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37) 민주주의의 발달과 소득 불평등
한 나라의 정치체제는 정치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소득불평등 정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표방하고 있는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제도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63%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는 19세기 말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았던 인구가 12%라는 사실과 비교할 때 급격한 상승이라 아니할 수 없다.

북한의 공식적인 국가명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실질적인 이행 여부를 떠나 이미 모든 국가들이 추종하고 있는 보편적인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수행하는 대표적인 의사결정 수단 중 하나는 선거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선거 형태가 자리매김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초기에는 유권자의 표를 직접 돈을 주고 매수하는 행위가 빈번하였으며, 사회적으로도 지탄받을 일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돈 주고 유권자의 표 매수

영국의 경우에는 돈을 주고 표를 매수한 기록이 17세기부터 목격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행은 1883년 영국의회에서 부정부패 행위 방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만연했다고 한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발행되었던 당시 신문들인 <엘리자베스타운 포스트>나 <왓킨스 익스프레스> 등에서는 유권자의 표의 가격이 얼마에 거래되었다는 등의 언급이 남아 있으며, 당시 유권자들이 투표하기 전에 먼저 돈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

오늘날 보편적인 투표 방식인 비밀투표를 미국에서 처음 도입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관행을 없애기 위한 조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밀투표제도가 도입되면서 정치가들은 돈을 받은 유권자들이 당초 약속한 대로 투표를 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이유로 돈을 주고 유권자의 표를 사려는 행위가 다소 진정되어 갔다.

소득불평등 키우는 부정선거

[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37) 민주주의의 발달과 소득 불평등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정선거가 바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돈을 주고 유권자의 표를 사는 행위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밀투표로 인해서 약속대로 투표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돈을 주고 기권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즉, 투표를 하러 가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것이다.

앞서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추종하고 있지만, 국가마다 민주주의가 성숙된 정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20세기 이전과 같이 직접적으로 금권선거를 치르도록 허용하는 곳은 없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교묘한 방식으로 유리한 선거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오늘날의 후보자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TV광고, 브로셔 등을 제작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광고비를 지출해야 한다.

이 밖에도 유권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많은 마케팅 비용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제도가 발달한 나라들은 이러한 금전적인 차이로 인해 후보자들이 상이하게 노출되고 그로 인해 선거 결과가 달라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 선거 비용에 대한 한도를 정하거나 선거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제도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들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지 못한 사례도 많으며, 도입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감시, 관리 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명목상의 제도에 불과한 나라들이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는 과거처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선거가 금전적인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비단 정치체제의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소득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측면 또한 함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로 지적된다.

개발도상국의 정치 체계를 연구한 사회학자들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표를 살 수 있는 경우, 소득불평등도를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유권자의 표를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정치가들은 올바른 정책을 집행하고 이에 대한 결과로 표를 모집하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다음 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를 살 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의 표를 돈을 주고 판매한 유권자 역시 정책에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의 표를 돈을 주고 판매했기 때문에 국정을 감시하거나 당선된 사람들의 정책에 대한 기대가 적어진다.

즉 국정에 대해 점점 무관심하게 된다.

민주주의가 소득불평등 개선

소득불평등도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지니계수이다.

지니계수는 이탈리아 통계학자인 지니가 고안한 것으로 수치가 0에 가까울수록 해당 국가의 소득분포 상태는 균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상태를 나타내준다.

이러한 지니계수를 통해서 아시아 지역 주요 국가들의 소득불평등도를 살펴보면, 최근까지 정치적 소요를 경험했던 나라들인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은 한국과 대만 등 비교적 민주주의 체제를 잘 완성한 나라에 비해 지니계수가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나라들의 소득분포상태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에만 영향을 받아 지금과 같은 상태를 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소득분포는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경제적 변화 과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효과적으로 구축한 나라라면 소득불평등도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더욱 넓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완성도 높은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소득불평등도를 개선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