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미술관에서 그림을 전시하지 않는 이유
표면적으로는 비합리적인 행태로 보이는 것들이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그러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전시하지 않고 대부분의 작품을 창고에 보관하는 것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세계적인 미술관들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운영하는 갤러리들은 대부분 전시하고 있는 그림보다 더 많은 수의 그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도 않은 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학자 Frey는 논문을 통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미술품의 비율은 전체 보유 미술품 중에서 2분의 1 내지 심할 경우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의 경우 당시 1만9000여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 중 전시된 작품은 고작 1781점에 불과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떤 작품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전시된 바 없는 작품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에도 보관실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수가 6000점에 달한다고 한다.

창고에 쌓인 그림 더 많아

이러한 현상은 경제학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학은 각 개별 경제주체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술관장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같은 행태는 경제학의 가장 기초적인 가정인 개별 경제 주체는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행동한다는 가정에 어긋나는 듯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미술관의 경영진의 행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다분히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다.

먼저 미술품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창고에 보관하고 있을 경우, 해당 미술품을 전시함으로써 얻게 되는 다양한 편익을 포기하는 행위이다.

많은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이 미술관 관람으로 인해 얻게 되는 만족감을 증대시켜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시를 통해서 해당 미술품을 일반인에게 판매할 경우, 판매 수입을 미술관의 개보수, 화재와 절도 등에 대비하기 위한 보완시스템 구축, 미술품의 보관 설비에 대한 재투자 등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 안하는 경제적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보이지 않은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은 비경제적인 행위인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속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충분히 담겨 있다.

먼저, 미술관 관계자들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작품들에 부과하는 가치가 시장에서 평가 받는 가치보다 높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즉 미술관 관계자들은 해당 작품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으나, 시장에서 해당 작품에 부여하고 있는 시장가치는 이보다 낮기 때문에 해당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아질 때까지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시장에서 해당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가치를 평가해 줄 때 전시하고 이를 판매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해당 미술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평판 효과가 원인일 수 있다.

특정 미술관의 관계자가 보관실에 보관하고 있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외부에 판매하여 현금화하고 있다는 말이 미술계에 돈다든가, 특히 작품을 해외에 판매했다는 소리가 미술계에 형성되면 해당 미술관의 관계자는 미술계에서 거의 매장당할 수도 있다. 미술품 기증에도 차질을 초래할 수 있다.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을 판매하는 관리자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 해당 미술관에 미술품을 기증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지속적으로 미술품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차질을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미술관 관계자들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을 외부에 판매하여 그 수익금으로 미술관의 발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평판효과를 고려하여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파는게 오히려 손해?

또 다른 측면에서는 미술품을 전부 전시하는 것이 오히려 손실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

공개 전시하고자 하는 미술품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미술관의 규모도 키워야 한다.

하지만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미술품이 모두 관객들에게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미술관을 확장할 경우 미술관 확장으로 인한 비용이 미술관 확장을 통해 미술품을 전시해야 얻는 만족보다 크게 된다.

이러한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의 비교 과정에서 미술품의 공개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인센티브가 제공되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대부분 정부 소유인 경우가 많다.

이들 공공미술관은 소장품을 판매하여 수익이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해당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어떠한 인센티브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미술관 재정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품 판매로 인한 수익은 일반공공기금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정확히 말해 오히려 손실이 유발된다고 볼 수 있다.

미술관이 미술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거둘 경우 정부에서는 해당 수익금만큼의 예산 지원을 줄이고자 하는 유인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판매로 얻은 수익은 일시적인 효과이지만, 예산의 삭감은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미술품의 공개 전시 후 판매하는 것은 오히려 손해가 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비합리적인 행태, 비경제적인 행태로 보이는 많은 일들을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치밀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행태가 도출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