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41) 숫자놀음에 가려진 진실
1980년대 중반 일제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이 논란은 일제강점기를 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으로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요체는 다음과 같다.

1910년 국권 피탈(被奪)을 계기로 시작된 일제강점기에 실시하고 도입한 정책과 생산체제가 이후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각종 경제지표와 통계 자료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각국의 경제통계로 유명한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1911년 777달러에서 1937년 1482달러로 높아졌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비해 중·일전쟁이 발발한 즈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비록 광복을 맞이한 1945년 616달러로 곤두박질치기는 했지만, 1944년 1330달러를 기록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일제강점기 기간에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 기간에는 산업구조도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1912년까지만 해도 농수산업의 비중이 약 95%였을 정도로 낙후된 상태였다.

하지만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이었던 1940년에 이르러서는 농수산업의 비중은 크게 떨어진 반면, 광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45%로 증가했다.

생활 수준 면에서도 변화의 모습은 엿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사망률이 감소한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를 일제강점기에 위생시설과 의료 혜택이 증가해 나타난 결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를 살펴보면 1918년 30명이 넘던 조사망률(특정기간 동안의 사망자를 당시 인구로 나눈 것)이 1931년 이후 20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표와 자료가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나타난 고도성장의 모체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당시의 경제성장은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탈과 착취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경제성장의 과실은 한국민에게까지 돌아오지 못했고, 오로지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공업화의 진전 역시 동일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공업화는 한반도의 북쪽지역에서 대부분 이루어졌다. 이는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한반도를 병참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공업화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또한 공장시설의 대부분은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파괴되었고, 그나마 전쟁 이후 경제개발에 성공한 쪽도 당시의 공업화와는 무관한 남쪽이었다.

사망률 감소도 마찬가지다.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따르면 당시 전염병으로 사망한 재한(在韓) 일본인 수가 한국인보다 많았다.

하지만 지배 주체인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더 많이 사망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아마도 한국인 사망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누락된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사망률이 감소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각종 경제지표와 통계 수치를 활용한 식민지근대화론은 자기해석적인 숫자놀음에 불과하며, 일제강점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여 국민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한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숫자놀음이 또다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우리나라의 취업자 수는 2468만3000명으로 작년 동월 대비 50만명가량 증가했다.

이로 인해 실업자 수와 실업률은 각각 73만6000명과 2.9%로 작년 동월에 비해 실업자는 9만6000명, 실업률은 0.4%p 하락했다.

이는 미국(8.5%), 프랑스(9.8%), 독일(5.2%) 등의 실업률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것으로, 이를 두고 ‘고용 대박’이라는 표현까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고용 현실과 정부의 수치 사이에 상당한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실업률 조사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기준에 따르면 취업자는 조사 주간에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즉, 아르바이트로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취업자로 분류하는 것은 현재의 사회통념상 맞지 않다.

또한 ILO에 따르면 실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 1주간 일을 하지 않았고, 취업 제의가 들어오면 일을 할 수 있고, 최근 4주 동안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했어야 한다.

실업자가 되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해야 할 정도로 요건과 자격이 까다롭다.

이렇다보니 취업 준비자나 아르바이트생, 심지어는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쉬고 있는 사람도 실업자 파악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펼치는 대학생의 경우 학생이므로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한다.

그러나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점에서 실업자이기도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므로 취업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업률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15세 이상의 모든 인구는 취업, 실업, 비경제활동인구 중 반드시 하나에만 독립적으로 속해야 한다.

또한 인구의 노동력을 파악하는 순서는 취업이 가장 우선시되고, 다음으로 실업과 비경제활동인구의 순이다. 따라서 이 대학생의 경우 아르바이트로 받는 푼돈이 소득의 전부인 학생이지만 통계상 취업자로 분류된다.

위와 같은 이유로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는 숫자놀음 같은 고용지표가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과 현실과의 괴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은 공식 실업률을 발표할 때 체감실업률을 같이 공표하고 있다.

체감실업률은 ILO 기준에 따른 실업자 이외에 15주 이상 실업상태에 있는 장기실업자, 구직을 단념한 자,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의사가 있는 한계근로자 등을 포함하여 작성된다.

미국은 이를 관련정책 마련 등에 참고함으로써 공식 통계치와 현실과의 괴리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취업자를 분류할 때 기간을 지난 한 주로 한정하지 않고 취업 제의가 있으면 즉시 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통계를 작성하고 있다.

2010년 현재 우리나라의 고용률은 63.3%로, OECD 국가의 평균(64.6%)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완전고용상태에 가까운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고용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이다.

실업률 조사에 사용되는 ILO 기준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권고안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위해 ILO의 권고안을 따르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현실이 반영된 고용지표를 내놓기 위해 이제는 우리 정부도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