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만능의 신'? # 국회의 최루탄 사건 # 경계해야 할 극단주의
[Cover Story] 민주주의의 몰락?…  경제위기 맞아 극단주의 '꿈틀'
경제위기는 흔히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진다. 삶이 고단해지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극단세력들이 힘을 얻는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신중한 선택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했으며, 역시 전 미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적인 정책 결정과정이 별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것인가. 불안정한 국가에서는 자유시장과 민주주의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다. 대공황 당시 경제위기에 가공할 인플레이션으로 중산층의 기반이 사라져버린 독일에선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꽃필 여건이 마련됐다.

# 국회의 최루탄 사건

지난달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터뜨린 최루탄과, 이 사건 이후 우리 사회 일각의 반응은 민주주의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날 김 의원은 여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표결 처리에 반대해 국회 내에서 최루탄을 터뜨렸다. 이후 일각에선 그를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라고 치켜세우는 움직임조차 나타났다. “(여당과 정부는)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라”고 외쳤던 김 의원은 청와대와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는 아무리 상대방과 생각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자신의 철학과 다르다고 해서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폭력에 의존한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을 것인가. 김 의원을 국민의 대표이면서도 스스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테러범’이 아니라 ‘영웅’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보여준다.

# 정부가 ‘만능의 신’?
1980년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던 민주화 열망이 군사 쿠데타로 좌절되면서 대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프란츠 파농의 ‘지상의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로서 알제리민족해방전선(FLN)과 함께 알제리 독립투쟁에 나섰던 파농은 “비식민지화 투쟁은 항상 폭력적인 현상을 유발시킨다”며 “피억압자들의 반란(폭력)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이 외친 ‘폭력의 정당성’은 파농의 선상에 서있다. 자신이 믿는 ‘올바른 역사’를 위해선 폭력도 정당화하는 것이다. 파농의 폭력론은 식민지 상황이라면 정당화될 수도 있다. 하지만 2011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고, 독재 사회일까? 오히려 민주적 질서를 지킬 책임을 묻지는 않고 자유만 무한정 향유하도록 허용하는 나라는 아닐까?

1980년대 대학을 다닌 40·50대 가운데 ‘의식화 교육’을 조금이라도 맛보았던 사람이라면 “사회를 변혁시키는 가장 빠른 길은 정부를 장악하는 것”이라고 배웠던 걸 기억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나 일부 단체들은 아직도 그렇게 믿는다. 입으론 민주와 반독재를 외치지만 실제론 자신들의 뜻과 다르다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부(정권장악)는 ‘만능의 신’이다. 세금을 많이 거둬 계급 갈등을 해소하고, 주요 기업도 국유화할 수 있으며, 전력이나 의료 등 공공서비스도 국가가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세금을 낼지, 국유화가 돼 일할 동기(인센티브)가 줄어든 이후에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인지, 공공서비스의 질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선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하준 교수는 “선거도 없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으며, 은행들은 국가 통제하에 있고, 재산소유권에 대한 규정은 불투명하고 복잡한 중국이 지난 30년 새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 걸 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를 뒤따라 대한민국도 중국처럼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국가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이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는 건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이후 생산성이 높아지고 광대한 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겨냥해 세계의 자본이 몰리면서부터다.

# 경계해야 할 극단주의
국민들은 대부분 정치에 무관심하다. 정치가 구태의연한 데다 정치권이 추구하는 여러 정책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선 탐색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복지에 쓰는 예산을 대폭 늘린다고 해도 내가 내야 할 세금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으니 차라리 무시하는 게 더 낫다. 이를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고 부른다.

반면 소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 등 인터넷을 통해 모인다. 과거에 혼자 놀던 극단주의자끼리 뭉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들의 주장은 경제위기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서 힘을 얻고, 이제 정치권도 여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하버드대 교수인 캐스 R 선스타인은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을 집단에 소속되면 생각하게 되고 행동으로도 옮긴다”며 “이러한 극단주의는 인터넷 시대에 들어 더 극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는 제도적인 결함도 갖고 있다. 계몽시대 프랑스의 사상가 콩도르세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가 밝힌 것처럼 투표로써 사회적으로 가장 선호되는 방안을 선택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정치인도 굳이 악역을 맡아서 유권자의 미움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옳은 정책보다 유권자들이 좋아하는 정책을 제시하게 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전 총리는 “민주주의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가장 덜 나쁜 정치제도”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자유와 함께 책임이 필요하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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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연설

[Cover Story] 민주주의의 몰락?…  경제위기 맞아 극단주의 '꿈틀'
민주주의는 거져 얻어지는 게 아니다. 땀과 때론 피를 요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미시간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한 연설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오바마는 “민주주의란 항상 시끄럽고, 꼬여 있으며,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대립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잘 작동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천천히, 때로는 고통스럽게, 좀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발전해왔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는 중상과 비방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한 테이블에 마주앉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며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신호를 사회에 던질 수도 있다며 공공의 토론에 있어 기본적인 시민의식 수준을 유지하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반대쪽 견해에 대해 듣는 것은 가장 효과적이고 핵심적인 시민의식의 실천이라고도 했다.

또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참여라며 “국민들이 지도자들이 내리는 결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주요 이슈들에 대해 스스로를 교육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그때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때”라고 밝혔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건설적 토론과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