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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36) 짜장면과 자장면, 그리고 ‘네트워크 외부성’
허균의 고대소설 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은 서자라는 신분 탓에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길동은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되고, 후에는 율도국을 다스리는 왕의 위치까지 오르게 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홍길동이 탄생한 셈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처지도 그동안 홍길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수십 년간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자의 신분도 아니고 지금이 홍길동이 살던 조선시대도 아니거늘, 우리는 왜 그동안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던 것일까?



짜장면이라 못부른 사연

1986년 국립국어원은 짜장면 대신 자장면을 표준어로 채택하였다.

중국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한 짜장면의 중국 발음이 ‘zha-jiang-mia-n’이고, 이 중 초성인 ‘zh’를 된소리를 피하는 중국어 표기 원칙에 따라 ‘ㅈ’으로 발음하고 적는 것이 맞는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자장면’보다 ‘짜장면’이 많이 사용되어 왔다.

사람들이 왜 자장면보다 짜장면으로 읽고 쓰는 것을 선호하였는지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찌됐든 대다수의 언중(言衆)들은 이로 인하여 표준어 원칙에 어긋나는 언어생활을 그동안 해오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8월 국립국어원이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짜장면과 먹거리 등 39개 단어를 표준어로 인정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현재의 표준어와 표기 형태는 다르지만 짜장면이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점을 표준어 인정의 근거로 들었다.

방랑의 길을 떠나기 전 홍길동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25년 만에 호부호형이 허락된 셈이다.

그렇다면 짜장면의 표준어 인정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동안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맞게 발음해온 사람들은 직업의 특성상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해야 하는 아나운서와 국어학자들을 비롯한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도 억지춘향 식으로 자장면이라고 발음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장면은 우리에게 어색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표기는 자장면으로 하더라도 발음만큼은 짜장면으로 해왔다.

결국 자장면은 언어학적으로는 맞지만, 대다수의 언어 사용자에게는 외면을 받는, 단지 사전 속에 존재하는 단어였던 셈이다.

반면 짜장면은 비표준어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단어에 힘이 생겨났다.

즉, 다수의 언중이 사용하는 실질적인 표준어는 짜장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국립국어원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짜장면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네트워크 외부성’의 선순환

이러한 과정을 재화의 소비와 연결하여 생각해보면 짜장면이라는 단어는 하나의 재화이고, 짜장면이라고 읽고 쓰는 언중은 그 재화를 사용하는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표준어로의 인정은 재화로서의 짜장면의 가치가 상승한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짜장면’이라는 재화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재화의 가치가 상승했고, 이로 인해 결국 표준어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어떤 재화의 가치나 효용이 그 재화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수에 따라 상승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라고 한다.

네트워크 외부성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네트워크 외부성이 스스로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다수의 소비자가 구입한 재화는 가치가 상승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효용이 높은 재화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그 재화를 구매하도록 유인하는 효과를 불러오고, 이에 따라 소비자의 수는 증가하게 된다.

즉,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유발하여 그 재화를 사용하는 전체 소비자의 수를 증가시키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되면서 재화의 가치도 더불어 상승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네트워크 외부성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기술 발전이 네트워크 외부성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기술 발전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량에 변화가 없더라도 산출량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면 생산비용이 절감되어 재화의 시장가격을 인하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전보다 싸지만 기술 발전으로 성능은 향상된 재화는 소비자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재화의 유용성도 높여 네트워크 외부성을 발생시킨다.


다시 짜장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짜장면의 표준어 인정 소식에 대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언어정책에 예외를 두거나 자주 변경하는 것은 우리말을 훼손하고 문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라며 짜장면의 표준어 인정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네트워크 외부성도 마찬가지이다. 네트워크 외부성이 시장에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선순환구조는 자칫 한 재화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작용하여 경쟁 위치에 놓여 있는 재화의 판매나 후발 기업들의 시장진입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선순환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시장을 독점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장에 부정적 영향도


한편 기능이나 효용은 열등하지만 값이 싸거나 먼저 시장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네트워크 외부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소비자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재화를 다른 재화로 바꿀 때 소요되는 비용, 즉 전환비용이 클 때 발생한다.

다시 말해 기능은 떨어지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어서 다른 재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노력이 들고 비용도 막대하여 보다 성능이 좋고 효용이 높은 재화의 사용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소비자들은 네트워크 외부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저성능·저효율의 재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러한 점도 네트워크 외부성이 시장에 가져오는 부정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경제용어풀이

▧ 쏠림현상: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두 재화 중 어느 한 재화의 시장 점유율이 갑자기 상승하여 시장을 독점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 전환비용: 소비자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재화가 아닌 다른 재화를 사용하려고 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전환비용은 금전적인 비용뿐만 아니라 개인의 희생이나 노력 등 무형의 비용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