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대통령이 강조한 '공생 발전'...시장경제 새 모델 될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제6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발전’이란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오늘 분명히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기존의 시장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탐욕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번영으로 진화하는 시장경제의 모델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구환경 보전과 경제번영,성장과 삶의 질 향상,경제발전과 사회통합,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이 함께 가는 새로운 발전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공생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이라고 강조했다.

공생발전은 자연의 생태계 처럼 다양한 계층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공영한다는 뜻으로,그동안 국정운영 기조로 내세운 ‘공정사회’‘친서민 중도실용’‘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을 한단계 발전시킨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왜 공생발전인가?


청와대의 김두우 홍보수석은 ‘공생 발전’이란 화두가 나온 것은 ‘시장경제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무한경쟁을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그것과 대칭되는 재정투입을 통한 복지국가모델은 각각 양극화와 재정위기라는 한계를 노출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시장만능주의 자본주의가,최근의 글로벌 재정위기는 과도한 복지모델이 문제가 된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탐욕을 바탕으로 특정 계층의 희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도,자칫 한 순간에 공동체의 퇴보와 후대의 부담을 야기하는 복지지상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도 대한민국과 세계가 지향할 목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유럽형 복지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모델로 공생발전이란 개념을 도입했다는 얘기다.

이 개념은 특정한 한 종(種)이 멸종하거나 비정상적으로 번성할 경우 전체 종에 악영향이 불가피한 자연 생태계처럼 우리 사회의 각 주체 중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반영한다.중소기업이 죽으면 대기업도 성장이 불가능하고,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층이 급팽창하면 사회 기반이 무너져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발상이다.

김 수석은 “공생발전이라는 개념은 지금껏 어디에도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처음에 Eco-systemic Development란 개념을 설정하고,이 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공생(共生)’이란 말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요구


이 대통령이 제시한 공생발전은 △양적인 경제발전 뿐아니라 질적인 발전이 중요하고 △그 발전의 결과물은 계층ㆍ지역간 격차를 축소해야 하며 △성장의 과실도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 아니라 일자리를 통해 골고루 분배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따뜻한 시장 경제 등 기존의 시장경제 개조론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지난해부터 강조해온 동반성장과 상생에 생태경제학(ecological economics)개념을 도입한 공생발전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정규직과 비정규직,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생발전의 구체적인 후속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주로 서민층과 중소기업 등의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구체적으론 △산학연계를 통한 고졸자의 ‘선취업, 후진학’ 기회 확대 △비정규직의 차별을 최대한 줄이는 대책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정책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소형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대책 등 기존의 동반성장과 친서민 정책이 더욱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또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한 대기업의 역할도 강하게 요구될 예상이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세가지를 구체적으로 예시했다.

기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책임,일자리를 더 적극적으로 만드는 책임,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책임이다.

이를 통해 “기업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 대통령은 강조했다.

기업생태계의 경우 협력업체 지원을 강화하고,MRO(소모성자재 구매대행) 사업을 개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일자리 창출은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주문한 것이다.삶의 질을 높이는 책임은 대기업의 사회공헌 등 CSR(사회적 책임)활동의 확대를 얘기한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설명했다.

◆기업 스스로 참여하게 해야

공생발전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을 밝힌 ‘자본주의의 새로운 버전’이라는 평가도 있다.그러나 구체성이 결여되고 모호한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선진 복지국가라는 경제성장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수준에 맞는,지속가능한 복지를 만들어 가야 한다”며 “이 대통령이 던진 화두의 방향성은 맞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어느 한 쪽이 희생한다면 지속가능한 성장은 어렵다”며 “대기업도 동반성장에 대한 인식을 갖고 성장 과실의 배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영봉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동반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결과적으로 시장경제의 도태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도나 법이 아닌 도덕적인 강요를 통해 동반성장을 달성하려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며 “시장 원리나 기업의 본질을 왜곡시켜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공생발전의 방법론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가지도자로서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 역시 시장에 있다.이를 임기내 해결하겠다는 의욕이 앞서 정치적 방법으로 이 문제를 풀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의 명령으로 일자리가 생기지는 않는다”며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며, 그 결과로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기업과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기업들이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

----------------------------------------------

‘녹색성장’→‘친서민 중도실용’→‘공정사회’→‘공생발전’

MB노믹스의 진화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매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2008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이란 제목의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 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선진국들도 녹색성장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우리나라가 주도해 나가자는 의도였다.이듬해엔 ‘친서민 중도실용-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를 던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계기가 됐다.이 대통령은 “경제가 좋아져도 가장 늦게 혜택이 돌아 갈 서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지난해 경축사에선 공정사회가 핵심이었다.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의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실천적 인프라”라고 규정했다.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부각된 양극화 이슈를 공정사회 구현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실현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하려는 정책적 판단의 결과였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등 우리 사회전반에 공정사회 바람이 몰아쳤다.

이 대통령이 이번 경축사에서 내놓은 공생발전은 이전의 화두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모두가 일맥상통한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김두우 홍보수석은 “녹색성장은 환경과 성장을 조화시키는 공생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자연과 인간,환경과 성장이 조화로운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또 “친서민 중도실용은 활기찬 시장경제를 육성하는 동시에 시장의 그늘을 걷어내는 공생발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경제에 뒤처진 서민을 중산층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 현장에서 문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서민을 따뜻하게’라는 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공정사회는 개인에 공정한 기회를 주고,공정하게 경쟁하면서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라며 “시장의 공정성과 사회적 배려가 함께 가는 공생발전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