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복지 포퓰리즘, 여론의 심판대에 서다
서울시는 오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실시한다.

'친환경 무상급식의 전면 실시'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이를 '복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며 반대해 온 오세훈 서울시장 간의 지루한 공방이 서울시민들의 손에 넘어간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는 무상급식뿐 아니라 복지정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민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이번 주민투표에서 시민들은 두 가지 무상급식 실시 방안을 놓고 선택한다.

하나는 부모 소득수준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안이다.

# 선택적 복지 VS 보편적 복지

여기에는 두 가지 주장이 대립한다.

오 시장 측에서 주장하는 '복지 포퓰리즘에 대한 심판'과 야권에서 주장하는 '가난한 아이와 부자 아이를 편 가르는 차별급식'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한판 승부인 셈이다.

선택적 복지는 사회복지 대상자를 선정할 때 혜택이 필요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재정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지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선택적 복지는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얼마나 가난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모의 자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수치감을 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보편적 복지는 모든 시민들에게 복지 혜택이 제공돼야 한다고 본다.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누구나 공통적으로 복지 혜택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에 대상자를 제한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복지에 대한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시각을 심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향후 국가 복지정책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주민투표에서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로 결론나면 복지 확대에는 찬성하지만 재정을 고려한 책임있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부와 여당(한나라당)의 정책 노선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특히 점진적 무상급식 확대가 선택되면 무분별한 포퓰리즘 논란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확인되는 셈이어서 여권은 야권의 '무상 급식 · 보육 · 의료 시리즈'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명분을 얻게 된다.

청와대와 정부도 막대한 재정 부담이 예상되는 각종 복지 정책에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 관계자는 "주민투표에서 전면 무상급식안이 부결되면 민주당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쓸 핵심 공약인 무상급식 · 무상보육 · 무상의료와 반값 등록금 등 보편적 복지 구상에 급제동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거나 주민투표율이 33.4%가 안돼 무산된다면 보편적 복지가 힘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와 정부도 내년 예산에 복지 관련 예산을 증액할 수밖에 없어 4대강 지류 사업 등 주요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 경우 민주당이 주장하는 '무상복지 시리즈'가 힘을 받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전략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 정치권 판도변화 '후폭풍'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향후 정치권의 판도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투표에서 단계적 무상급식 실시로 결론나면 오 시장은 지지율 상승은 물론 차기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

오 시장이 속해 있는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끌고 나갈 중요한 힘을 받게 된다.

오 시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당 위원장 경선에 참석해 "주민투표에서 어떤 결과를 받느냐에 따라 총선의 지형이 달라질 수 있으며, 총선 승리시 대선에서도 정권 재창출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 의견이 많거나 주민투표율이 33.3%가 안돼 무산된다면 오 시장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여권의 상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일 "서울시가 수해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이 시급한데도 182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는 백해무익한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며 "오 시장이 내년도 대권을 위해 시장 직분을 내팽개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 막판 변수는 투표율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만 개표가 시작된다.

서울시 유권자 836만명 중 278만명 이상이 투표장에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투표에선 한 표라도 더 많이 득표한 방안이 최종 정책으로 확정된다.

투표율이 미달되면 개표 자체가 무산되므로 주민 의사를 알아볼 방법이 없다.

투표일인 24일이 휴가철인데다 임시 휴일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33.3%의 투표율을 채우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특히 오 시장의 주요 지지 기반인 서초구와 강남구가 최근 수해를 입은 상황이어서 전망은 더욱 부정적이다.

지난달 23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단계적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자가 59%였고, 이들 중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자는 36%였다.

서울시 유권자 수로 환산하면 오 시장 안의 찬성자 중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178만명이다.

투표함을 열기에는 100만명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무상급식 찬반 양측의 투표운동은 참여와 불참으로 노선이 갈렸다.

서울시를 지지하는 보수성향 단체들은 일단 투표율 33.3%를 넘기면 과반수 득표는 무난할 것으로 보고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반면 야당과 진보성향 단체들은 이번 투표 자체가 적법하지 못하다며 투표 거부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허란 한국경제신문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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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발의로 성사된 최초의 '주민투표'

▶ 무상급식 투표 의미는…

오는 24일 실시하는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 주민투표는 국내 처음으로 주민들이 직접 발의해 성사됐다.

2004년 주민투표법이 생긴 이래 세 차례 주민투표가 있었지만 모두 정부가 청구한 투표였다.

이번 주민투표는 한국청소년미래리더연합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가 청구한 것이다.

국민운동본부는 서울시의 단계적 무상급식 방안을 지지하는 대표단체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돼 있다.

주민투표는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정책사항 등을 주민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로 2003년 12월 '주민투표법' 제정에 따라 2004년 7월30일 정식 도입됐다.

주민투표 대상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의 주요 결정사항으로 조례(지방자치단체의 법)에서 구체적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주민투표는 총투표권자의 20분의 1 이상,5분의 1 이하 범위 안에서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의 서명으로 발의된다.

안건이 발의된 지 20~30일 이내 투표가 실시되며,투표권자의 3분의 1 이상 투표와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을 통과시키게 된다.

지금까지 제주도 행정체계 개편을 위한 주민투표(2005년 7월),청주시 · 청원군 통합을 위한 주민투표(2005년 9월),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2005년 11월)가 실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