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11) 제인 오스틴 ‘설득’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고 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북 클럽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지요.

《오만과 편견》은 열 번 이상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아마도,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 같아요.

《오만과 편견》을 재해석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는 소설도(그리고 영화도) 꽤 유명하지요.

작가 제인 오스틴에 대한 관심도 끊이지 않아서 《제인 오스틴의 후회》 《비커밍 제인》 같은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이 출간된 해는 1811년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입니다.

그 후로 그녀는 여섯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에 기대어 만들어진 작품은 훨씬 많습니다.

제인 오스틴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왜 자꾸 하느냐고요?

그러니까,제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겁니다.

그녀의 소설들은,왜,어째서,이토록 사랑을 받을까요?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십대,저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 봤자 뭐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잖아,하고 그녀의 소설을 좀 무시했었지요.

고등학생 때도 하이틴 로맨스 소설을 읽는 친구들을 무시했었는데 그런 편견이 오랫동안 제인 오스틴 소설을 읽는 데 작용했던 것 같아요.

오해하고,헤어지고,갈등하고,그러다 다시 만나는 것.

저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엔 남녀간의 갈등 말고도 더 멋진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인 《설득》도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 같습니다.

주인공 앤은 딸만 셋이 있는 엘리엇 가의 둘째 딸입니다.

얼굴도 예쁘고 생기발랄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물일곱 살이나 된 노처녀일 뿐입니다.

한때 한 남자를 사랑한 적도 있었지만,어머니 대신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주는 레이디 러셀의 설득에 못 이겨 이별을 했지요.

소설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팔 년 전 헤어진 남자가 멋진 대령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십 년 전쯤이었다면 저는 또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둘은 다시 사랑을 이루겠지.그게 뭐.'

물론,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춘다면,그래서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면,그건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었으나 읽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거지요.

연애소설을 읽는 묘미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으로 그 사랑에 공감을 하며 읽는 거겠지요.

만약 사랑이 실패하게 된다면,어떤 오해로 남녀가 헤어지게 된다면,그것이 마치 내 일인 양 슬퍼하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연애소설의 묘미란 바로 엿보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과 비교를 해보자면,추리소설은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그 정보들을 숨겨두고 독자들은 퍼즐을 맞추듯이 그 정보를 찾아내지요.

하지만 그와 반면 연애소설들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주인공들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당사자들은 모르지요.

남녀 둘 다 모를 수도 있고 혹은 그 한 쪽만 모를 수도 있고요.

하지만 독자는 압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차리도록 주인공 혼자 자기의 감정을 모를 때,그 간극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중으로 해석되는 것이지요.

주인공의 마음과 화자의 마음과 독자의 마음이 제각각이 됩니다.

어쩌면,많은 연애소설들이 3인칭 시점인 이유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화자는 그 인물의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독자에게 알려줄까요?

독자는 또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알아차리고 재미있어할까요.

《설득》은 (물론,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도) 두 번 읽을 때 더 재미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엿보는 재미가 달라지니까요.

두 번 읽다 보면 《설득》에서 두 남녀가 사랑을 이룬다는 결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이를테면 마차에 빈자리가 하나 밖에 없는데 거기에 누가 앉을 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에,더 매력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오해가,갈등이 숨겨져 있는지를 알게 되니까요.

저는 《설득》을 읽다 이런 장면들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먼저,소설의 앞부분,앤이 팔 년 전 사랑했던 웬트워스 대령의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입니다.

웬트워스 대령은 결단력과 굳은 심지를 지닌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제가 아끼는 모든 분들이 굳은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라고 말할 때,이 이야기를 들은 앤은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설득에 넘어가 사랑을 포기했으니까요.

대령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는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오해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런 장면과 만납니다.

이번에는 역으로 웬트워스 대령이 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죠.

"희망이 사라져버린 뒤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더 오래 사랑한다는 것입니다"고 앤은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웬트워스 대령은 확신을 하게 되죠.

저는 이 두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려봅니다.

이야기를 엿듣는 앤의 표정과 웬트워스의 표정이 그려질 것만 같습니다.

《설득》을 읽는 동안 저는 내내 서로의 이야기를 엿듣던 앤과 웬트워스가 됩니다.

윤성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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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애인이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돌아오는데…

'설득' 줄거리

제인 오스틴은 목사인 아버지와 이야기 짓기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8남매 중 일곱째 딸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여러 작품을 습작했고 1811년 《이성과 감성》을 처음 정식 출간했다.

이후로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작품을 꾸준히 펴냈다.

《설득》은 그녀가 사망하기 1년 전 발표한 유작으로,남녀간의 현실적인 사랑과 결혼에 대해 탐구한 소설이다.

월터 엘리엇 경은 부인을 잃고 세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첫째와 막내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귀족 근성이 몸에 밴 안하무인의 성격이고,그에 반해 둘째 딸 앤은 현명하고 차분한 여인이다.

하지만 앤은 결혼한 두 자매와 달리 27살 노처녀다.

앤이 노처녀로 남은 이유는 8년 전 그녀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위의 '설득' 때문에 사랑했던 남자 웬트워스를 떠나보낸 까닭이다.

그 후로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홀로 지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해군 대령이 된 웬트워스가 명예와 부를 다 거머쥔 모습으로 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앤에게서 받은 상처를 잊지 못해 그녀를 차갑게 대하고,심지어는 아무하고라도 '결단력 있는 여자'이기만 하면 결혼을 하겠다며 앤의 어린 사돈처녀인 루이자를 만나기까지 한다….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은 '제인주의자들','오스틴 현상'이라는 용어를 낳으며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영화와 드라마로 재생산되었으며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그녀를 꼽기도 했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11) 제인 오스틴 ‘설득’
원제: Persuasion

저자: Jane Austen(1775~1817)

발표: 1816년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설득

옮긴이: 원영선,전신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44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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