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소설  '로빈슨 크루소'의 경제학적 의의
대니얼 디포의 장편소설 '로빈슨 크루소'는 그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대강의 내용은 익히 알고 있을 법한 세계적인 명작 중 하나이다.

바다 건너 세상에서 장사를 해 돈을 벌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영국 청년 로빈슨 크루소는 무역상이 되기 위해 아프리카 기니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지만,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는 좌초하고 표류하던 크루소는 어느 이름 모를 무인도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부서진 배에서 약간의 식량과 화약,연장 등을 발견하지만 무인도에서 홀로 목숨을 연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 후 크루소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며 생활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 배 한 척이 무인도에 이르고,이 배에서 발생한 선상 반란을 진압하는 데 일조한 크루소는 선장의 도움으로 무인도에 표류한 지 27년 만에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무인도에서 생존 위한 사투

위와 같은 내용의 '로빈슨 크루소'는 무인도에서 겪는 주인공의 삶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세히 기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이러한 점에서 영국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소설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주인공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해양문학과 모험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도 손꼽힌다. 하지만 이 소설의 가치는 비단 문학적인 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 이론이나 다양한 경제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도 소설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로빈슨 크루소'는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의 어떤 요소들이 경제학 이론과 개념들을 떠올리게 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경제학자들은 무인도에서 크루소의 삶을 '1인 경제' 또는 '자급자족경제'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크루소가 무인도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산자인 동시에 유일한 소비자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일,생선 등 음식의 취득(재화의 생산)은 그가 얼마나 일을 하고 또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또한 하루에 먹을(재화의 소비) 음식의 양도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더 나아가서는 미래를 위해 음식을 비축(저축)해 놓을 것인지도 유일한 소비자인 크루소가 결정할 사안이다.

우선 크루소가 취득할 수 있는 음식의 양은 그가 노동과 휴식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일 노동 대신 휴식을 즐기면 피로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지겠지만,취득할 수 있는 음식의 양은 그만큼 줄어든다. 반대로 휴식을 취하는 대신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더 많은 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휴식을 더 취하면서도 이전과 동일한 양의 음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해 어느 한 쪽을 더 늘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느 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 관련된 두 변수 사이에 역의 관계가 발생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트레이드 오프'라고 한다.

'1인 경제'의 대표적 사례

한편 크루소가 취득할 수 있는 음식량,즉 산출량은 노동시간 이외의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크루소에게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열린 과일을 딸 수 있는 사다리나 고기를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낚싯대나 그물 같은 장비가 있다면 더 많은 음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음식을 취득하는 과정을 거듭함에 따라 경험과 지식이 쌓이고,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인도의 자연환경도 음식량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 적당한 강수량과 일조량은 더 많은 과일을 열리게 하는 요소이고,수온이나 조류의 변화로 무인도 주변의 물고기 양이 전보다 많아진다면 어획량도 그만큼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산출량의 증가를 가져오는 이러한 요인들이 단지 크루소와 같은 '1인 경제'에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현대의 경제체제 속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즉 한 경제의 산출량은 도구나 장비 같은 물적 자본,경험이나 지식 등의 인적 자본,시스템으로 대변되는 기술진보,그리고 자연이 제공하는 자원의 양에 영향을 받고,그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이제는 소비자 입장에서의 크루소의 선택에 대해 알아보자. 만약 그가 하루종일 과일만 딴다면 10개의 과일을 얻고,하루종일 낚시만 하면 10마리의 생선을 잡는다고 하자. 이를 X와 Y축의 평면 위에 나타내면 기울기가 -1인 직선이 그려지는데,이 직선 상의 점들은 크루소가 그날 소비할 수 있는 과일과 생선의 조합을 의미한다.

한편 크루소가 과일과 생선을 각각 일정량 소비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다양할 것이다.

과일과 생선의 수많은 조합 중 같은 만족이나 동일한 효용을 가져다주는 조합들을 연결하면 아래로 볼록하면서 기울기가 서로 다른 무수히 많은 곡선들이 나타나는데,경제학에서는 이 곡선들을 '무차별곡선'이라고 한다. 이때 수많은 무차별곡선 중 하나가 기울기가 -1인 직선과 접하고,이 접점(최적점)에서 크루소의 만족감은 최적화된다.

접점에 나타난 과일과 생선 수가 주어진 조건 하에서 크루소가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재화묶음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경제적인 사고능력을 지닌 합리적 인간이라면,접점이 나타내는 재화의 묶음대로 음식을 섭취할 것이다.

경제학적 사고의 기회 제공

이와 같이 우리는 크루소의 무인도 생활 속에서 다양한 경제이론과 개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경제학적 요소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크루소가 배에서 꺼내온 화약을 여러 곳에 분산하여 보관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이는 한꺼번에 보관할 경우 모든 화약을 일거에 잃어버릴 수 있음을 우려한 행동으로,현대사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보험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얻은 작물을 창고에 축적해 놓는 대목은 우리에게 잉여가치와 저축, 혹은 투자의 개념들을 떠올리게 한다.

'로빈슨 크루소'가 문학적 재미와 함께 경제학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기회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 소설이 시대를 거슬러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소설이 가져다주는 이와 같은 다양한 재미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트레이드오프(trade-off)

어느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은 실업률 상승을 동반하고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은 물가 상승을 수반한다는 필립스곡선이 트레이드 오프의 대표적 사례다.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

만족이나 효용이 동일한 재화의 묶음들을 연결한 곡선으로,소비자는 동일한 무차별곡선 상에 놓여 있는 재화의 묶음들에 대해서는 만족의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