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vs K마트 ●위대한 창조자 vs 훌륭한 모방가
●전혀 다른 입지전략
●건강한 경쟁은 모두에게 이롭다
●직접 도전장을 내밀다
로 프라이스 ‘50년 戰爭’ …소비자는 뒤에서 즐겼다
[세기의 라이벌] 월마트  vs  K마트
“K마트와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경쟁은 우리를 더 나은 기업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50줄에 들어선 한 남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1970년대 K마트는 미국 전역에 1000여개의 매장을 낸 미국 최대 할인판매점이었다. 너무 많은 매장을 낸 까닭에 할인 판매업계의 ‘칭기즈칸’으로 불리던 이 회사를 당해낼 재간은 없어보였다. 지역 할인판매업자들은 어떻게든 K마트와 직접적인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피닉스에 모였다. 그들 앞에서 고작 150여개의 점포를 운영하던 남자는 이렇게 호소했다. “여러분은 K마트와 싸우고 견뎌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 월마트를 설립한 새뮤얼 무어 월턴의 이야기다.

현재 세계 최대 유통기업이자 가장 많은 직원을 거느린 월마트도 출발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1962년 1호점을 연 월마트는 5년이 지나도록 19개 매장을 낸 게 전부였다. 한 해 매출은 900만달러에 머물렀다. 같은 해 문을 연 K마트는 그 시기 230개 점포를 운영하며 연간 8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월마트에 K마트는 벤치마킹 대상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다. 월턴은 자서전에서 “K마트의 전략과 운영 방식을 모방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했다”며 “때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정도로 좌절감에 빠졌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K마트 뒤에는 월턴 인생의 최대 라이벌, 해리 블레어 커닝햄이 있었다.


#위대한 창조자 vs 훌륭한 모방가

커닝햄은 업계에서 ‘할인판매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1957년 K마트의 모기업이었던 S S 크레스지는 부사장으로 있던 그에게 미래 신수종사업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크레스지는 잡화점 사업으로 유명했던 회사. 몰락하는 잡화점 사업을 대신할 성장동력을 찾아 나선 커닝햄은 시어스 등 당시 급부상하던 할인점들을 방문했다. 그는 크레스지의 미래는 할인판매업에 달렸다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존 대형 할인점들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끄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커닝햄이 할인판매업을 시작하며 취한 전략은 다양한 유명 브랜드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이었다. 당시 주요 할인점들은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체상표(PB) 상품을 주로 취급했다. 커닝햄은 마진율이 낮더라도 전국적으로 광고가 되고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 상품을 지속적으로 저가에 제공하는 정책을 펼쳤다. K마트가 다른 할인점과 달리 도시형 할인점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성장하게 된 배경이다. 오늘날 대형 할인매장의 형태는 커닝햄의 아이디어로부터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월턴이 소매업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J C 페니 상점에서 일하면서부터다. 1년6개월 정도 근무한 뒤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벤프랭클린이라는 잡화점 1곳을 인수했다. 1959년까지 9개의 벤프랭클린 점포를 사들인 월턴은 할인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K마트가 개점한 해에 월턴도 아칸소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을 낸다. 월턴 역시 저가 정책을 펼쳤다. 유명 브랜드를 중심으로 상품 구색을 갖춘 것은 물론이다. 커닝햄의 K마트는 좋은 롤모델이 돼 줬다.

월턴은 자주 K마트에 들러 매장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진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자주 주문을 하는지, 어느 정도 양을 주문하는지, 주문 후 상품은 언제 입고되는지 등을 묻고는 작은 파란색 스프링 노트에 꼼꼼히 적었다. 훗날 커닝햄은 “월턴은 우리의 컨셉트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 전혀 다른 입지전략


커닝햄은 ‘매장의 대형화’를 꾀했다. 1962년 K마트 1호점은 5574㎡ 크기로 미시간 주 가든시티에서 문을 열었다. 당시 일반 소매점 규모가 300~400㎡였던 것을 고려하면 10배 이상 큰 것이다. 이후 커닝햄은 중대형 도시 주요 도로 근처의 쇼핑센터지역을 중심으로 7500~9300㎡ 크기의 매장을 내는 입지전략을 고수했다.

