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독려 자체가 특정 결과 부추길 수 있어”

“투표 홍보 막는 것은 또 다른 규제 만능주의”


8월말 치러질 예정인 서울시의 전면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와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서울시 공무원의 투표 독려행위를 금지하고 나서자 과연 이런 결정이 합당한 것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최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운영 지침을 확정, “투표 참여를 홍보하는 것과 불참을 홍보하는 것 모두 투표 운동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은 주민투표와 관련해 주민들에게 “투표에 참여하라”고 권할 수 없게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만 개표가 가능하다.

따라서 투표율이 어느 정도이냐가 개표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중앙선관위가 공무원의 투표 독려를 금지한 것도 바로 이번 투표의 경우 투표율 자체가 정책에 대한 찬반 성격을 갖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 정당의 의견이 확실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투표 독려 자체가 특정 방향으로의 투표를 유도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표를 아예 못할 경우 주민의 의사를 알 수 없다며 이런 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 공무원의 투표 독려행위를 금지한 선관위의 결정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선관위 결정을 지지하는 쪽은 이번 투표는 투표 독려 자체가 '무상급식 반대'를 부추기는 효과를 낳을 수 있고 따라서 공무원이 이를 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시 공무원들이 시민들에게 투표에 참여하라고 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며 "가치 중립적인 선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서울시는 선관위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주민투표의 경우 불참하는 것 자체가 의사 표현이며 반대로 투표장에 나오는 사람은 대부분 전면 무상급식 반대표를 찍을 것"이라며 "따라서 투표장에 나가고자 하는 것이 특정 사안을 지지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또 다른 한 대학교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독려행위를 단순한 형식 논리로 바라볼 수만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 등에 있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가해 민의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들은 이번 무상급식 찬반투표처럼 투표율에 따라 개표 여부가 결정되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보통의 투표와 똑같이 무조건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 결정에 찬성하는 쪽은 더욱이 이번 투표 결과는 오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좌우하는 만큼 서울시 공무원들이 나서서 투표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반대

노재성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은 "정치적 의견은 원래 투표장에서 표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며 "선관위가 주민투표일을 알리고 독려해야 하는데 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투표 참여 권장은 국민의 기본권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며 "투표 홍보까지 금지하는 것은 또 다른 규제 만능주의"라는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이대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이 투표하라고 한다고 유권자들이 무조건 시가 원하는 방향으로 표를 던질 것으로 보는 것은 시민들의 자율적인 선택이나 판단력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개표를 통해 정확한 민의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상급식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익섭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도 "선관위는 투표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고 문제가 생길 때만 개입하는 것이 옳다"며 "서울시를 비롯한 관련 기관이 주민투표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선관위가 주민투표 독려행위를 허용했는데 이번에는 불허하는 것은 일관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선관위는 2005년 7월 제주도 행정구조 개편에 관한 주민투표와 같은 해 9월 청주시-청원군 통합,11월 방사능폐기물처리장 유치 관련 주민투표에서는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시민의 의견을 정확하게 수렴하는 것'으로 해석해 독려 행위를 허용했다.

생각하기


선관위의 결정은 한마디로 일반적인 국민투표와 이번과 같은 주민투표를 같은 차원에서 보고 투표 독려행위 허용 여부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이런 결정은 기본적으로 옳다고 본다.

이번 무상급식 찬반투표와 같은 주민투표는 무엇보다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 개표할 수 있다는 조건(주민투표법 24조 2항)이 붙어 있기 때문에 투표율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이를 독려하는 것은 결코 일반 선거나 투표에서의 독려 행위와는 같을 수 없다.

다만 문제는 똑같은 주민투표인데도 선관위가 과거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독려행위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지금과 같은 논란과 혼선을 불러온 책임이 선관위에도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전체 투표 수가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에 미달되는 경우 개표를 하지 않는다'는 주민투표법 자체를 개정하든가, 선관위가 주민투표에서의 투표 독려행위 허용 여부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공개하든가 하는 등의 입법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논란도 없어질 수 있고 선관위도 불필요한 오해나 불만을 듣지 않을 수 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가 "헌법재판소의 검증을 받아 투표독려 방법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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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6월19일자 보도기사>

무상급식과 관련한 주민투표 청구가 공표됨에 따라 선거관리위원회가 불법 행위에 대한 특별 단속에 들어갔다.

19일 서울시와 시 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17일 무상급식과 관련한 주민투표 청구가 서울시보를 통해 공표됨으로써 다음달 말 주민투표 발의 때까지 투표 운동은 전면 금지된다.

이는 주민투표 청구사실이 공표된 날부터 발의가 이뤄질 때까지 투표 운동을 금지한 주민투표법 제21조에 따른 것으로,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조치는 일반 선거의 사전선거운동행위 금지와 유사한 것으로,오세훈 시장을 비롯한 시 공무원과 시의원,시민단체 관계자,일반 시민 등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다만 오 시장이나 시의회 민주당 인사 등 특정안을 지지하는 사람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수동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거나 의견 개진만 할 수 있다고 시 선관위는 설명했다.

주민투표가 발의되면 지방의회 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투표 전일까지 투표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오 시장과 공무원들은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를 일절 할 수 없다.

공무원들은 시민이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만 제공할 수 있다.

시 선관위는 이번 주부터 특별기동조사팀과 25개 자치구 상시선거부정단속반 등 100여명의 인력을 가동해 주민투표와 관련한 불법행위를 본격적으로 단속한다.

특히 이번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전면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간 갈등이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