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인간 광우병? FTA는 식민지?...혼란 부추기는 괴담들
괴담은 불신과 사회불안의 산물이다.

불신이 심화되고 토론이 설자리를 잃으면 괴담이 난무한다.

이분법적 논리가 팽배한 사회는 괴담이 둥지를 트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때로 괴담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역사적으로 검증된 정치·경제체제에 대한 믿음도 흔든다.

부문별하게 확산되는 괴담을 경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대한민국이 ‘괴담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불신을 제거하고 신뢰를 심어야 한다.

사회나 각 개인이 괴담에 현혹되지 않도록 균형과 중심을 잡는 것도 필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2008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이슈다.

광화문 거리엔 저녁마다 촛불이 넘실거렸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라는 피켓이 춤을 췄다. 쇠고기 수입이 이슈였지만 사실은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반감이 더컸다.

MBC PD 수첩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라는 보도는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광우병에 걸린다’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뼈가 녹아내린다’ 등등 흉흉한 얘기들이 급속히 확산됐다.

인간광우병은 어떤 슬로건이나 설명보다 민족적 감정을 자극했다.

상당수 초·중·고생들도 학교에서 혹은 뉴스를 통해 인간광우병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였다.

인간광우병이 과장되고 허구라는 발표는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려는 구구한 변명쯤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인간광우병은 결국 상당 부분 허구적이고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법원은 ‘인간광우병 관련 보도의 주요 내용이 허위’라는 요지의 판결을 하고 방송사 측에 PD수첩 일부 내용을 정정하고 반론보도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MBC는 ‘진실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간광우병은 민족적 정서를 자극하는 괴담수준의 루머가 사회 전반에 어느 정도의 파장을 불러올 수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2011년의 뜨거운 이슈 한·미 FTA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 등 야당이 ‘한·미 FTA는 미국의 식민지’라는 극단적 논리를 펴면서 냉철한 이성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좁아졌다.

FTA 찬성은 매국, 반대는 애국이라는 슬로건이 춤추는 상황에서 한·미 FTA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한·미 FTA를 을사늑약에 비유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FTA를 미국과의 통상협상이 아닌 민족의 자존심이 손상되는 굴욕적 협상으로 본질을 변질시켰다.

괴담이 난무할 수 있는 자리를 깔아준 셈이다.

‘FTA가 발효되면 물값이 크게 올라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쓰게 된다’는 루머는 한·미 FTA에 관련해 떠도는 가장 황당한 괴담이다.

미국 기업이 상수도 공급권을 따낸 뒤 물값을 크게 올리면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써야 되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괴담을 20~40대 중 27.8%가 ‘믿는다’고 답했다는 것이다(미디어리서치 등 휴대전화 여론조사 결과). ‘맹장수술비가 900만원이 된다’는 루머도 대표적 괴담이다.

의료민영화로 맹장수술비가 현재 30만원에서 900만원까지 치솟는다는 괴담도 2040세대 중 무려 36.5%가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는 주장엔 무려 49%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2008년 으스스하게 떠돌던 인간광우병 괴담도 다시 꼬리를 드는 모습이다.

괴담은 불신에서 자라난 가지다. 굵직굵직한 뉴스가 터질 때마다 괴담이 떠도는 것은 우리사회에 불신이 어느 정도 깊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3월 천안함이 침몰해 꽃같은 나이의 장병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정부는 “북한의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고 공식발표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개적으로 원인 조사에도 나섰지만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는 루머가 꼬리를 물었다.

아직도 이런 루머를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관련 반대시위 때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한 여대생이 경찰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는 괴담도 나돌았다.

얼마 전 금융시장에 나돌았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설도 한·미 FTA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정부가 꾸민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았다.

심지어 서태지·이지아 이혼도 이명박 대통령의 BBK 기사를 덮기 위해 청와대와 국정원이 일부러 흘렸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됐다.

사회 전반에 불신이 팽배하니 큰 이슈 때마다 루머나 괴담이 춤을 추는 것이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21세기를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라고 규정했다.

불확실성의 시대는 의심의 시대다. 의심이 깊어지면 불신이 되고 극단적 불신은 괴담을 낳는다.

맹목적 불신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분법적 논리에 매몰되고, 새로운 것이 항상 좋다는 착각에 빠진다. 검증되지 않은 대중적 인물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도 불신이 몰고온 병리적 현상이다.

괴담의 천적은 신뢰다. 신뢰에 기반한 사회에선 루머나 괴담이 설 자리를 잃는다. 민주주의나 자유무역은 신뢰의 대상이지 불신의 대상은 아니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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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시체...인디오 지방 짜내는 피스타코...

세계의 괴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불안할수록 괴담이 양산된다.

서양의 대표적 괴담은 좀비 레버넌트다. 레버넌트는 프랑스 고어인 revenir(다시 돌아오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움직이는 시체를 의미한다.

페스트가 사라진 후 15세기 전후로 죽은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고늉 지방에선 장사를 마치고 초저녁에 돌아오던 몽트윤이라는 상인이 몇몇 사람들이 어디론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걷는 모양새가 이상해 쫓아가보니 그들이 어느 동굴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그 동굴에 가보니 이상한 제단과 죽은 지 며칠 안되는 듯한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급속히 퍼졌다.

페스트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죽은 사람의 부활이라는 비현실적 행위를 믿으면서 이런 괴담은 급속히 확산됐다.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지역에는 지금도 하얀 몸의 살인마 피스타코에 관한 괴담이 떠돈다.

인디오들을 납치해 동굴에 매단 뒤 피스타코가 빼앗아 가는 건 돈도, 장기도, 피도 아닌 지방, 그것도 ‘불쾌한 농도의 백인 지방과 다른 강하고 진한 인디오 지방’이다.

‘군복을 입은 페루의 백인 피스타코 부대가 원주민 지방을 빼내 외채를 갚았다더라. 성직자들이 인디오 지방으로 교회 종을 칠하고 성상의 윤을 낸다더라.

인디오 지방으로 돌아가는 공장이나 비행기 엔진에 인디오 기름을 치는 백인 기계공도 있다더라’ 식으로 괴담이 증폭된다. 백인에 대한 증오가 묻어나는 괴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