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영혼이다. "
[Cover Story] '영혼' 잃은 애플···삼성·구글·MS에 역전 기회 줄까
IT업계에선 잡스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애플 제국'을 이끌며 30년간 세계 IT업계를 흔들었다.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대표적 제품들은 디자인부터 프레젠테이션까지 모두 잡스의 손을 거쳤다. 지난달 24일 애플은 영혼을 잃었다. 잡스가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것이다. 췌장암과 간이식 수술 등으로 악화된 건강이 끝내 발목을 잡았다. 그의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애플 주가는 7% 가까이 추락했다. 잡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수치다. 잡스 없는 애플은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세계 IT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생아로 태어났다. 입양됐다. 학교를 밥먹듯 빠졌다. 대학생 때는 마리화나에 중독됐고 23살 때 여자 친구를 임신시켰다. 잡스의 젊은 시절이다. 고집불통에 반항아였던 그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것은 컴퓨터였다. 그는 21세가 되던 1976년 학창시절 친구인 워즈니악과 애플을 창업했다. 첫 PC 애플1을 개발하고 1980년 상장할 때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84년 야심차게 내놓은 매킨토시가 시장의 외면을 받으며 시련이 닥쳤다. 고집스러운 성격은 조직의 불화를 불렀다. 결국 이듬해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가 CEO에 오르며 애플에서 쫓겨났다.

잡스가 떠난 애플은 고전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지원을 받은 IBM의 선전으로 애플의 PC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1995년 마지막 분기에는 69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결국 1997년 애플은 잡스에게 SOS를 보냈다.

돌아온 잡스는 애플을 '진흙으로 뒤덮인 포르쉐'에 비유했다. 그는 가장 먼저 세차작업을 시작했다. 50여종의 제품을 4개로 줄였고 직원 65%를 감원했다. 진흙을 털어내자 인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엔진을 교체한 애플은 2001년부터 질주했다.

아이팟은 잡스가 구상해온 '디지털 허브'의 시작이었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PC회사가 아닌 모바일 회사로 변모했다. 애플은 2004년 아이팟 미니, 2005년 아이팟 나노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세계 MP3 시장을 석권했다. 2007년에는 아이폰을 출시해 세계 휴대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아이폰의 혁신적인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는 업계 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 모토로라 RIM을 낙오자로 만들었다. 3년9개월 만에 판매량이 1억대를 넘어섰다. 6월 잡스는 아이클라우드를 선보이며 "10년 전에는 PC가 디지털 생활의 허브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PC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애플은 잡스를 통해 움직이는 조직이다. 잡스 밑에는 독립부서를 지휘하는 9명의 수석부사장이 있지만 자신의 분야 외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완벽히 알지 못하고 숫자와 암호로 된 지시만을 받는다. 모든 직원은 비밀 엄수 서약을 해야 하고 이는 퇴사 후까지 이어진다.

모든 부서를 총괄하고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사람은 잡스뿐이다. 그가 제품 구상부터 인사,의사 결정까지 애플의 모든 것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조직구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폰을 넣는 포장케이스부터 제품광고까지 잡스의 승인이 필요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만큼 회사와 CEO가 동일시됐던 기업도 없다"고 평가했다. 잡스 없는 애플은 상상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애플의 경영은 8명의 수석 부사장이 새 CEO 팀 쿡을 보좌하는 집단 지도 체제로 꾸려질 전망이다. 잡스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경영진에 조언을 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당분간 큰 변화 없이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잡스 외에도 유능한 인재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이패드1 개발과 출시 당시에도 잡스가 병가로 회사를 떠나 있었지만 아이패드는 또 하나의 전설적인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잡스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었기 때문에 고집 센 엔지니어들을 이끌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잇달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잡스가 떠난 이후에도 그들이 애플에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게다가 잡스의 뒤를 이어 CEO 자리에 오른 쿡이 '기업 운영의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통찰력과 조직을 이끄는 카리스마, 달인의 경지에 오른 제품 프레젠테이션 기술 등 잡스의 천부적인 재능까지는 배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컨설팅 회사 엔더리그룹의 로브 엔더리는 "토머스 왓슨 주니어가 사임했을 때의 IBM이나 월트 디즈니가 사라진 디즈니, 빌 게이츠가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등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기업들은 대부분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마법도 함께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분명한 건 잡스의 퇴장이 애플에는 위기이고 경쟁사들에는 기회라는 것이다. 로이터와 블룸버그는 "잡스 없는 애플이 방향을 상실한다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토로라를 인수한 구글과 노키와와 손잡은 마이크로소프트도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최만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