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NGO의 역사와 현주소

[Cover Story] 민주화가 키운 NGO…이념 대결에 매몰
민주화 운동 이후 탄생한 한국의 NGO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재야시민운동을 대체했다.

NGO가 주도한 낙천·낙선 운동, 촛불시위, 뉴라이트 운동 등은 정치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고 변화를 이끌어 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급성장한 NGO는 ‘제3의 권력’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시민참여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정치 지향적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 민주화 운동서 태어난 NGO

한국 NGO의 출발점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이다.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시민세력이 단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선두주자는 1989년 출범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다.

민주화 운동 이후 표현의 자유가 확대됐지만 당시 재야운동세력은 여전히 도로점거 같은 비합법 운동을 고집했고 이에 국민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경실련 창립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고 보통시민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만들기로 했다.

경실련은 합법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위하는가보다 도덕성을 지키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집단이기주의로 판단되면 기업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판단이었다.

경실련의 이러한 합법적인 노선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점차 주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았고 재야운동세력을 대체하게 되었다.

# 순수성 잃은 '진보 NGO'

1994년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한 참여연대의 출범은 NGO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경실련의 노선에 불만을 품은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참여연대는 민주노총·전교조 같은 진보 노동단체와 함께 움직였다.

좌파 이념으로 무장한 386세대들도 참여연대 실무자로 대거 들어갔다.

이후 한국의 시민단체는 경실련식의 온건시민운동과 참여연대식의 진보시민운동의 각축기로 접어들게 된다. 두 단체는 노사문제, 남북관계에서 선명한 차이를 드러냈다.

경실련이 온건 합리주의 노선을 걸은 데 반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진보 NGO들은 종북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비합법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NGO로서 기틀을 잡아 오던 이들 단체는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때 날개를 달아준 결정적 후원자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정부는 NGO 지원법을 만들어 매년 150억원을 뿌렸고 무상인력(공공근로자)까지 지원했다.

NGO 출신들은 정부 요직에도 발탁됐다. 급성장한 NGO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 NGO세력은 2000년 4월 총선 당시 낙천·낙선운동을 펴며 세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이들은 운동과정에서 ‘선거법은 악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불법 선거운동은 결국 법위에 군림하는 NGO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정치적 색채를 띤 일부 진보 NGO들은 북한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반미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진보 NGO들은 효순 미순양 사건 이후 ‘반미(反美)’라는 키워드로 뭉치며 촛불 시위를 조직화했다.

촛불 시위는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우리 사회를 수개월간 혼란에 빠뜨렸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로 이어지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시기는 NGO의 황금기였다. 청와대에 국민참여수석까지 새로 생겨 NGO 관계자들이 활동할 수 있었다.

대기업들이 NGO에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다. 아름다운가게의 박원순 변호사는 수백억원의 후원금을 모으고 포스코 같은 대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를 맡기도 했다.

# 뉴라이트 운동 등장


2004년 가을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지형도를 다시 바꿨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보안법폐지, 사학법개정 등으로 소위 좌편향 정책이 나오면서 보수적 시민세력인 뉴라이트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 회원들은 민주화 운동 출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보수단체와 차별화하면서 시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뉴라이트 단체들은 이명박 정권이 탄생한 후 더욱 힘을 얻었다.

반면 진보 NGO단체들은 힘이 약해졌다. MB정부는 NGO단체들에 무분별하게 풀렸던 예산을 대폭 줄였다.

일부 NGO 단체의 수장은 비리 사실이 밝혀져 구속되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사업 추진에 협조하는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아직까지 법정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영향력이 약해진 NGO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념의 덫에 사로잡힌 NGO는 정파적 운동으로 변질됐고 시민들의 참여도 현저히 떨어졌다.

NGO는 비정부기구(Non Governmental Organization)로서 행정부와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NGO가 시민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NGO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


---------------------------------------------------------

대표 봉사 NGO로 성장한 '굿네이버스'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는 1991년 출범한 한국 NGO단체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굿네이버스는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1991년 출발해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창립 당시 8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국내외 1800여명이고 정기후원자는 128명에서 33만여명(월 1만원 후원자 기준)으로 불어났다.

연간 2억원 수준이던 사업비도 700억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80명에 불과했던 수혜자는 전 세계 400여만명 수준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사명으로 설립된 굿네이버스는 국내 첫 긴급구호로 기록된 르완다에 이어 남아시아 쓰나미, 파키스탄 강진, 지난해 아이티와 칠레 등 국내외 재난현장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펼쳐왔다.

유엔과 지속적인 협력 사업을 진행해 1996년 국내 최초로 유엔이 NGO에 부여하는 최고 지위인 ‘포괄적협의지위(General 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았다.

이는 유엔 가입 3000여개 단체 중 4%만이 가지고 있고 국내 국제국호개발NGO 중에서는 유일하다.

2007년에는 ‘유엔 새천년개발목표상(MDGs Award)’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NGO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최근 굿네이버스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므완다 지역에 세계 최초 기생충 전문병원도 설립했다.

굿네이버스는 70%가량인 기생충 감염률을 내년까지 5% 미만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이일하 회장은 “굿네이버스가 20년간 펼쳐 온 노력의 결실이자 대한민국 원조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