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표류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비준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사법 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기 때문에 재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ISD를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ISD가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아니면 국가를 좀먹는 독소조항인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문답으로 풀었다.
ISD는 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의 약자다.
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을 때 상대국을 제3의 중재기구, 즉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등 중재기관에 제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
ICSID 중재부는 한·미 양국이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협의를 통해 선정하며 합의가 안 될 경우 ICSID 사무총장이 추천한다.
전문가들은 ISD가 해외투자자는 물론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입을 모은다.
제3의 재판부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고 국가 간 분쟁 방지에도 효과적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내 우리 기업의 투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다.
야당은 ISD를 ‘독소 중의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논리는 “중재기구에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ISD가 한국의 사법주권과 공공정책 결정권 등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
한국 사법부가 개입할 수 없고 미국 투자자가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주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중재판정부가 국내사법에 대해 심리하는 경우는 기본 권리를 침해해 협정상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가 대상”이라며 “분쟁해결제도는 투자협정뿐 아니라 WTO 협정 등 다른 조약에서도 채택했다”고 반박했다.
야당 측은 또 우리 정부가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 경우 미국 투자자들이 ISD를 이용해 한국의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정책 결정권도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공공질서 유지를 해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인정하진 않지만 우리는 인정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우리의 공공정책에 대해 함부로 ISD를 사용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마련한 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경우 ISD를 둘러싼 충돌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맺은 양자간투자협정(BIT)이나 FTA에서 ISD 조항을 채택해 왔다.
우리가 여태까지 맺은 BIT는 총 85개인데 그 중 ISD 조항이 없는 협정은 미국, 독일, 프랑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맺은 5개 협정이다.
독일과 프랑스와 맺은 BIT에 ISD 조항이 없는 것은 협정을 맺은 시기가 1967년과 1979년으로 오래 전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맺은 FTA의 경우 유럽연합(EU)과 맺은 FTA를 제외하곤 모두 ISD 조항이 있다. 이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EU집행위원회가 아닌 회원국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EU 27개국 가운데 22개국과 맺은 BIT에 ISD 조항이 포함됐다.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맺어진 BIT는 2500개인데 ISD 조항이 포함된 BIT는 2100여개다.
ISD 중재를 가장 많이 하는 ICSID에는 147개국이 가입했다.
ICSID를 통한 투자분쟁 해결은 1966년에 채택됐으며 우리는 1967년에 가입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싱가포르 등 17개국과 FTA를 발효 중인데 ISD 조항이 없는 경우는 호주, 이스라엘과 맺은 FTA 두 개뿐이다.
미 의회의 비준이 끝난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FTA에도 ISD 조항이 있다.
야당 측에선 미국이 ISD 제소 중재를 가장 많이 맡는 ICSID를 장악하고 있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ICSID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이 137명에 달하고 미국 투자기업이 제기한 소송 108건 중 패소한 것은 22건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ICSID에 중재인과 조정인으로 등록된 미국인은 8명이다.
한국인 중재인과 조정인도 8명이다.
미국인 수가 137명이라는 주장은 미국 기업과 관련된 제소 때문에 중재인으로 선임된 숫자가 137명이라는 얘기다.
8명의 중재인과 조정인이 중복 선임됐다. 또 108건 중 미국 기업이 승소한 건수는 15건뿐이다. 나머지는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거나 제소가 취하, 각하됐다.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의회의 비준이 끝난 상태에서 ISD 조항을 놓고 재재협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우리 민주당의 FTA 재협상 요구에 대해 ‘노’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행정부는 민주당 측 주장에 대해 재협상은 어렵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ISD 조항을 한·미 FTA 비준안에서 뺄 경우 향후 우리가 개발도상국과 FTA를 맺을 때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도 제기된다.
개도국에서 한·미 FTA를 예로 들며 ISD 조항 삭제를 요구할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나중에 우리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도 보호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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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여·야, 得失 따지기 급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FTA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치를 보이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각자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전체회의실을 점거한 지 10일로 열하루째를 맞는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비준안을 강행처리했다가 부딪치게 될 여론의 후폭풍이 두렵다.
내년 총선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달까지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던 한나라당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다. 의원들에겐 ‘카메라 주의보’가 발령됐다. 지도부는 비준안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없는데도 “대화로 풀겠다”고 말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원칙대로’를 강조하면서도 행동엔 나서지 않는다.
9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대다수의 의원들이 FTA의 조속한 비준 처리를 촉구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처리 지연에 대해 당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 “국익을 생각하라” “야당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은 안 된다” 등의 성토가 쏟아졌다.
민주당도 무기력하다. 지도력을 상실한 건 마찬가지다.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마저 파기한 이후 좌표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손학규 대표는 “국민투표를 하자”고 했다가 반응이 시원찮자 “내년 4월 총선이나 다음 정권에서 결정하자”고 말을 바꿨다.
급기야 온건파 의원들이 ‘ISD 절충안’을 내놓으며 반기를 들었으나 강경 목소리에 밀리는 상황이다.
과반수 의원이 동의한 ‘ISD 절충안’에 대해 손 대표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일부 의원이 당론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 의원 45명은 지난 8일 비준안 발효 즉시 ISD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개시한다는 약속을 미국에서 받아오면 비준안 처리를 저지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여당은 비준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사법 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기 때문에 재재협상이 필요하다고 맞선다.
ISD를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 전체를 휘감고 있다.
ISD가 글로벌 스탠더드인지, 아니면 국가를 좀먹는 독소조항인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문답으로 풀었다.
