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해킹 일파만파...'미디어 왕국' 흔들리나

[피플 & 뉴스 ] 위기의 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81).

그에겐 항상 '언론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호주 언론기업을 발판으로 위성방송 스카이채널,더 타임스,뉴욕포스트,폭스방송,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미디어 왕국을 일궈냈으니 '황제'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모기업 뉴스코퍼레이션(이하 뉴스코프) 그룹에 속해 있는 기업만도 700여개에 달한다. 왕국도 엄청난 왕국이다.

왕국을 일군 일등 공신은 물론 머독이다.

그는 감각적이고도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왕국을 세우고 그 왕국을 거침없이 확장시켰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 성향도 '미디어 영토'를 넓히는 데 한몫을 했다.

당연히 그의 행보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경계와 시기의 눈초리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월가에서 명성이 높은 WSJ 인수다.

머독은 2007년 WSJ를 손에 넣은 뒤 권위 있는 경제전문지였던 이 신문에 자신의 색깔을 입혔다.

보수적인 정치색을 더 강화하고 뉴욕지역 뉴스를 늘리기 위해 메트로면을 보강했다.

이는 미국 최고의 종합지를 자부하는 뉴욕타임스(NYT)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양쪽의 갈등은 깊어졌다.

하지만 머독은 얄미울 정도로 사업수완을 발휘했다.

금융위기로 대부분 종이 신문이 위축됐지만 WSJ만은 오히려 부수를 늘렸다.

온라인 유료화 이슈화도 NYT에 한발 앞섰다.

초기 오바마 행정부의 반기업적 정서도 정면 반박했다.

중국에 대한 비판의 칼날도 더 날카롭게 세웠다.

당연히 진보성향의 NYT는 심기가 불편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머독이 한순간에 벼랑에 몰렸다.

그를 벼랑으로 몬 것은 뉴스코프 자회사인 영국 일요신문 뉴스오브더월드의 휴대전화 해킹이다.

2007년에 처음 불거진 전화 해킹 사건과 관련해 체포된 전 · 현직 기자는 모두 10명에 달한다.

특히 뉴스오브더월드의 도청 취재를 폭로했던 전직 기자 션 호어가 지난 18일 런던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NYT BBC와의 인터뷰에서 뉴스오브더월드가 인정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해킹행위가 자행됐다고 폭로한 인물이다.

머독은 지난 10일 뉴스오브더월드를 폐간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아들 제임스 머독(뉴스코프 최고운영자)과 함께 영국 하원 청문회에 서는 수모를 당했다.

영국에서 언론사 사주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 나간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머독과 가까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정치적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제임스 머독의 후계작업도 삐걱거릴 가능성이 커졌다.

머독과 기싸움을 벌였던 NYT가 비난의 선봉에 섰다.

NYT는 사설을 통해 WSJ가 정치기사를 강조하다 보니 경제기사가 유치해졌다고 혹평했다.

또 뉴스오브더월드가 해킹 스캔들로 해고되거나 체포된 직원들에게 계속 급여를 지급해 입을 막으려 했다고 보도했다.

머독이 청문회에서 해킹 연루설을 부인하고, 직원들에겐 더 강한 회사를 만들자고 호소했지만 그가 이번 위기를 무사히 넘길지는 의문이다.

권력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부패라는 악취가 스며들면 한순간에 질타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