반면 월턴은 운영 자금이 많지 않았다. 월마트 1호점은 1000㎡에 불과했다. 커닝햄처럼 입지 좋은 곳에 매장을 낼 수도 없었기 때문에 농촌지역의 소도시를 사업 기반으로 삼았다. 당시 K마트는 인구 5만명 이하 도시에는 진출하지 않은 터라 경쟁도 덜했다. 월마트는 인구 5000명 이하 소도시에도 과감하게 진출했다. 또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고속도로상에 점포를 열었다. 이런 입지전략은 1980년대 미국인의 생활과 주거지가 도심에서 교외로 이동하면서 빛을 발하게 됐다.

# 직접 도전장을 내밀다

월턴은 첫 번째 매장을 개장한 지 10여년 만에 K마트가 들어선 도시에 매장을 냈다. 월마트 52호점이 들어선 아칸소 주 핫스프링스는 K마트가 주도하고 있었다. 당시 월마트 연 매출은 8000만달러였다. 반면 K마트는 500개 점포를 운영하며 한 해 30억달러 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월턴은 K마트가 핫스프링스에 다른 경쟁업체들이 없는 틈을 타 상품 가격을 꽤 높게 매겨왔다고 판단했다. 무조건 가격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도입 물량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합성세제 판촉을 위해 특대형 3500상자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제조사로부터 상자당 1달러 정도를 할인받았다. 그리고 한 상자에 3달러97센트인 세제를 약 50% 할인된 1달러99센트에 판다는 광고를 냈다. 30m 높이에 3.6m 폭을 차지했던 매장의 세제 상자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됐고, 1주일 만에 동이 나 버렸다. 완벽한 흥행이었다. 월마트가 핫스프링스에서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할인점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순간이기도 했다. 월턴은 자서전에서 “매대 위에 상품을 멋지게 진열해 어마어마한 양을 팔았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며 “핫스프링스에서 K마트를 상대로 선전한 이후 우리는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무렵 커닝햄은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월턴은 “10년 만에 할인판매 사업을 합법화시키고 K마트를 모두의 본보기로 만든 커닝햄의 은퇴는 우리에게 굉장한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커닝햄도 “나는 우리 회사의 경영진에게 월턴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알려주려고 했다”며 “하지만 별로 심각하게 듣는 것 같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후 월마트는 상시저가정책(Everyday Low Price)을 고수하며 할인업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반면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에 고군분투하던 K마트는 커닝햄이 고안하고 추구했던 상시저가정책을 수정했고,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 건강한 경쟁은 모두에게 이롭다

월마트는 지난해 4218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미국 경제지 포천이 꼽은 ‘글로벌 500대 기업’ 1위에 올랐다. 미국을 비롯 프랑스 중국 브라질 등 전 세계에 진출한 이 회사는 현재 약 900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반면 2002년 파산 신청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던 K마트는 지난 1년 동안 152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매장 수(1307개)도 월마트에 비하면 7분의 1 정도 수준이다. 두 회사가 문을 연 지 50여년이 지난 지금, 월턴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월턴은 그러나 커닝햄에게 공을 돌린다. “해리 커닝햄은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뛰어난 소매상 중 한 사람으로 기억돼야 한다. K마트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만큼 훌륭한 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

2006년 베리 폴슨 미국 콜로라도대 경제학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월마트가 진출한 지역 소비자들은 연평균 소득 2.5%에 해당하는 1345달러를 절약하게 됐다. 특히 소득 수준 하위 20% 계층은 연평균 소득의 6%(553달러)를 아낄 수 있었다. 라이벌이자 협력자였던 동시대 최고의 비즈니스맨들의 경쟁이 없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혜택이다. 건강한 경쟁은 더 나은 삶을 살게 한다. 월턴의 말처럼.

조미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mwise@hankyung.com

새뮤얼 무어 월턴

△1918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에서 태어남 △1940년 대학 졸업 후 J C 페니에 입사 △1943년 헬렌 롭슨과 결혼 △1945년 아칸소 주 뉴포트에 벤프랭클린 잡화점 개업 △1962년 아칸소 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 개점 △197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 △1992년 74세 나이로 숨짐

해리 블레어 커닝햄

△190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태어남 △1930년 잡화점 기업 S S 크레스지 입사 △1959년 S S 크레스지 사장으로 임명 △1962년 K마트 최고경영자로 취임 △1962년 미시간주 가든시티에 K마트 1호점 개점 △1972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 △1973년 명예회장이 됨 △1992년 85세 나이로 숨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