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스위스가 고정환율제로 돌아선 까닭은?
스위스중앙은행(SNB)이 지난 6일 자국 화폐인 스위스프랑 가치가 폭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실상 고정환율제를 운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SNB는 스위스프랑 환율 하한선을 1유로당 1.20스위스프랑으로 설정하고,이 밑으로 화폐가치가 올라기면 무제한으로 유로화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스위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 통화인 스위스프랑을 쓰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로존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고,미국도 경기 침체에 빠져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인 스위스프랑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스위스프랑 가치가 폭등하며 기업들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관광산업도 타격을 받자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 스위스프랑 급등으로 수출 비상


SNB는 “유로 환율이 1.20스위스프랑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 외환을 무제한으로 매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프랑 가치가 오르는 것은 스위스가 그만큼 안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으로 퍼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고,미국 역시 지난달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국가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등 경제가 어려운 상태다.

유로존과 미국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자 투자자들이 유로와 달러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스위스프랑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는 유로존에 가입돼 있지 않아 유로존 위기의 영향을 덜 받는다.

또 스위스는 시계 등 기계제품과 제약 및 화학제품 수출을 많이 하며 꾸준히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중이다.

스위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6만7246달러로 세계 4위다.

한 상품의 가격이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오르는 것처럼 통화 역시 수요가 많으면 가치가 올라가게 돼 있다.

스위스프랑은 최근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유로뿐만 아니라 달러에 대해서도 사상 최고치로 급등했다.

스위스프랑은 올해 2월만 해도 유로화 대비 1.30스위스프랑 선이었으나 이후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화되며 가치가 20% 이상 급등,지난달에는 유로당 1.00스위스프랑대까지 떨어졌다.

통화가치가 오르면 수출산업이 타격을 받게 된다.스위스는 GDP의 35%를 수출에 의존한다.관광산업 역시 스위스의 주요 돈줄인데 통화가치가 오르면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은 뜸해지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노바티스 등 스위스계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기지가 다변화돼 있어 환율 위험에 덜 노출돼 있지만,중소기업들은 스위스프랑화 초강세 탓에 수출 경쟁력이 크게 저하돼 생존의 기로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SNB는 “스위스프랑에 대한 지나친 고평가가 스위스 경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스위스프랑 가치를 실질적이고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성공 여부는 미지수

이번 SNB의 조치는 시장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유로당 스위스프랑 환율은 고정환율제 발표 전날인 5일 1.108스위스프랑이었으나 발표 다음날인 7일 1.203스위스프랑으로 상승(통화가치 하락)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민간은행인 율리우스베어는 “SNB가 매일 665억~831억유로를 써야 환율 방어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는 “SNB의 선택은 결국 큰 손실을 입고 실패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SNB가 환율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유로화를 무제한으로 사들이더라도 자금력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투자자들이 스위스프랑을 계속 사들이면 결국 SNB가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SNB가 유럽중앙은행(ECB)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환율 방어에 나선 것도 성공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FT는 “환율 방어는 각국 중앙은행의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ECB로서는 SNB가 유로화 가치 상승을 유발하는 조치를 취하는게 탐탁치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ECB는 SNB의 조치가 나온 뒤 “SNB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 2차 통화전쟁 가능성

글로벌 외환시장의 투기성 자금이 스위스프랑에서 빠져나와 또다른 안전자산인 일본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통화로 쏠릴 가능성도 있다.브라질 싱가포르 등 신흥시장 통화가치도 뛸 확률이 있다.

이렇게 되면 지난해 하반기처럼 각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려는 통화전쟁(환율전쟁)이 또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고마다 유이치 메이지야수다생명보험 수석연구원은 “투기세력들로부터 엔화는 스위스프랑처럼 안전자산으로 취급돼왔다”며 “SNB가 고정환율제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면서 투자할 곳을 잃은 투자자들의 관심은 엔화로 쏠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일본 브라질 등이 스위스처럼 고정환율제를 채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엔화의 경우 시장에서의 하루 거래량이 4조달러에 달하는 등 스위스프랑과 규모면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며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이며,그에 대한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SNB의 발표 직후 브라질의 고정환율제 채택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정환율제는 브라질에 맞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브라질은 과거 고정환율제를 시행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다”며 “대신 헤알화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1.6헤알 아래로 내려가면 파생상품에 대한 과세율 인상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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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제도 어떻게 변해 왔나


외환시장에서 외환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되는 것을 변동환율제라 한다.

이와 달리 외환시세 변동을 인정하지 않고 통화당국이 환율을 고정시켜 놓은 게 고정환율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세계 주요국들은 금과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이를 브레튼우즈체제라 불렀는데 미 달러의 교환비율은 금과 일정하게 유지하고,다른 나라들의 통화 교환비율은 달러에 고정시켰다.

금 1온스는 35달러로 정해졌다.

각국의 달러당 환율은 고정돼 있었으나 상하 1% 범위에서 조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전을 치르며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등 어려움을 겪자 일부 국가들은 자국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것을 미국에 요구했다.

미국이 1971년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다는 ‘금태환 정지선언’을 하며 브렌트우즈체제는 붕괴했다.

미국은 독일 마르크화,일본 엔화 등 각국 통화를 미 달러에 대해 평가 절상하고 금과 달러 교환비율을 조정했다.

이를 스미소니언체제라고 부른다.

고정환율제는 유지됐지만 대신 금과 달러 교환비율이 1온스당 35달러에서 38.02달러로 바뀌었다.

하지만 달러를 기축통화로 한 고정환율제는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금의 생산량은 제한적인 반면 세계경제의 발전으로 교역량이 많아지며 달러 수요는 늘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달러 공급을 증가시킨다면 달러 가치에 대한 신뢰성이 하락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은 1976년 각국이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 중 하나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킹스턴체제를 출범시킨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변동환율제를 택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오랜기간 고정환율제도를 운영하다가 1990년 3월부터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