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물 폭탄'의 재앙...소 잃고라도 외양간 고쳐야...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서울 등 중부 지역에 쏟아진 집중호우는 70여명의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긴 채 끝났다.

서울시를 비롯한 관계당국은 1907년 기상관측 이래 104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피해가 불가피했던 '천재(天災)'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충분히 방지 가능한 '인재(人災)'였다고 입을 모은다.

방재(防災)를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도시계획,부실한 방재 인프라 등의 원인이 겹쳐 이번 사태가 초래됐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피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방재 시스템을 포함한 전면적인 도시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 기후 변했지만...정부 무대응

6월 발간한 기상백서에 따르면 1990년 기준으로 최근 20년이 그 이전에 비해 12시간 동안 150㎜ 이상의 호우가 내린 빈도가 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당 50㎜ 이상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1970년대 연평균 5.1회에서 2000년대 이후 12.3회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장마가 끝난 이후에도 여름철 내내 집중호우가 내리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의 방재 인프라 및 시스템 등 수해방재대책은 10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서울 시내 배수시설은 대부분 '10년 강우 빈도 · 시간당 75㎜'로 설계돼 있다.

설계 강우 빈도가 10년이라는 것은 10년에 한 번 오는 폭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난 27일 관악구에 시간당 113㎜의 집중호우가 쏟아진 것을 비롯해 강남권에 시간당 7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며 배수처리 능력이 포화상태에 달하자 저지대인 강남역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100년 만의 폭우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게 아니라 기후가 100년 전에 비해 변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 등 관계당국은 변화된 기후에 적합한 방재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도 "최근 들어 기상 현상의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모든 치수시설 기준을 새로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무영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단기 수방대책으로 개인 · 공공시설물에 저류조를 설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심에 내린 빗물을 임시 저장할 수 있는 저장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아파트 지하에 가로 · 세로 10m에 5m 높이의 공간만 있으면 50만ℓ의 빗물 저장이 가능하다"며 "많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방재 컨트롤타워 없어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 및 침수사고에 대처한 정부의 위기관리는 온통 허점투성이였다.

재난 예보 시스템에서 위기대응 매뉴얼 실행까지 제대로 작동된 게 거의 없는 총체적 부실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초구청은 산림청에서 보낸 산사태 경고를 무시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선진국처럼 모든 재난에 대비해 예보와 방재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방재관리 시스템은 국토안보부 내 설치된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주관한다.

재난 예방 및 복구와 관련,다른 부처를 지휘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일본도 방재와 재난 복구를 총괄하는 중앙방재회의가 총리 직속기구로 편성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호우특보는 기상청, 교통통제는 경찰청, 산사태주의보는 산림청에서 내리는 등 위기관리 대책이 부처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장은 "최근 자연재해는 폭우와 산사태 등 복합적인 양상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화 · 선진화된 복합적 재난관리가 필요하다"며 "모든 부처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통합 · 운영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철저한 토자계획 시급

관련 투자가 소홀한 것도 문제점이다.

올해 국가 연구 · 개발(R&D) 예산 14조9000억원 중 방재 분야 예산은 0.6% 수준에 불과하다.

재난 예보의 최전선에 서 있는 기상청의 연간 예산은 선진국의 10% 수준인 30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중 순수 R&D 예산은 4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선진국은 일반적으로 국가 R&D의 5% 정도를 방재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07년부터 하수관 및 빗물펌프장 등의 용량을 증설하는 등 수방 대책을 진행해 왔지만 예산 부족으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습 침수구역으로 분류된 하수관 618㎞를 모두 교체하면 7000억~8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해 단기간에 공사를 마무리짓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근영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 시민 언론 모두 물난리가 난 후에야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요구했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논의가 흐지부지됐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9 · 11 테러 이후 매년 국가 예산의 얼마 이상을 재난재해 대책에 투자한다는 로드맵을 갖췄다"며 "우리도 이번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철저하고 과감한 투자계획을 세워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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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후, 아열대성으로 바뀌었나

[Focus] '물 폭탄'의 재앙...소 잃고라도 외양간 고쳐야...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 동안 서울에 내린 비는 연간 강수량의 30%가 넘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집중호우가 시작된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에 총 530㎜의 비가 쏟아졌다.

서울 연평균 강수량(1450.5㎜)의 35%에 달한다. 26일에 171㎜가 내렸고,27일엔 7월 하루 강수량으로는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사상 최고치인 301.5㎜의 비가 내렸다.

특히 서울 관악구에선 27일 새벽 역대 최대 강도인 시간당 113㎜의 집중호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호우주의보가 12시간 강수량이 80㎜ 이상일 때 발령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시간 만에 그 이상의 물폭탄이 투하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스콜성 집중호우가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장마가 끝난 이후에도 여름철 내내 집중호우가 내리는 아열대성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하경자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2070년까지 지구 온도가 2도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강우강도가 2.5배 강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올해의 집중 호우도 여기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기상청도 이번 집중호우가 기상이변으로 빚어진 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2000년대 들어 한반도가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정관영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2000년대 들어 집중호우가 더욱 좁은 지역에서 강한 비를 뿌리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 기후가 점차 더워지면서 국지성 호우가 아열대 지방에서 내리는 '스콜'처럼 변화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앞으로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