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상인의 수수료 부담 줄여줘야"

"소비자들에게 불편 전가해선 안돼"

신용카드 가맹점이 1만원 이하의 소액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소액 물품을 주로 취급하는 영세상인들에게 카드 수수료가 큰 부담이 된다는 논리로 관련 법령 개정을 밀어붙일 태세다.

다른 나라에서는 카드 소액결제를 거부할 때 이를 처벌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1항은 고객이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가맹점은 결제를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조항도 두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한편에서는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하는 졸속행정이라는 비난도 거세게 일고 있다.

정부가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할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외국에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의무화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며 없앤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을 뿐더러 정책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 소액결제가 빈번한 소형 사업장의 사업주들도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갈라지고 있다.

신용카드 소액 결제 거부를 허용하려는 정부 정책에 대한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영세 상공인들은 대기업은 무분별하게 골목상권에 진입하고 카드사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는 상황에서 600만 자영업자들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소액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선 영세상인들의 과도한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이 첫째로 꼽힌다.

최승재 전국 소상공인단체 연합회 사무총장은 “식당이나 미장원에서 골프장보다 2배나 높은 신용카드 수수료를 받는 것은 카드사들의 억지이자 횡포”라면서 이 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소액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현재 1만원 이하 결제 거부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 중소상인들의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헌법상 과잉금지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해당 정책을 추진 중인 금융위원회는 외국에서는 소액에 신용카드 결제를 의무화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든다.

또 신용카드 사용 제한이 세원 확충이나 소득공제 혜택 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특히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면 각종 소득공제 등은 그대로 받을 수 있으면서도 신용카드로 인한 과다소비도 막을 수 있어 가계부채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또 1만원 이하 결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가맹점이 손님 확보 차원에서 카드를 계속 받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 1만원 이하를 결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반대

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국장은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그는 “그동안 정부의 신용카드 사용 권장책으로 이제는 카드가 현금보다도 더 일반적인 결제수단이 됐는데 지금 와서 정부가 입장을 바꿔 다시 소비자들에게 현금을 가지고 다니라고 강요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는 것이다.

그는 영세상인의 부담을 줄인다는 금융위의 정책 방향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이 꼭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전가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는 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를 개편해 소상공인들의 부담을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지 이를 소비자들에게 떠 넘기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신용카드 소액결제는 세원의 투명성을 높이고 동전 사용을 줄여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등 긍정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갑자기 이를 제한하겠다는 건 국민 전체의 효용 측면에선 분명히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중소가맹점의 소액결제 수수료 인하, 세제혜택 등 다른 보완책을 마련하는 게 더 현명하다”고 제언했다.

카드사 역시 부정적이다.

카드 업계 관계자들은 신용카드로 결제할 경우 가맹점 입장에서 1만2000원 정도가 손익분기점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만원 이상만 결제할 경우 가맹점은 단순 계산상으로는 유리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드를 받지 않으면 고객들의 불만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장기적으로 카드 사용을 줄여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내수 위축도 가져올 수 있다며 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생각하기

소액에 대해 신용카드 결제 거부를 못하도록 해놓은 현행 법은 분명 문제가 없지 않다.

만약 특정 가게는 1만원 이하에 대해 신용카드를 거부하고, 다른 곳은 허용한다면 카드를 쓰고 싶은 소비자들은 알아서 이를 받아주는 가게로 갈 것이고 현금이든 카드든 상관없는 사람은 아무 곳이나 무작위로 갈 것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이렇게 자율적으로 내버려 두면 될 일을 정부가 나서서 소액 결제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해 놓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신용카드로 사소한 구매까지 결제하는 것이 생활화된 지금에 와서 이를 다시 되돌리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원론적으로는 찬성할 만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찬성하기 어렵다.

이미 소비자에게 너무 익숙해진 소비습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소액결제 거부를 허용하는 데 그쳐서는 안되며 반드시 보완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그것은 신용카드 수수료를 매출액에 따라 단계적으로 내리는 방안이 될 수도 있고 현금 결제와 신용카드 결제 가격에 차별을 하는 관행을 아예 양성화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보완책을 동시에 시행할 경우 가맹점들이 신용카드 소액결제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더라도 큰 불편은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일은 정부는 국세를 신용카드로 낼 경우 수수료 1.2%를 가맹점 격인 국가가 내지 않고 납세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영세 자영업자의 수수료 부담을 낮추겠다며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감수하라는 식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신용카드 수수료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10월 13일자 A1면

금융위원회가 1만원 이하 소액에 대해선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할 수 있도록 추진하다가 백지화하기로 방향을 급선회한 것은 음식점업계 등 영세 자영업자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업중앙회는 12일 “소액결제 거부 허용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소규모 식당에도 도움이 안 되는 실효성 없는 정책”이라며 ‘강력 반대’의 뜻을 밝혔다.

오는 18일 서울 잠실에서 ‘범외식인 10만명 결의대회’를 여는 이 단체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 개정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하기 위해 내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정부는 중소상인의 가맹점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목적에서 법 개정을 언급했지만,상인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다.

중앙회 관계자는 “회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 음식점 업주들이 법률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1만원 이하 결제는 비중이 높지 않고 손님들의 불만만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와 관련한 음식점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은 평균 2.65% 수준인 가맹점 수수료를 1.5%까지 내려달라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를 위한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소상공인단체연합회 측도 “카드사의 우월적 지위를 바로잡지 않는 한 모두에게 불만인 정책이 될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류시훈/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