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8월부터 가능

[Focus] 소화제·파스·아스피린··· 슈퍼서도 살 수 있을까
이르면 오는 8월부터 동아제약에서 제조,판매하는 '박카스'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박카스는 현행법상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약국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다.

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의약외품 등 세 가지로 분류돼 있다.

전문의약품은 의사 처방전에 따라 약사가 팔도록 돼 있다.

일반의약품은 처방전이 필요없지만 약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고,의약외품은 지금도 슈퍼나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의약외품은 붕대나 소독약 등과 같이 의약품은 아니지만 인체에 직접 닿기 때문에 일반 공산품과 별개로 관리해야 하는 품목을 말한다.

정부는 2008년부터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일반의약품의 약국외 판매'를 추진해 왔다.

늦은 밤 어린아이가 열이 나서 아픈데 문을 연 약국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정책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감기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본격화됐다.

# 복지부 '불가' 입장서 선회

복지부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3일 '국민 의약품 구입불편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결론은 '의약품 재분류'였다.

이렇게 되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종합감기약과 진통소염제 해열제 등은 원천적으로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없기 때문에 슈퍼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이들 약품을 슈퍼에서 팔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결국 복지부가 법 개정이 아닌 의약품 재분류를 선택한 것 자체가 약사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실제 언론 브리핑 당시 손건익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일반약 특수 판매 장소 지정 방안은 약사회가 수용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밝혔다.

심지어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지난 1월 초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성동구약사회 정기모임에 참석해 "여러분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장관의 후견인으로 잘 알려진 이재오 특임장관도 비슷한 시기 자신의 지역구인 은평구약사회 모임에서 "기획재정부가 슈퍼 판매를 추진하는데 내가 못하도록 하겠다.

약사님들은 안심하셔도 좋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민 여론이 크게 악화됐다.

급기야 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진 장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법 개정을 재추진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진 장관은 결국 "오해가 있었다"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를 열고 의약품 재분류와 함께 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 법개정 과정서 논란 일수도

지난 15일 첫 번째 약심이 개최됐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약심에 참석한 의료계 약사계 공익계 대표 12인은 각계 이익을 대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위원장 선출 안건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이날 총 44개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해 슈퍼 판매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약품 재분류는 법적으로 약심 의결이 없더라도 복지부 장관 고시로 가능하다.

이번 결정으로 슈퍼 판매가 가능해진 44개 품목은 소화 · 건위제 액제 15종,자양강장제 12종,정장제 11종,외용제 4종,파스제 2종 등이다.

여기에는 박카스 까스명수 미야리산 마데카솔 안티프라민 등 잘 알려진 일부 품목도 포함됐다.

복지부는 지난 21일에는 두 번째 약심을 열고 문제가 된 감기약 등 가정상비약 4개 품목에 대해 슈퍼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들 4개 품목에는 아스피린과 타이레놀 등 해열진통제와 화이투벤 화콜 판콜 등 종합감기약,베아제 훼스탈 등 소화제,제일쿨파스 등 파스 제품 등이 포함됐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일반의약품을 '약국 판매약'과 '약국외 판매약'으로 나누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나 약사회장 출신 국회의원이 있을 만큼 로비력이 강한 약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실제 국회 통과까지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호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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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11년만에 또 '밥그릇 싸움'

▶재연되는 의·약 갈등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확대를 계기로 의사와 약사 단체 간 '밥그릇 싸움'이 재연되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11년 만이다.

얼핏 약을 슈퍼에서 팔든,약국에서 팔든 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일 '국민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방안'을 발표할 때 내놨던 카드가 '약사법 개정'이 아닌 '의약품 재분류'였기 때문이다.

사실 복지부는 박카스 등 일부 일반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돌리는 대신 사후피임약이나 비만치료제 등과 같은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주는 방안을 세웠었다.

물론 약사들을 달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의사 처방전 없이 약사가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 늘어 의사의 권익이 침해된다.

의사 단체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난 이유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법 개정이 아닌 의약품 재분류라는 방법을 택한 것 자체가 약사회의 로비력에 복지부가 밀렸기 때문"이라며 "국민이 의약품을 쉽게 살 수 있도록 하려면 먼저 법을 고쳐 약사들의 의약품 독점 판매권부터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대한약사회는 지난 21일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비만치료제 응급피임약 천식예방약 독감진단시약 등 40여개 성분의 전문의약품을 의사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지방분해억제 비만치료제인 제니칼의 경우 일부 국가에선 일반약으로 분류돼 있다"며 "다른 비만치료제보다 안전성이 뛰어난 만큼 일반약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이 같은 약사회 요구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대한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는 "응급피임약(노레보정)을 남용하면 메스꺼움과 유방 부전,전신 무력감과 현기증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데다 청소년의 성문란과 성병 확산을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 · 약 단체는 이미 대국민 선전전에 들어갔다.

약사회 측은 "제니칼보다 간 독성이 훨씬 큰 타이레놀도 일반약으로 풀자는 게 의사들"이라며 "안전성과 국민 편의 중 무엇이 우선인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의사협회 측은 이에 대해 "안전성을 이유로 일반약의 약국외 판매의 발목을 잡더니 갑자기 위험성이 더 높고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한 전문약을 일반약으로 풀자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맞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