ISD는 Investor State Dispute Settlement의 약자다.
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봤을 때 상대국을 제3의 중재기구, 즉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나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등 중재기관에 제소해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다.
ICSID 중재부는 한·미 양국이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협의를 통해 선정하며 합의가 안 될 경우 ICSID 사무총장이 추천한다.
전문가들은 ISD가 해외투자자는 물론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입을 모은다.
제3의 재판부를 통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고 국가 간 분쟁 방지에도 효과적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내 우리 기업의 투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다.
야당은 ISD를 ‘독소 중의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논리는 “중재기구에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ISD가 한국의 사법주권과 공공정책 결정권 등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
한국 사법부가 개입할 수 없고 미국 투자자가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법주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중재판정부가 국내사법에 대해 심리하는 경우는 기본 권리를 침해해 협정상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가 대상”이라며 “분쟁해결제도는 투자협정뿐 아니라 WTO 협정 등 다른 조약에서도 채택했다”고 반박했다.
야당 측은 또 우리 정부가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 경우 미국 투자자들이 ISD를 이용해 한국의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공공정책 결정권도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공공질서 유지를 해치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인정하진 않지만 우리는 인정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우리의 공공정책에 대해 함부로 ISD를 사용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마련한 유통법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경우 ISD를 둘러싼 충돌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맺은 양자간투자협정(BIT)이나 FTA에서 ISD 조항을 채택해 왔다.
우리가 여태까지 맺은 BIT는 총 85개인데 그 중 ISD 조항이 없는 협정은 미국, 독일, 프랑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과 맺은 5개 협정이다.
독일과 프랑스와 맺은 BIT에 ISD 조항이 없는 것은 협정을 맺은 시기가 1967년과 1979년으로 오래 전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맺은 FTA의 경우 유럽연합(EU)과 맺은 FTA를 제외하곤 모두 ISD 조항이 있다. 이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EU집행위원회가 아닌 회원국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EU 27개국 가운데 22개국과 맺은 BIT에 ISD 조항이 포함됐다.
2010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맺어진 BIT는 2500개인데 ISD 조항이 포함된 BIT는 2100여개다.
ISD 중재를 가장 많이 하는 ICSID에는 147개국이 가입했다.
ICSID를 통한 투자분쟁 해결은 1966년에 채택됐으며 우리는 1967년에 가입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싱가포르 등 17개국과 FTA를 발효 중인데 ISD 조항이 없는 경우는 호주, 이스라엘과 맺은 FTA 두 개뿐이다.
미 의회의 비준이 끝난 한국,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FTA에도 ISD 조항이 있다.
야당 측에선 미국이 ISD 제소 중재를 가장 많이 맡는 ICSID를 장악하고 있어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ICSID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이 137명에 달하고 미국 투자기업이 제기한 소송 108건 중 패소한 것은 22건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ICSID에 중재인과 조정인으로 등록된 미국인은 8명이다.
한국인 중재인과 조정인도 8명이다.
미국인 수가 137명이라는 주장은 미국 기업과 관련된 제소 때문에 중재인으로 선임된 숫자가 137명이라는 얘기다.
8명의 중재인과 조정인이 중복 선임됐다. 또 108건 중 미국 기업이 승소한 건수는 15건뿐이다. 나머지는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거나 제소가 취하, 각하됐다.
한·미 FTA에 대한 미국 의회의 비준이 끝난 상태에서 ISD 조항을 놓고 재재협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우리 민주당의 FTA 재협상 요구에 대해 ‘노’라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행정부는 민주당 측 주장에 대해 재협상은 어렵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ISD 조항을 한·미 FTA 비준안에서 뺄 경우 향후 우리가 개발도상국과 FTA를 맺을 때 불리하게 작용할 우려도 제기된다.
개도국에서 한·미 FTA를 예로 들며 ISD 조항 삭제를 요구할 경우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나중에 우리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도 보호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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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좌왕’ 여·야, 得失 따지기 급급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정치권의 반응은 다소 아이러니하다.
FTA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치를 보이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각자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야당 의원들이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전체회의실을 점거한 지 10일로 열하루째를 맞는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비준안을 강행처리했다가 부딪치게 될 여론의 후폭풍이 두렵다.
내년 총선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지난달까지 비준안을 처리하겠다던 한나라당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다. 의원들에겐 ‘카메라 주의보’가 발령됐다. 지도부는 비준안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없는데도 “대화로 풀겠다”고 말만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원칙대로’를 강조하면서도 행동엔 나서지 않는다.
9일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선 대다수의 의원들이 FTA의 조속한 비준 처리를 촉구했다.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처리 지연에 대해 당 지도부가 책임져야 한다” “국익을 생각하라” “야당에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은 안 된다” 등의 성토가 쏟아졌다.
민주당도 무기력하다. 지도력을 상실한 건 마찬가지다.
야권 통합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고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사항마저 파기한 이후 좌표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손학규 대표는 “국민투표를 하자”고 했다가 반응이 시원찮자 “내년 4월 총선이나 다음 정권에서 결정하자”고 말을 바꿨다.
급기야 온건파 의원들이 ‘ISD 절충안’을 내놓으며 반기를 들었으나 강경 목소리에 밀리는 상황이다.
과반수 의원이 동의한 ‘ISD 절충안’에 대해 손 대표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자 일부 의원이 당론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 의원 45명은 지난 8일 비준안 발효 즉시 ISD 존치 여부에 대한 협상을 개시한다는 약속을 미국에서 받아오면 비준안 처리를 저지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