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임대료 안정법' '가격통제칙령', 그리고 '전월세 상한제'
지난 6월 3일 미국 뉴욕시의 한 건물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 건물은 뉴욕시의 주택 임대료 상승률을 정하는 ‘임대료가이드라인위원회’가 열리는 곳이었고, 시위를 벌인 사람들은 뉴욕시에서 주택을 임대하여 살고 있는 임차인들이었다.

그들은 뉴욕시의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아 사회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며, 임대료를 낮추어 임차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뉴욕시에서는 ‘임대료 안정법’이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임대료 안정법’은 높은 임대료로부터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주택들은 임대료가이드라인위원회가 매년 정하는 상승률에 따라 임대료를 책정해야 한다.

이는 자신이 받는 임대료가 주변 시세보다 낮아도 정해진 상승률을 초과하여 임대료를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수도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시에서 주택의 임대료가 정부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주택 임대료 통제

정부가 특정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는 공급량에 비해 수요량이 많아 시장에 초과수요가 발생하거나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존재할 때, 또는 생산자나 소비자를 보호해야 하거나 특정한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 등이다.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면 정부는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는 가격의 최고치를 법으로 규정하는 ‘가격상한제’와 최저치를 규정하는 ‘가격하한제’ 등을 이용하여 시장에 개입하게 된다.

‘임대료 안정법’은 임대료의 인상률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가격상한제’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격상한제를 통해 가격이 통제된 사례는 비단 뉴욕시의 경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상한제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오리엔트식 전제군주정을 통하여 로마제국을 위기에서 탈출시키고 효율적인 통치 체재를 회복시킨 황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탄압하고 로마경제를 붕괴시킨 황제로도 유명하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안으로는 치안에 힘쓰고,밖으로는 변방 민족들의 침략에 대비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제국을 분할통치하기로 결정하고, 자신을 포함한 2명의 황제와 2명의 부황제를 두는 사두(四頭) 정치체제를 시행하였다.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2명의 황제가 각각 맡고,각 황제의 아래에 부황제를 한명씩 두어 국방을 분담하는 사두정치체제는 방위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부작용도 발생하였다.

우선 제국을 양분하여 치안과 국방을 수행함으로써 이전보다 훨씬 많은 병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또한 행정체제도 양분되다보니 관료의 수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연스레 군비 증강과 재정의 확대로 이어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새로운 조세제도를 통해 늘어난 재정 수요를 충당하려고 하였지만,이러한 계획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인플레 잡으려 가격 통제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서기 301년 ‘가격통제칙령’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칙령은 시장에서 유통되는 수많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동결하고,이를 초과하여 물건을 팔거나 사는 사람들은 엄벌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격상한제’를 실시하여 가격을 통제함으로써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려고 했던 것이다.지키지 않을 경우 엄벌에 처한다는 방침 때문이었을까? 가격통제가 실시된 초기에는 인플레이션이 둔화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팔려고 하는 상인들은 점점 사라져갔다.급기야는 가게의 문을 닫고 폐업을 선택하는 상인들까지도 속출하였다.

가격을 통제하여 인플레이션을 잡아보려고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선택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난 것이다.

뉴욕시가 임대료 안정법을 시행한 결과도 ‘가격통제칙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임대료 안정법’의 시행으로 임차인들은 낮은 임대료를 지불하고도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임대인들은 임대료가이드라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일정 가격 이상으로는 임대료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임대인들은 자신의 주택에 문제가 발생하여도 수리나 보수를 하지 않은 채로 방치해두는 경우가 늘어났다.

돈을 들여 주택을 새롭게 단장하여도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이 법의 적용을 받는 일부 지역에서는 슬럼화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임대료 안정법’은 주택의 공급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임대료를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된 건설업자들이 신규 주택의 건설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면서 주택의 공급량이 감소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주택시장에는 초과수요가 발생하게 되었고,뉴욕시로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나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이제 막 임대주택시장에 새로이 진입한 신규 수요자들은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전월세 상한제 부작용 경계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전세값이 상승하고 전세난이 가중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뉴욕시의 주택시장 환경이 다른 만큼 그 내용과 기준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기본적인 측면에서는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료 안정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전월세 상한제’도 정부가 전세와 월세의 가격 상승률을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규제한다는 것이다.

물론 ‘임대료 안정법’이 뉴욕시의 임차인들에게 주거 안정과 이에 따른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정적인 결과도 초래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야 구분 없이 정치권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전월세 상한제’는 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멀지않아 시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차피 시행해야 한다면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뉴욕시가 실시한 가격통제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성공적인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해본다.

정원식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경제 용어 풀이

가격통제


정부가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 안정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으로,주로 수요나 공급이 부족해 가격상승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거나 수요자·공급자 또는 공공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때 실시된다.

가격 상한제(최고가격제)

가격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는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으로,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시장에는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가격 하한제(최저가격제)

공급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가격 이하로는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것으로,가격 하한이 설정되면 시장에는 초과 공급이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