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지도 정의롭지 못하며 수치스러운 전쟁을 나는 여태껏 알지 못하고, 또 읽은 적도 없습니다.

지금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분이 광저우에서 영광스럽게 펄럭이는 대영제국 깃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깃발이 추악하기 그지없는 금지물품인 아편의 밀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휘날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공포감을 느끼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38) 아편전쟁과 글로벌 불균형


1840년 영국 의회는 중국에 대한 출병 문제로 시끄러웠다.

당시 31살이었던 토리당원 윌리엄 글래드스톤(William Ewart Gladstone)은 의회 연설에서 중국과의 전쟁이 영국의 ‘영원한 치욕’(permanent disgrace)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글래드스톤은 의원들 앞에서 열변을 토했지만 결국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의회 표결에서 찬성 271표, 반대 262표의 근소한 차이로 군비지출안이 승인되고 만 것이다.

의회에서 군사비 지출이 승인됨에 따라 해군 소장 조지 엘리엇(George Elliot)을 총사령관으로 원정군이 중국으로 향하였고, 1840년 4월25일 더 타임스(The Times)가 ‘아편전쟁’(Opium War)이라고 명명한 중·영전쟁의 막이 오르게 되었다.

# 무역불균형 깨트린 아편

영국이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아편전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흠차대신 임칙서(林則徐)가 아편을 폐기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으나, 보다 근본적 원인은 영국과 중국 간의 무역 불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600년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영국에선 일찍부터 차(茶) 문화가 발달하였고,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차에 대한 소비가 급증하였다.

영국 정부는 관세를 높여 중국으로부터의 차 수입을 줄이려 했지만 수입량은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영국은 차 외에도 비단 도자기 약재 등을 중국에서 수입했는데, 이들 상품은 영국 내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이런 연유로 당시 결제수단으로 사용되던 멕시코 은화는 자꾸 중국으로만 흘러들어갔다.

중국으로 은이 대량 유출되면서 동인도회사와 영국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영국은 모직물을 중국에 수출하려 애썼지만 중국에서 모직물은 야만인들이 입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활로를 찾기가 어려웠다.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바로 아편(阿片)이었다.

1729년에 중국으로 반입된 아편은 200상자에 불과했으나 1838년에는 4만상자를 초과하였다. 영국은 아편무역을 통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무역흑자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의 아편 밀거래로 인해 중국의 아편 중독자는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고, 런던 빈민가의 아편굴 모습이 중국 전역에 그대로 옮겨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특단의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된 청나라 정부는 1839년 흠차대신 임칙서를 광저우에 파견한다.

광저우에 내려간 임칙서는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 2만상자를 몰수하여 폐기하였다.

이 사건으로 영국 정부가 격노하면서 아편전쟁이 발발하였고, 중국은 전쟁에서 패배해 치욕적인 난징조약(1842)을 맺게 된다.

# 금융위기 부른 글로벌 불균형

이제 시계를 현대로 돌려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보자.

2008년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월가의 탐욕과 미국 정부의 잘못된 금융규제 때문에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편전쟁과 마찬가지로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2008년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국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무역의 이익이 중국으로 계속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18세기와 동일하다.

중국은 지난해 약 30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중국 GDP의 5.2%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반면 미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매년 큰 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해외로부터 돈을 빌려야 했고, 중국은 미국 국채를 구입함으로써 자금 공급자 역할을 담당했다.

그 결과 미국 국채 가격은 오르고 수익률은 낮아졌는데, 금리 하락이 부동산 등 자산가격 버블로 이어지면서 금융위기의 발판이 만들어진 것이다.

# 21세기 환율전쟁

현재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1980년대엔 대(對)일본 경상수지 적자가 큰 문제였다. 당시 미국은 엔화 절상을 위해 다른 선진국들과 공동전선을 형성했다.

1985년 9월 미국 영국 서독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은 뉴욕 플라자 호텔에 모여 일본 엔화의 가치를 높이기로 합의했는데, 이를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라고 한다.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달러당 240엔에서 130엔대까지 끌어내렸고, 미국의 경상수지는 개선되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여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하면서 대 중국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06년에 약 8000억달러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때의 대 중국 경상수지 적자는 2000억달러가 넘었다.

옛날 같으면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여 위안화를 대폭 절상하는 신(新)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겠지만, 중국은 이미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의 국채를 손에 가득 쥐고 있기 때문에 이제 미국은 중국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는 위안화를 절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절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글로벌 불균형은 어떤 형태로든 큰 문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아편전쟁 같은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미국 경제의 붕괴는 세계에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과거의 아편전쟁에 이은 환율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글로벌 불균형

(global imbalance)

중국 등 신흥국들의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로 대표되는 무역 불균형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