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슈퍼 판매와 소비자 후생

이명박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세제,재정,건강 등 주요 분야의 경제정책이 잇달아 폐기되거나 표류하고 있다. 그것도 야당이 아닌 여당의 벽에 막혀서다. 내달 재·보선과 내년 총선 표를 의식한 여당의 포퓰리즘 행보에 정부 정책이 설 자리를 잃는 형국이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감기약의 슈퍼 판매 허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은 여당이 반기를 들면서 국회 처리가 어려워졌다.


- 9월29일 한국경제신문

☞ 경제정책(economic policy)은 정부가 특정한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경제의 전체 또는 일부의 활동에 영향을 끼치려는 행위로 규정된다.

경제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로는 △성장 △물가 △대내외 균형(국제수지의 균형) 등이 꼽힌다.

다시 말해 꾸준한 성장과 물가안정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정책이 성장과 물가,국제수지라는 3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

이를 경제정책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충)라고 한다.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면 다른 목표는 훼손된다는 뜻이다.그래서 현실에 맞는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내 이를 주도면밀하게 시행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해당사자별로도 상이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생산자(기업)와 소비자의 이익이 충돌할 때 경제정책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감기약의 슈퍼 판매나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지난해 말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논란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감기약의 슈퍼 판매를 금지하거나 고추장 두부 세탁비누 같은 업종에 대기업들의 진출을 제한하는 것,그리고 대형 유통점의 값싼 치킨 판매 금지 압력 등은 모두 특정한 생산자를 위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6만명에 달하는 약사,두부나 고추장을 만드는 기업,소규모 치킨 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도 모두 우리의 이웃이다.

이들이 잘사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슈퍼에서 감기약 정도는 살 수 있게 되면 약국이 문을 닫아 한밤중에 약을 못 구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통큰 치킨’이 지금도 판매된다면 보다 싼 치킨을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대기업들이 두부나 고추장,절연전선,금형 등의 사업을 못하게 되면 기업들 간 경쟁강도가 약해져 소비자들로선 지금보다 낮은 질의 상품을 비싸게 사야 할 가능성이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후생이 줄어드는 것이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국회에선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정책들이 종종 추진된다.

특정 소수의 생산자와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생산자를 위한 것만이 정의이고 소비자를 위한 정책은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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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이야기 ⑧ -외환시장


하루 4조달러 거래… 런던·뉴욕·도쿄가 3대 시장


우리돈과 외국돈의 교환비율인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외환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외환시장은 외환을 사고파는 당사자가 있다는 점에서 일반 시장과 마찬가지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적인 시장이라는 점에서 일반 시장과 차이가 있다.

외환시장엔 특정 장소나 건물과 같은 공간에서뿐만 아니라 전화,컴퓨터 또는 기타 통신수단을 이용해 이뤄지는 외환거래 행위까지 포함한다.

외환시장의 특징은 먼저 ‘범 세계적 시장’이라는 점이다.외환규제의 완화,시장정보의 확산,거래 범위의 광역화 등으로 외환시장은 범세계적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각국의 자본 및 외환거래 규제 완화로 하나의 세계시장은 가속화됐다.

또 외환시장은 한순간도 쉬지 않는 ‘24시간 시장’이다.

런던 외환시장이 문을 닫을 즈음엔 뉴욕 외환시장이 문을 열고,뉴욕이 잠들 때쯤이면 도쿄 외환시장에서 거래가 시작된다.

주요 외환시장의 거래시간이 부분적으로 중복되면서 24시간 연속적으로 외환거래는 이뤄진다.

셋째는 외환거래 중 상당 부분이 장외거래의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장외시장이란 특정 장소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거래소와는 달리 전화나 컴퓨터를 통해 매수자와 매도자 간 거래가 이뤄지는 형태다.

외환을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사람들을 딜러라고 하는데 이들은 은행 딜링룸에서 전화나 컴퓨터를 이용해 외환을 매매한다.

넷째로 외환시장은 제로섬(zero sum) 시장이다.

한쪽 거래자가 이익을 얻었다면 그 상대방은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손실을 입게 된다.

마지막으로 외환시장은 소매보다는 도매를 위주로 하는 시장이다.

외환거래는 은행과 고객 간 소액단위로 거래가 이뤄지는 ‘대고객 거래’와 은행들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은행간 거래’로 나뉘는데 은행 간 거래가 전체 거래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외환시장의 참가자는 △외환을 취급하는 외국환은행 △외국환은행의 고객 △외환 브로커와 딜러 △중앙은행 등이다.외국환은행의 고객에는 수출입을 위해 외국돈을 사고파는 무역업자,기업,연기금과 펀드 등 국제 투자자,환투기자 등이 있다.

무역업자가 외환을 사거나 팔려고 하면 외국환은행은 이에 대응해 외환을 팔거나 사 외환거래를 중개한다.은행은 중개비로 수수료를 받는다.

외환 브로커는 일반 고객과 은행 사이에서 외환거래를 중개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외환 딜러는 자기 계산,그러니까 고객돈이 아니라 자기 돈(은행에 속한 딜러라면 은행 돈)을 가지고 외환을 사거나 팔아 환율변동에 따라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중앙은행도 외환시장의 중요한 참가자인데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곤 한다.

세계의 3대 외환시장으론 런던 뉴욕 도쿄가 꼽힌다.이 가운데 런던과 뉴욕이 양대 시장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3년마다 세계 외환시장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데 지난해 4월 기준 런던이 전체 거래의 36.7%,뉴욕 17.9%로 두 시장이 54%를 차지했다.

이어 도쿄(6.2%),싱가포르(5.3%),스위스(5.2%),홍콩(4.7%),호주(3.8%) 순이다.

하루에 거래되는 외환은 평균 4조달러 정도다.2001년에만 해도 1조2000억달러였으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래 통화별로는 미국 달러화가 42% 가량이며 유로화(약 20%),엔화(10%),파운드(6%) 순이다.

최근엔 중국과 인도 경제의 고성장에 힘입어 도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시장에서 외환거래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으며,루피(인도),위안(중국),레알(브라질)화 등 신흥국 통화 관련 거래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또 헤지펀드 연기금 뮤추얼펀드 보험사 중앙은행 등이 외환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속히 높아져 전체의 48%에 이르고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