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첫 여성총리 선출

[Global Issue] 포퓰리즘으로 탄생한 잉락 정권 ··· 태국 경제 '안개속으로'
"오빠를 좋아한다면 여동생인 나에게 기회를 주세요. "

지난 3일(현지시간) 태국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그 주인공이다.

잉락이 이끄는 제 1야당 푸어타이당은 이날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500석 중 과반 이상인 264석을 확보해 집권당인 민주당에 압승했다.

잉락의 정치 경험은 사실상 전무하다. 치앙마이대 정치행정학부에서 공부한 후 미국 켄터키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은 것이 전부다.

공직 경험도 없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부동산개발업체의 경영을 맡았을 뿐이다.

정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은 총선 6주 전 일이었다.

그런 그가 오빠인 탁신 전 총리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총리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 때문에 해외 도피 중인 탁신의 부활을 위한 '탁신의 아바타''탁신의 트로이 목마'일 뿐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잉락은 당선 직후 "태국을 위한 많은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다른 당과도 협의해 정책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했다.

# 선심성 공약으로 포퓰리즘 논란

잉락은 쌀값 보증을 위해 농민 전용 신용카드를 발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초등학교 입학생 100만여명에게는 태블릿PC를 무상으로 지급한다고 약속했다.

최저 임금은 40%가량 올릴 방침이다.

민주당도 25% 인상을 내걸었지만 푸어타이당의 선심성 공약에는 못 미쳤다. 대학 졸업자의 최저 초봉은 1만5000바트(52만8000원)를 보장하기로 했다.

이는 5년 전 부정부패로 쫓겨났지만 농민들과 빈민들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탁신의 정책과 비슷하다.

탁신은 채무자들의 빚 상환을 유예해주고,의료제를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블룸버그통신은 잉락의 공약들이 실행되면 인플레이션 위험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태국의 6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4.06%로 최근 32개월 동안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티스코증권의 이코노미스트인 섬프라윈 맨프라서트는 "푸어타이당은 단기간에 공약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며 "국고가 바닥나는 등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태국의 재정적자는 4200억바트로 국내총생산(GDP)의 3.9%에 달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재정 악화 위험에도 잉락 정권은 국민들에게 공약을 이행하라는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레드셔츠-옐로셔츠 재격돌하나

태국의 양대 정당인 푸어타이당과 민주당은 각각 레드셔츠(red shirts)와 옐로셔츠(yellow shirts)라고 불리는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레드셔츠는 도시 빈민층과 농어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야당 세력이며,옐로셔츠는 왕실과 군부 등의 지지를 받는 여당 세력이다.

푸어타이당은 실질적 지도자였던 탁신이 2006년 군부의 쿠데타로 쫓겨난 뒤,민주당이 군부의 음모와 옐로셔츠의 불법 시위 등을 이용해 집권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레드셔츠가 지난해 3~5월 방콕을 점거한 채 격렬한 시위를 벌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번 총선으로 옐로셔츠의 반발은 더욱 격렬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군부는 탁신과 잉락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쁘라윳 육군사령관은 총선 이전에 "탁신 때처럼 잉락이 승리한다면 태국의 정치적 개혁은 있을 수 없다"며 푸어타이당의 집권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해왔다.

탁신의 귀국 여부도 정국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탁신은 올해 12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할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돌아오면 옐로셔츠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어,탁신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 잉락에게 총선 승리를 축하하는 전화를 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적절한 시점과 상황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탁신은 또 기자회견을 통해 "모든 정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같은 정치적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태국의 정치적 성숙은 적어도 20~30년은 지나야 이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레드셔츠와 옐로셔츠의 화합은 당장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며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희경 한국경제신문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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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최장기 군주···혼란때마다 중재나서

주목받는 푸미폰 국왕 행보

[Global Issue] 포퓰리즘으로 탄생한 잉락 정권 ··· 태국 경제 '안개속으로'
태국 국기는 빨강 하양 파랑 3색으로 이뤄져 있다.

빨강은 국민,하양은 불교를 의미한다.

그리고 파랑은 국왕을 뜻한다.

국기에 국왕을 나타내는 색이 들어가 있고,거리 곳곳에 국왕의 사진이 붙어 있는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그만큼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지극하다.

푸미폰 아둔야뎃 현 국왕(84)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 역시 두텁다.

그는 1946년 왕좌에 올랐고,세계 최장기 집권 원수이자 태국 역사상 최장기 재위 군주로 지금까지도 군림하고 있다.

1932년 입헌 군주제 도입 이후 태국은 쿠데타 20번,총리 교체 27번,헌법 개정 18번이라는 정치적 불안에 시달려왔다.

그때마다 푸미폰 국왕은 위기를 타개하고 정국을 안정시켜왔다.

지난해 레드셔츠와 옐로셔츠의 격돌로 정국이 요동치자,그는 새로 임명된 관리들에게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관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래야 국가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고 국민들도 각자 주어진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안정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탁신 전 총리는 이런 국왕의 태도가 탐탁지 않으면서도 국민들의 눈을 의식해 "나와 내 가족은 죽을 때까지 국왕에게 충성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푸미폰 국왕은 1892년 태국 역사상 최대 유혈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중재를 자처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크라프라윤 군부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그는 중재에 나섰고 군부 독재는 막을 내렸다.

이번 총선 결과로 정국이 또 한번 혼란스러워질 것으로 예상되면서,국민들의 이목이 그에게 다시 집중되고 있다.

2009년부터 장기 와병 중이지만 여전히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그의 행보에 따라 결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