잔만 안 마시면 한국이 못 사는 나라에 기여한다는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원조는 국내 기업에도 커다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지구상의 원조금 규모는 총 1200억달러인데 이 시장에는 우리 기업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한국형 개발원조 프로그램에 국제적 관심이 큰 만큼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무상원조는 외교통상부 산하 KOICA가, 유상원조는 지식경제부에서 담당하는데 개발원조가 이슈가 되자 정부 각부처, 지자체 등이 너도나도 나서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