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오르페우스의 지하세계 여행과 매몰비용
오르페우스는 아폴론과 뮤즈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 아폴론은 태양의 신인 동시에 음악과 시의 신이기도 하다.

오르페우스는 부모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아 어렸을 적부터 출중한 음악 솜씨를 뽐냈다.

아폴론은 그런 오르페우스를 매우 아껴 금으로 된 리라(고대 그리스의 현악기)를 선물하고, 연주하는 법을 직접 가르쳤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실력은 매우 뛰어나 사람과 동물은 물론 감정이 없는 암석까지도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란 요정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혼 후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던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발뒤꿈치를 물려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뒤늦게 아내의 시체를 발견한 오르페우스는 비통한 울음을 터뜨린다.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였고, 아직 신혼이었기 때문에 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아내 구하려 '죽음의 신' 만나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연주해 자신의 슬픔을 세상에 알렸다.

그의 구슬픈 리라 소리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리라를 연주한다고 해서 죽은 에우리디케가 돌아올리는 없다.

자신의 연주가 무익함을 느낀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에 있는 명부(冥府)로 가 죽음의 신 하데스를 만나기로 마음먹는다.

원래 지하세계는 인간이 살아서 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아내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사랑은 죽음마저 초월했다.

우여곡절 끝에 하데스 앞에 서게 된 오르페우스는 억울하게 죽은 아내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세상에 에우리디케 하나뿐이랴.

하데스는 그에게 죽은 사람은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는 지하세계의 규칙을 설명했다.

대답을 들은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구슬픈 연주가 퍼져나가자 지하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받은 하데스는 부하들에게 에우리디케를 데려올 것을 명령한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에우리디케를 되돌려주지만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뛸 듯이 기뻐하며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하세계를 떠났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지상으로 나가는 입구까지는 잘 참아냈지만, 빛이 보이자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린 것이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지하세계로 다시 끌려갔고, 오르페우스는 땅을 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환생을 위해 명부를 여행하는 이야기는 세계 여러 신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화에서 결말은 오르페우스 이야기처럼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이는 죽은 사람은 되돌아올 수 없다는 불변의 원리를 고대인들이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 속담에는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지 못한다”는 말이 있으며, 서양 속담에도 “우유를 쏟아 버린 후에 울어도 소용없다(Don’t cry over spilt milk)”란 말이 있다.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다 헛된 것이다.

현실에서 죽은 사람은 어떤 방법을 써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을 위해 슬퍼하더라도 환생을 위해 노력을 해서는 안 된다.

회수할 수 없는 비용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는 원리는 죽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원리는 사실 경제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교과서에서는 선택을 할 때 기회비용을 따져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합리적 선택과 관련해서 알아야 할 또 하나의 비용 개념이 있다.

그것은 매몰비용(sunk cost)이라고 하는 것이다.

매몰비용이란 일단 지출하고 난 뒤에는 어떤 방법을 써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그 이름처럼 매몰이 되어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비용인 것이다.

뮤지컬 티켓을 한번 예로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뮤지컬 티켓을 10만원에 구입했고, 이것을 같은 가격에 남에게 넘길 수 있다면 매몰비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티켓을 되파는 것이 불가능하고, 환불도 되지 않는다면 티켓 구입비용 10만원은 매몰비용이 된다.

매몰비용을 따질 때는 시점도 중요하다.

재판매와 환불이 가능해도 일단 뮤지컬이 시작되면 티켓 구입비용은 매몰비용이 되기 때문이다.

매몰비용은 어떤 선택을 하든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이므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어선 안 된다.

즉 매몰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몰비용에 대해 아까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출한 비용이 클수록 사람들은 본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관람을 계속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10만원을 주고 티켓을 구입했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해당 뮤지컬이 수준 이하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속 관람을 하는 것이 고역일 정도라면 티켓 구입비용을 아까워하지 말고 자리를 뜨는 것이 옳다.

하지만 사람들은 ‘10만원이나 주고 표를 구입했는데, 참고 계속 관람하자’고 생각하기 쉽다.

10만원은 되찾을 수 없지만 시간을 허비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은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해야 한다.

매몰비용 연연해선 안돼

국책사업도 이와 마찬가지다. 어떤 국책사업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정부는 국익을 위해 이를 중단해야 한다.

만약 지금까지 들인 비용을 아까워해 사업을 계속 진행한다면 아까운 세금을 추가로 낭비하는 꼴이 된다.

먼 옛날 제나라 군주 강태공은 자신을 버린 전처 앞에서 그릇의 물을 쏟아버린 후 이를 다시 주워 담으라고 말했다.

만약 전처가 바닥의 물을 그릇에 다시 담으려 애썼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또 있었을까?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기회비용을 정확히 계산하고, 매몰비용은 무시해야 한다.

매몰비용에 매달려 산다면 우리는 지하세계를 맴도는 오르페우스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경제 용어 풀이

매몰비용(sunk cost)

한번 지출하고 난 뒤에는 어떤 방법을 써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