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글로벌 리더십 회복 절실"
“그리스는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황이다. 세계 경제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침체기에 빠졌다.”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지난 2일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1’ 개막 총회 기조연설에서 글로벌 경제를 이같이 진단했다.

볼커 전 위원장은 “공포는 상상력을 키우면서 확대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의 연쇄 부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어 회복 시기를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프린스턴대 교수와 황웨이핑 런민대 교수도 글로벌 경제위기가 1~2년 이상 장기화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들은 인내심을 갖고 중장기적인 인재 양성과 혁신에 나서는 국가가 위기 이후 주도권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볼커 "위기근원은 경제 불균형"

볼커 전 위원장은 “경제 위기의 근원에는 각국 경제의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다”며 “중국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지만 미국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정도”라며 “글로벌 리더십이나 구심점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볼커 전 위원장은 위기 타개책으로 리더십의 회복을 주문했다. 우선 유럽 차원의 통합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그는 “유로화가 만들어졌지만 ‘규율’이라는 문제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브뤼셀 등에 유럽 재정을 총괄하는 기구를 두고 이곳이 권위을 갖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집중적인 규율 집행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볼커 전 위원장은 “통화 정책 측면에서는 유럽이나 미국 모두 남아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 3차 양적 완화와 같은 극단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게 봤다.

최근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단기 국채를 팔고 장기 국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통해 여력을 상당부분 소진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내가 현재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농담도 섞었다.

볼커 전 위원장은 “이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무엇보다 한계에 달한 기존 세제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경기 부양보다는 시스템과 인프라 정비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 등의 복지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쿠야마 "긴축재정이 해법"

개막 총회에 참석한 다른 경제전문가들도 글로벌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일본계 미국인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긴축 재정 외에 다른 방법이 별로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미국 중산층의 소득은 1970년대 이후 거의 늘지 않았는데 이를 외면했다”고 말했다. 유로존의 미래에 대해서도 “지탱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견해를 내놓았다.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교정할 방법에 대해 후쿠야마 교수는 “중국이 수출보다는 내수를 늘리는 정책을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수를 늘리라는 것이 수출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며 “미비한 금융제도를 확충하고 연금제도 등으로 소비 여력을 늘리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중국 정부는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웨이핑 "유럽 복지 줄여야"

후진타오 국가주석 등 중국 정치·경제지도자들의 ‘경제교사’로 유명한 황 교수는 글로벌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과 유럽에 좀 더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그는 “미국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중국에 위안화 가치 상승을 요구하는 등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있다”며 “이 같은 방식은 오히려 부작용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이 외부 압력에 따라 화폐정책을 결정해 문제가 생긴다면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글로벌 위기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은 소비를, 유럽은 복지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의 화폐가치를 높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지나친 소비 등 자신의 문제부터 고치는 것이 자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긍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에 대해서는 과도한 복지를 줄이는 등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유럽위기 해결을 위해 중국이 유로화 채권 매입 등에 나서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데 중국이 부자인지 유럽이 부자인지에 대한 물음의 답은 명확하다”며 “유럽이 중국이 나서서 도와줘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유럽이 여러 방법을 내놨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최선을 다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중국이 유럽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와 협력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황 교수는 글로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협력체를 통한 공조를 꼽았다.

그는 “중요한 것은 당장 지도자들끼리 만나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장과 시스템을 마련하고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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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커 "한국에 '볼커룰' 적극 추천"

폴 볼커 전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은 ‘볼커룰’(Volcker Rule)로 유명하다.

볼커룰은 은행들이 고객예금이 아닌 자기자본으로 주식, 펀드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융개혁 법안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에 대한 우려를 없애기 위해 금융개혁법인 일명 ‘도드 프랭크 법안’에 포함시켰다.

금융회사 대형화에 따른 리스크 확대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은행업계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자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이던 볼커가 제안해 볼커룰이라고 부른다.

볼커 전 위원장은 자신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히는 ‘볼커룰’에 대해 큰 애정을 보였다. 그는 “한국에 적극적으로 법(볼커룰)을 도입할 것을 추천한다”며 “아시아, 유럽 등지의 더 많은 정부가 도입할수록 좋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볼커 전 위원장은 “볼커룰의 목적은 은행의 투기를 억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미국의 대형 금융사가 부실화되면서 공적자금을 투입했는데 이는 납세자들이 금융회사의 운영을 부담하는 격”이라며 “은행이 예금수신 대출 등 기본적인 자금 중개기능만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이 수익률이 높은 위험 자산에 투자할 경우 잘못되면 고객들과 정부가 손해를 부담해야 된다”며 “투기활동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