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물에 잠긴 태국... 글로벌 경제 '허우적'
50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등 태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태국 수도 방콕을 관통하는 짜오프라야강의 수위가 범람 10㎝ 직전인 약 2.4m에서 상승을 멈췄다.

태국 정부는 중대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물이 빠지는 데는 몇 주 더 걸릴 전망이기 때문이다.

방콕 50개 구 중 돈므앙과 싸이마이 등 북쪽, 서쪽 15개 구는 침수된 상태다.

여기에 방콕시민들이 시내의 물을 빼낸다며 외곽 수문을 부수면서 방콕 동부 산업단지의 침수 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2일 수쿰판 빠리팟 방콕시장은 경찰에 제방을 지키도록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쌀 경작지 및 각국 기업들의 생산기지도 침수 피해를 입어 식량가격 인상 등 불황 국면에 들어선 글로벌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봄부터 내린비가 홍수로...

태국 홍수의 원인은 우선 기후 변화로 때이르게 찾아온 우기와 평년 수준 이상의 강수량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해 태국의 우기는 4월부터 시작됐다.

태국에서 우기는 보통 6월께 시작된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올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잦은 태풍과 폭우는 라니냐 탓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여기에 7월 베트남을 강타한 태풍 녹텐도 영향을 미치며 비는 ‘물폭탄’으로 변했다.

4월 이후 지금까지 태국에 내린 비의 양은 약 2000㎜로 최근 30년간 연평균 강수량(1400㎜)을 약 43% 초과했다.

물이 불어나자 7월부터 저수 용량이 한계에 다다른 태국 주요 댐들은 남부지역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방류를 시작했다.

태국 최대 댐인 부미폰댐에서는 7월 하루 450만t을 방류했고 10월 중순에는 하루 7700만t까지 방류량을 늘렸다. 태국의 4대강인 왕,핌,욤,난강은 범람했고 산업단지와 농지가 물에 잠겼다.

배수 능력이 거의 없는 태국의 특이한 지형은 화를 부채질했다. 태국지형은 북부 산간지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지다.

4대강이 합류하는 태국에서 가장 긴 강인 짜오프라야강의 길이는 시작점인 치앙마이부터 강이 끝나는 지점인 태국만까지 총 372㎞다. 이 구간의 해발고도는 약 2m로 경사가 없고 유속은 시속 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부가 초기 대처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국 정부는 8월 초부터 대홍수가 가시화된 9월 중순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만을 고수했다.

댐,운하 등 인프라 구축이 미흡한 점도 피해를 키웠다.

태국에서는 거의 매년 홍수가 일어난다.

2005년 총선에서 압승한 탁신 친나왓 정부는 대규모 치수사업을 계획했지만 군사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총리가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약해진 정치 기반을 다지고자 치수사업 대신 임금 인상과 쌀 고가 매입 등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냈다.

현재 태국의 댐, 운하 등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지어진 것이다.

당시 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1000㎜ 수준이었다. 정부의 치수 관리 초점도 홍수보다는 가뭄에 집중돼 있다.

#쌀.설탕값 급등... 공장 조업 중단

홍수 피해는 쌀 등 식품 원자재 값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태국은 세계 1위의 쌀 수출국으로 세계 쌀 거래량의 약 31%를 공급한다.

현재 태국의 쌀 경작지 중 약 15%가 침수됐다. 미국 농무부는 태국의 연간 쌀 생산량의 약 20%인 300만t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달 25일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11월 인도분 쌀 선물 가격은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으며 전날보다 약 3% 오른 파운드당 16.905센트에 거래됐다.

이는 10월10일 이후 약 12% 오른 것으로 한 달 새 최고치다.

시장 조사전문업체 씨피인터트레이드는 올해 말 쌀값이 당초 예상치보다 약 20% 높은 t당 8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설탕값도 오름세다. 태국은 세계 2위의 설탕 수출국이다.

10월25일 런던국제선물거래소에서 12월 인도분 설탕은 t당 725.8달러까지 치솟았다.

한 달 전(631.5달러)보다 14.9% 오른 것이다.

태국에 진출한 글로벌 제조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태국은 전 세계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약 30%를 외주로 생산 중이고 연간 164만대의 자동차를 위탁 생산한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피해가 크다. 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 중 약 24%인 450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도요타, 혼다와 닛산자동차는 최근 태국 조업을 전면 중단했다.

이번 홍수로 PC와 카메라 가격 인상도 예상된다.

전 세계 하드디스크 중 약 30%는 태국에서 만들어진다. 태국은 세계 2위의 HDD 수출국이다. 시장조사기관 IHS 아이서플라이는 태국 HDD 생산량이 4분기 약 3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웨스턴 디지털, 히타치, 도시바 등의 하드디스크 제조업체들은 최대 40%가량 가격 인상에 나섰다. 이 때문에 PC 가격 오름세가 예상된다.

대만 컴퓨터업체 에이서는 11월 중순께 컴퓨터 가격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메라 업체들도 울상이다.

태국에 DSLR과 렌즈 생산공장을 운영 중인 니콘은 재고로 버티고 있고 소니는 신제품 발표를 연기했다. 부품공장이 침수된 캐논은 올해 매출을 약 500억엔 하향 조정했다.

이번 홍수는 태국 경제 성장에도 제동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태국 전역에서 6500개 이상의 기업이 문을 닫고 26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집계된다. 태국중앙은행(BOT)은 지난주 올해 성장률을 당초 4.1%에서 2.6%로 크게 낮췄다.

BOT는 침수 피해에 따른 경제손실 규모가 최대 5000억바트(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임기훈 한국경제신문기자 shagg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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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폭설… 지진… 지구촌 자연재해로 몸 ‘살’

태국 홍수 외에도 지구촌 곳곳이 자연재해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뉴욕 등 북동부 지역은 때이른 폭설로 수백만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었다.

터키 강진의 피해 집계가 이뤄지기 전에 페루와 칠레지역에 또 다른 지진이 덮쳤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도 홍수가 났다.

미국 북동부 지역은 폭설에 따른 정전 피해가 이어졌다.

최대 적설량 68㎝에 달하는 폭설은 지난달 30일 그쳤지만 피해복구 작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AP통신은 전력회사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정전된 가구에 대한 전력 공급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메릴랜드에서 뉴잉글랜드에 이르는 미 북동부 지역에선 330만가구가 정전되고 도로, 철도, 항공 등 교통이 끊겼다.

남미는 강진 공포에 휩싸였다. 지난달 28일 페루 중부 해안지역을 강타했던 규모 6.9의 지진으로 10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페루 정부는 “지진이 발생한 남부 도시 이카에서 1445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택 194채와 병원 1곳,교회 2곳을 포함해 건물 708채가 지진 피해를 봤다”고 발표했다.

2010년 대규모 지진 피해를 본 칠레에서도 북부지방에서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난달 23일 발생한 터키 동부지역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00명을 넘어섰다.

터키 총리실 산하 방재청은 “대지진으로 지금까지 601명이 숨지고 4152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정부도 폭우와 홍수로 피해를 입은 토스카나와 리구리아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 650억유로의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주 초 폭우가 내려 지금까지 최소 9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