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공유지의 비극'에 대처한 조선인의 지혜
경제학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소유권이 없는 공유지 또는 공유자원이 과다소비로 인해 고갈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유자원이란 재산권이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의미한다.

소유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 호수의 물고기,생수의 취수원이 되는 지하수 등은 공동 소유 자원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공유자원인 주인 없는 목초지의 경우 저마다 자유롭게 양들을 풀어 놓고,풀을 뜯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목초지는 초과 이용으로 인해 황무지로 변하게 된다.

이것을 생물학자 하딘(Garrett Hardin)이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 부르면서 이 용어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산림자원 역시 공유자원으로써 비극을 치른 바 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경작지와 건축용 목재가 필요했다. 또한 겨울철에는 난방용 연료로 더 많은 땔감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흔히 무주공산이라 불리는 주인 없는 산의 수많은 나무들이 벌목되기 시작했다.

1차적으로 나무들을 벌목해 땔감과 건축용 목재로 사용했고, 나무들을 베고 남은 땅은 일구어 밭이나 논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추세는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남에 따라 점점 가속화돼 농토가 부족한 사람들은 무주공산을 화전(火田)을 통해 농토로 바꾸는 추세가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공유자원이 가진 재화의 특성에 기인한 바 크다. 공유자원이란 '비배제성'과 '경합성'을 가지고 있다.

배제성이란 타인을 소비로부터 배제시킬 수 있는 재화의 특성을 말하고,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더 많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가 줄어드는 재화의 특성을 말한다.

따라서 공유자원은 타인의 소비를 배제하지 못하는 비배제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한 사람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가 줄어드는 경합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먼저 소비하는 사람이 임자인 재화가 돼 버린 것이다.

공유자원이 가진 이러한 특성이 남용을 가져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푸르른 국립공원은 언제 형성된 것인가?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일제 시대를 꼽을 수 있다.

일제는 한국 산림에 대해 임적조사(林籍調査)를 실시했다. 임적조사는 산림자원의 소유권을 조사한 것으로 산림자원을 크게 국유림,사유림,주인 없는 산림 등으로 구분했다. 이에 일제는 주인 없는 산림으로 분류된 산림을 민간에게 넘겼는데,이 때 무조건 소유권을 이양한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나무를 심는다는 조건을 붙여 양도했던 것이다.

# 공유자원에 소유권 부여

일제가 우리의 산림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성공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공유자원의 비극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공유자원의 이용자와 이용량을 직접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공유자원의 이용 한도를 정한다든가,일정 기간 이후에는 이용을 금지하는 등의 방식이 바로 이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공유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유자원의 소유권을 부여하게 되면 소유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재산인 공유자원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유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공유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역시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공유자원을 이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원리이다.

이렇게 되면 공유자원의 원활한 이용과 함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공유자원의 범위가 방대하고 모호해 소유권을 행사하기 어렵거나 소유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거래 비용이 클 경우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하는 마지막 방식은 공유자원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간의 자치기구를 만들어 남용하는 것을 막고,합리적인 이용 방법을 상호 합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일제의 해결 방식은 두 번째 방법을 이용한 것이다.

일제는 조선의 산림자원을 회복시키려는 본연의 의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여부는 차치하고,조선의 산림자원에 소유권을 부여해 황폐화된 우리의 산림자원을 복원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 산림훼손 막는 '송계' 결성

그렇다면 조선사람들은 자신들의 금수강산이 훼손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는가?

우리의 금수강산은 일본인이 아니고서는 절대 회복되지 못할 뻔했던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았다. 조선 후기 사람들이 공유자원인 산림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세 번째 방법인 자치기구의 결성이었다.

송계(松契)가 그것이다. 송계란 마을 및 친족의 삼림을 보호하고 이용하기 위해 결성한 조직을 말한다. 이를 통해 마을의 산림을 타지인이 이용하는 것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이용하는 데 있어서도 일정한 규칙을 정해 이용케 하였던 것이다.

자치기구를 통해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러한 방식은 앞선 두 가지의 해결 방식보다 비교적 최근에 규명되었다.

공유지의 비극을 이와 같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협력 체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엘리너 오스트롬(Ellinor Ostrom) 교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이미 공유지의 비극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협력 체제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용어 풀이

공유지의 비극


소유권이 없는 공유지 또는 공유자원이 과다 소비로 인해 고갈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경합성

한 사람이 더 많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가 줄어드는 재화의 특성을 말한다.

배제성

타인을 소비로부터 배제시킬 수 있는 재화의 특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