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아인슈타인과 마찰적 실업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ㆍ1879~1955)은 대학 졸업 직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물리학 연구나 대학 강의를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올바른 답이 아니다.

1900년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을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약 2년간을 청년실업자로 지냈다.

그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스위스 경제 상황 때문은 아니었다.당시 스위스 경기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취리히 연방공과대학 졸업생들은 모교에서 쉽게 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학창 시절 잦은 결석 등으로 교수들의 눈 밖에 나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조교로 채용되지 못했다.

다른 대학에서도 강사 자리를 구하지 못한 아인슈타인은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친구로부터 임시직을 제안받기도 하지만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거절한다.

청년실업자 아인슈타인

가정교사와 임시교사 등을 전전하던 아인슈타인은 1902년 베른에 위치한 특허사무소에 하급 심사관으로 취직한다.특허사무소에서 그가 맡은 업무는 특허신청서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외견상으로는 학문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발명가의 논리 중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는 이 일은 그의 논문 작성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을 주었다.근무 후 남는 시간마다 연구에 몰두한 아인슈타인은 1905년 상대성이론을 발표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대학에서 교수직을 제안 받은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서였다.

아인슈타인은 1909년 취리히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안받지만 대학 측이 제시한 연봉이 특허사무소에서 받던 것보다 적어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은 더 높은 연봉을 약속 받은 후에야 특허사무소를 그만두고 취리히 대학 부교수로 취임한다. 그리고 2년 후에는 프라하 대학으로부터 정교수직을 제안 받고 스위스를 떠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1912년 마리 퀴리(Marie Curie)의 추천으로 모교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의 교수직 후보가 되자 사직을 하고 스위스로 돌아오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이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13년 독일 대학으로부터 더 좋은 연구 환경을 약속 받자 모교 교수직을 버리고 다시 스위스를 떠난 것이다.

독일 히틀러 정권에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된 이후에는 미국으로 망명해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가 되는 등 그의 인생은 이직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사직을 하고 다른 대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아인슈타인은 실업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과 같이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실업자가 되는 것은 경기침체로 인해 해고가 되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하거나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실업을 마찰적 실업(frictional unemployment) 혹은 탐색적 실업(search unemployment)이라고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한다는 것은 구직자와 구인자 사이에 서로의 요구조건이 일치하지 않아,즉 일종의 마찰이 생겼기 때문으로 볼 수 있으므로 마찰적 실업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마찰적 실업의 근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마찰적 실업의 원인은?

노동시장에서 구직자들은 동일한 품질을 지닌 상품이 아니며,서로 각기 다른 능력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구인자들이 제공하는 일자리 역시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구인자들은 좀 더 나은 인재를 찾기 위해,구직자들은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탐색행위를 하게 된다.

그러나 탐색행위에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구직자와 구인자 모두 마음껏 탐색행위를 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고, 마찰적 실업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탐색으로 인한 이익이 탐색비용을 초과해야만 탐색행위를 계속하므로 구직자의 경우 높은 임금이 기대되면 실업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구직행위를 계속한다.

탐색비용으로 인해 마찰적 실업이 발생한다는 탐색마찰(search frictions) 이론은 실업문제 연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 경제학 이론으로는 경기가 호황이고 일자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이 발생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부터 탐색이론을 활용한 실업문제 연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1970~80년대에 많은 연구결과들이 발표되었다.

탐색마찰 이론 연구에 크게 공헌한 MIT의 피터 다이아몬드(Peter A.Diamond),노스웨스턴 대학의 데일 모텐슨(Dale T.Mortensen),런던정경대(LSE)의 크리스토퍼 피서라이즈(Christopher A.Pissarides) 이 3명의 학자는 2010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구인-구직의 탐색 한계

아인슈타인의 경우 처음부터 자신을 원하는 세계 모든 대학들의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었더라면 가장 조건이 좋은 대학에 취임해 그곳에 평생을 몸담았을지도 모른다.그리고 대학들이 일찍부터 그의 재능을 알아봤다면 그가 2년 동안 청년실업자로 있다가 특허사무소에 취직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탐색비용 때문에 구인자와 구직자가 탐색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탐색행위를 하지 않는 경제는 효율적이라 보기 어렵다.

결국 마찰적 실업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마찰적 실업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구직자와 구인자 사이의 정보 교환을 원활하게 해 마찰적 실업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지만,중소기업에서는 적합한 인재를 찾지 못해 구인난에 시달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만약 고용센터 등에서 구직자와 구인자를 적절히 연결시켜 준다면 마찰적 실업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마찰적 실업을 줄일 슬기로운 정책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김훈민 KDI 경제정보센터 연구원 hmkim@kdi.re.kr


경제 용어 풀이


마찰적 실업(fictional unemployment)

새로운 일자리를 탐색하거나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실업.구인자와 구직자의 탐색행위에 드는 비용을 그 근본 원인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