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대기업의 문어발식 싹쓸이 막아야 ”

반 “대기업 뿐만 아니라 中企도 죽을 것”

동반성장위원회가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와 막걸리 재생타이어 등 16개 품목을 1차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대기업의 사업참여가 제한되거나 금지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부터 중소기업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5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업종신청을 받은 234개중 45개를 1차로 걸러냈고 이번에 이중에서 16개를 우선 1차로 선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업이양’ 1개(세탁비누), ‘사업진입자제’ 4개, ‘사업확장 자제’ 11개 업종이 선정됐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된 품목은 내달부터 향후 3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협의를 통해 대기업의 사업철수 내지는 확장 자제가 이뤄진다.

이같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에 대해서는 그러나 찬반 양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동반성장 공생발전이라는 정부 정책에 부합하도록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대는 자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 제도가 기업의 자유로운 사업활동에 제약을 가하고 결과적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게도 독이 된다는 입장도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대기업은 갈수록 살이 찌고 중소기업은 여위고 있다”며 “대기업 순이익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오히려 줄어들고 중기 근로자들의 임금도 제자리 걸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양극화가 지금처럼 확대되면 우리사회는 임계점을 넘어 폭발할 수도 있다”며 경제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일정 부분의 보호장치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정부 주도의 재정 금융및 세제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대기업들이 정작 지금와서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공정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같다는 지적도 있다.

중소기업인 백천세척기의 임성호 대표는 “현재 이동통신,반도체,철강 등 주요 산업 모두 한두 기업의 독과점 상태”라며 “대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아 성장했지만 지금 중소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작은 중소기업과 같은 링에서 싸우는 것은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제도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돈 벌이가 좀 된다고 소문난 영역에는 대기업이 문어발 식으로 무차별하게 들어와 시장을 싹쓸이 하는 것을 막기위해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이 신성장동력이라는 미명 아래 중소기업 영역까지 무차별 침범하는 사례는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적합업종은 그런 의미에서 일정 기간만이라도 보호막을 쳐두자는 의미”라며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눠 규제하는 것은 동태적인 기업 생태계와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게 반대론의 주된 근거다.

중소기업의 사업이 호조를 보여 기업규모가 커지면 언젠가 대기업이 되는데 대기업이 되는 순간 해당 업종에서 손을 떼거나 더 이상 사업을 확장시키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기 적합업종은 기업가에게 기업을 키우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는 비난도 그래서 나온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시행하다가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결과적으로 유사한 제도인데 중기 고유업종제도가 왜 폐지됐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중기 고유업종제도가 폐지된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과보호로 오히려 중기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 때문이었는데 중기 적합업종 역시 똑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중소기업 보호제도가 적은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강력한 중소기업 대국으로 성장했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다.

대기업 뿐 아니라 납품 중소기업도 죽이는 제도라는 비난도 있다.

대기업에 OEM(주문자 상표부착생산)으로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이 다수인 경우가 많은데 해당 대기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돼 해당 업종에서 철수하거나 사업확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경우 결과적으로 수 많은 납품 중소기업을 죽이게 된다는 얘기다.

규제 대상인 대기업 기준이 애매하다는 불만도 있다.

처음에 근로자 수 300인 이상을 대상으로 하려다 이를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계열사로 축소하더니 다시 두 가지 기준을 혼용하는 식으로 계속 바꿔 혼선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중기 적합업종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처음 그 구상을 밝혔을 때부터 숱한 논란을 불러왔다.

동반성장 상생협력의 핵심 부분이라는 주장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이분법식으로 편을 갈라 오히려 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것이 주된 논란이었다.

사실 우리 산업계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고 결과적으로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을 빼고 지금 한국 경제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대기업이 우리 경제에 공헌한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대로 과거 대기업이 어떻게 성장해왔는가를 돌이켜 보면 지금 중소기업에게 무조건 대기업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라는 요구 또한 다소 무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몇년간 우리경제가 비교적 호조를 보여왔지만 그 과실이 대기업 종사자나 관련자들에게 집중돼 왔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소외되어 왔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 양극화의 상당 부분이 이런 측면에서 발생한다는 지적에도 그래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사업영역을 둘러싼 논란과 분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대답은 쉽지 않다. 다만 현실적으로 중기 적합업종만을 놓고 본다면 이 제도의 운영을 미래지향적으로 하는 것이 그나마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 아닐까 생각된다.

다시말해 기존에 대기업이 이미 참여하고 있는 사업부문에 대한 규제는 가급적 하지 않고 향후 신규로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는 분야에 중기 적합업종 적용을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기존에 대기업이 진출한 업종에서도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일정 장치는 필요하다. 다만 그 장치는 사업철수나 사업확장 금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입찰 참가 자격 등에서 중기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주는 그런 방식이 좀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 9월 28일자 A1면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와 막걸리 재생타이어 등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됐다. 적합 업종 지정 품목은 대기업의 사업 참여를 제한하거나 금지된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7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 1차 선정 품목 16개를 발표했다. 세탁비누, 골판지 상자, 플라스틱 금형, 프레스 금형, 자동차 재제조 부품, 순대, 청국장, 고추장,간장,된장,막걸리,재생타이어,떡,기타 인쇄물,절연전선,아스콘 등이다.

동반성장위는 16개 품목을 ‘사업 이양’,‘사업 진입 자제’, ‘사업 확장 자제’ 등 3단계로 구분해 대기업 참여를 제한했다.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하는 사업 이양 품목은 세탁비누 1개였다.

나머지는 신규 진입 또는 사업 확장을 자제해야 하는 품목이다.

이번에 선정된 품목은 지난 5월 중소기업 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은 234개 품목 가운데 쟁점 소지가 큰 45개 품목에서 뽑혔다. 쟁점 품목 중 두부, 데스크톱PC, 내비게이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은 추가 논의를 거쳐야 하는 품목으로 보류했다.

동반성장위 관계자는 “쟁점 품목 중 16개 선정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29개 품목은 다음달 중 검토를 벌여 최종 선정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정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