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푸틴의 귀환… 러시아는 무늬만 민주주의?
“푸틴 없이도 러시아는 잘 돌아간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푸틴 총리를 추대한 다음날인 25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푸슈킨 광장에 시민 500여명이 모였다.

푸틴이 내년 대선에 출마하기로 한 것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 위해서다.

다음날에도 수백명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나는 푸틴 없는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중심가 푸슈킨 광장에 모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푸틴의 복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내년 대선에 틀림없이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WSJ는 “모스크바 인구의 40%,기타 도시 인구의 20~30%를 차지하는 중산층은 국가 정치를 좌우하는 시한 폭탄과도 같다”며 “이들이 만족할 만한 정권 교체 없이는 더 급진적이고 광범위한 반대 세력과 마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푸틴 러시아 총리가 내년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직에 복귀할 의사를 피력하면서 ‘무늬만 민주주의’인 러시아의 정치제도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집권 당시 부패와 비리,정실인사를 남발했던 푸틴은 3선 연임 금지법을 피하기 위해 2008년 자신의 측근으로 제1부총리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46)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그사이 대통령 임기는 4년에서 6년으로 늘었다. 푸틴 총리가 내년 3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 역사상 또 한 명의 장기 집권자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임기가 4년에서 6년(중임 가능)으로 바뀌어 연임에 성공하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면서 싹튼 러시아 민주주의가 2000~2008년 그의 1차 집권기에 심각하게 퇴보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집권 통합러시아당 등 친푸틴계 정당이 2007년 총선에서 두마(하원)의석 3분의 2를 차지하면서 푸틴의 지지기반을 굳히는 동안 반대 목소리를 내는 야당 인사들은 구금·폭행 등 탄압을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금의 러시아는 국가보안위원회(KGB) 아래서 숨도 못 쉬던 과거의 러시아가 아니며 국민은 민주화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푸틴이 언론홍보전문가 등 정치꾼을 동원해 밀실 흥정을 민주 절차로 둔갑시켰지만 선택 없는 정치 시스템에 국민들의 인내심이 바닥났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마르코프 통합러시아당 의원은 “메드베데프의 인기가 떨어졌기 때문에 푸틴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푸틴의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사회는 침체에 빠져들었다.

러시아 경제지표는 수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원유·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으로 성장세를 보였지만 실제 자국 내 생산부문 투자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재집권해도 일자리는 부족하고 부패와 관치경제는 만연해 경제 활력이 죽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러시아 언론도 푸틴의 귀환을 성토하고 나섰다.

국영 언론인 모스코브스키예 노보스티는 사설에서 “(푸틴-메드베데프 체제는) 외부 경제요인에 대한 면역력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야당지인 뉴타임스는 “푸틴은 국가권력의 평화로운 이양을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생애 최대의 실수를 저질렀다”며 그를 남미 독재자에 비유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푸틴의 당선은 거의 확정적이다.

여당에 마땅한 후보자가 없고 반대편인 자유민주당의 지지도 약하기 때문이다.

입지가 흔들리는 쪽은 푸틴이 아니라 그와 역할을 바꾸기로 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 재직 시 시도한 개혁정책의 실패로 푸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통합러시아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푸틴이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로써 푸틴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집권 여당 후보로 결정됐으며 대통령 당선도 확정적이다.

러시아에서는 통합러시아당에 맞설 정치 세력이 없는 데다 푸틴의 대중적 인기가 지지율 60%대를 보일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차기 행정부에서 총리직을 맡기로 했다.

사실 재임기간 8년 내내 70% 이상의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푸틴은 3선 개헌을 통해 권력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슬라브 민족의 자존심과 러시아 민주주의에 대한 외부 세계의 평가를 의식해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푸틴은 자신의 권력욕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이를 반영한 절묘한 선택이 양두체제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3선 연임을 금지한 헌법상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준수하면서 정치 권력을 놓지 않고 지속해 나가기 위한 고육지책을 펴온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초(超)대통령제와 국가자본주의,이중권력,관리민주주의 등이 다함께 공존하고 묵인되는 러시아만의 특징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많은 전문가는 푸틴이 대통령이 돼도 러시아의 국내외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며 한반도 정책도 현 정부의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푸틴이 대통령직에 복귀해도 공식적으로 미·러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

장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ja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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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경제연합 건설"...푸틴 업적쌓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옛 소련 국가들과 함께 유럽연합(EU)과 유사한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푸틴이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업적 세우기’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러시아가 벨라루스·카자흐스탄과 함께 관세동맹을 맺어 관련 장벽을 제거했다고 전했다.

내년 1월부터는 이를 ‘공동경제구역(common economic space)’으로 확대시켜 상품과 서비스,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의 계획대로 공동경제구역이 생긴다면 1억6500만명의 공동시장이 탄생하게 되며 이 규모는 구소련 인구의 60%에 해당한다고 FT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벨라루스,카자흐스탄 이들 3개 나라의 총리는 지난달 초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갖고 현 관세동맹 체제를 2013년까지 ‘유라시아 경제연합(economic union)’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설정했다.

회담에서는 공동화폐 전면 도입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푸틴은 당시 회담 후 “유라시아 경제연합의 탄생은 진정으로 국가 간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건”이라며 “소련연방 붕괴 후 처음으로 이 공간에서 경제 및 무역 관계 회복으로 나가는 실질적인 첫 단추를 채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어 유라시아경제연합이 창설되면 회원국들은 EU와 자유무역협정(FTA) 회담을 시작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푸틴의 발언이 다소 과장된 면이 있을 수 있으나 과거와 달리 이번엔 구소련 국가들의 재통합 움직임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FT는 내다봤다.

FT는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이 별 성과 없이 18년간 진행되고 있다”며 “유라시아경제연합이 창설되면 푸틴이 지난해 11월 독일에서 제시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걸친 조화로운 경제공동체’ 구상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