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께 잔액 모두 고갈"

예상보다 10년 앞당겨질 듯
[Focus]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국민연금
국민연금이 완전히 고갈되는 시기가 정부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10년 정도 앞당겨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관련 연구단체 및 학계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08년 재정 추계 당시 기금 고갈 시기를 2060년으로 추산했지만 현재는 이보다 10년 앞선 2050년께 잔액이 모두 사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정 추계는 국민연금 재정 전망 및 이에 따른 제도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5년마다 시행하고 있다.

2003년 처음 실시됐고 2008년 재정 추계 때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국민연금 개혁이 이뤄졌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가량인 2000만여명이 가입된 강제 연금보험 상품이다. 보험자는 정부다.

공무원연금 · 군인연금 등 다른 공적연금 가입자나 소득이 없는 주부 학생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전 국민이 매달 꼬박꼬박 정해진 보험료를 국민연금공단에 납부하고 있다.

대신 만 60세가 넘으면 죽을 때까지 연금을 탈 수 있다. 이렇게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수급자는 300만명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처음 시행된 시기는 서울올림픽이 개최됐던 1988년이다.

처음 도입 당시 국민연금에 대한 일반 국민의 거부감이 상당했다. 국가가 사실상 세금처럼 돈을 걷어가는데 이를 돌려받는 것은 수십년이 지난 이후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적인 합의에 따라 국민연금은 낸 보험료보다 많이 돌려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현재 국민연금은 낸 돈의 1.5배가량을 향후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국민연금은 나이가 만 60세가 넘더라도 최소 10년 이상 가입해 보험료를 냈어야만 연금 수급권이 생긴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지 불과 23년 지났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연금을 받아가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기금의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2010년 말 현재 323조원인 기금 잔액은 2040년께 2400조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재정 추계 때 65세 이상 사망자 수는 2009년 19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으나 실제로는 16만9000여명에 그쳤다.

반면 출산율은 2006년(쌍춘년)과 2007년(황금돼지해) 두 해만 반짝 상승했을 뿐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합계출산율(출산 가능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2008년 1.19명,2009년 1.15명 수준을 기록했다.

보험금을 받는 사람은 늘어나는 반면 보험료를 납부해야 할 사람은 줄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이 물가에 연동해 지급액이 결정되는 만큼 최근 물가 급등으로 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기금을 운용해 얻을 수 있는 공단의 수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2008년 국민연금 재정 추계는 2006년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2007년 실시한 것"이라며 "그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기금운용 수익률을 7.9%로 추정했지만 실제 수익률은 6.75%로 1.15%포인트 차이가 났다.

연평균 수익률이 1%포인트 낮아지면 국민연금 고갈 시기는 5년가량 앞당겨진다.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두 차례 개혁을 실시했다.

퇴직 전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소득대체율이라고 하는데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될 당시 이 비율은 70%였다.

1998년 70%에서 60%로,2007년엔 60%에서 단계적으로 40%로 낮추도록 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조치는 근본적인 개혁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낸 돈보다 많이 돌려받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험료를 지금보다 더 내거나 나중에 받는 연금액을 줄여야 하는데,내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표심 잡기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으로 인해 이 문제가 장기간 방치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국민연금을 통해 임대주택 건립 등 복지 사업을 확대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어 시한폭탄의 시계 바늘이 더 빨라질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이호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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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주주권 강화 논란 '후끈'

"기업 견제 필요" vs "되레 주주이익 침해할수도"

[Focus]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국민연금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의 하나는 '주주권 강화'다.

국민연금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안전자산인 채권 위주로 기금을 운용해 왔지만 2016년까지 전체 자산의 3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국내외 기업이 적지 않은 데다 투자 비중도 계속 커질 예정이어서 이 문제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슈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위원장 곽승준)가 지난 4월26일 개최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및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곽 위원장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제안했다.

곽 위원장의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론에는 동반성장,기업지배구조 및 사회적 책임 등의 문제도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른바 사회적책임투자(SRI)를 실현하기 위해 주주권을 통한 기업 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인 '캘퍼스(CalPERS)'가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투자기업의 주가가 올라갔다는 사례를 근거로 내세운다.

학계에서는 반대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예일대 법경제학자인 로베르타 로마노 교수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와 기업의 성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SRI나 ESG(환경 · 사회적책임 · 지배구조)와 기업가치 및 주가와의 상관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신(新)관치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전체 위원 20명 중 위원장을 제외한 당연직 위원 5명이 각 부처 차관급이다.

전문가로 참여하는 한국개발연구원장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도 국책 연구기관장이다.

20명의 위원 중 8명이 관료 또는 친정부 인사로 채워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