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시녀 자처한 중수부는 폐지하는 게 마땅"

"정치권 비리 파헤치자 국회가 서둘러 없애려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폐지할 것인지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검찰 등 법조계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검찰관계법소위원회가 최근 중수부의 수사기능 폐지 방안에 대해 합의하자 검찰은 저축은행 수사를 잠정 중단하는 등 크게 반발했다.

정치권은 사분오열 상태다.

여야의 입장차이가 있는데다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찬성과 반대로 목소리가 갈리는 형국이다.

여기에 청와대까지 나서서 사실상 폐지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중수부 폐지 문제는 실타래처럼 얽혀 버렸다.

김황식 국무총리 역시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중수부 존폐 문제는 업무 분장 · 조직구조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 쪽에 맡겨두는 게 좋겠다"는 견해를 보였다.

중수부는 지난 1981년 만들어져 대검 공안부와 함께 검찰총장을 보좌하는 양대축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사정 중추기관으로 장영자-이철희 부부 어음사기사건, 5공 비리수사,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수사, 한보 수사 등 대형 권력형 비리, 정치권 비리, 대형 경제사건 등을 수사해 '성역 없는 수사'의 대명사로 비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표적 사정, 편파수사 시비가 끊이지 않으면서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기도 했고 그 때마다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돼왔었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을 알아본다.

찬성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검찰개혁소위 위원장인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중수부 폐지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쥐고 임명하는 검찰총장에게 직접 수사권을 줄지 말지의 문제"라면서 "현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마치 자기 휘하의 직할 부대처럼 운영하면서 청와대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일선 검사들의 수사 독립성과 정치적 외합을 막기위해 검찰총장을 선출(미국) 하거나 총장에게 직접 수사권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수부를 폐지하면 대형비리 수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인력배치는 검찰총장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역시 반박했다.

민주당은 중수부 폐지 대안으로 법무부 장관 밑에 특별수사청을 두고 수사청장은 대통령이 아닌 위원회를 구성해 임명하는 보다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민주당은 중수부 폐지는 이미 여야간에 합의한 것인데 청와대가 한 마디 하고 나서니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뒤늦게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비난하고 있다.

폐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중수부가 살아있는 권력에는 칼날을 겨누지 못하고 지난 정권에 대해서만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수사를 해 권력의 시녀임을 자처했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이들 중에는 현 정부에서도 청와대와 검찰이 모종의 거래를 통해 중수부 존치로 방향을 잡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반대

검찰은 최근 진행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정치권에까지 미치자 정치인들이 방패막을 치기위해 서둘러 중수부 폐지안에 합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저축은행 비리 수사중에 중수부 폐지를 결정한 것은 전쟁중인 장수의 목을 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이런 비리 수사를 중수부가 하지 않으면 서민들을 등친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처벌하겠느냐고 반문한다.

한나라당 여상규 의원은 "일부에서 중수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는 특수수사청청의 수사 대상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없고 검찰의 일부 기능을 국회 통제 하에 두는 셈"이라며 특수청 신설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형 경제사범 수사 등에서 순기능을 발휘한 중수부 수사를 인정하되 이에 대한 합리적 통제 장치를 둬야 한다"며 중수부 직접 수사권 폐지도 반대했다.

중수부 폐지 문제는 정부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국회가 직접 나서는 것은 3권 분립원칙에 어긋나는 만큼 사개특위의 결정은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황식 총리의 언급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 역시 중수부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부산저축은행의 온갖 부정과 비리로 자신들이 억울하게 예금의 일부를 찾지 못하게된 만큼 중수부가 계속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해 철저히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생각하기

중수부 폐지는 비록 그동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중수부가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권에서 제기되어 왔다.

야당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비리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되면 으레 '정치적 보복'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검찰이 집권 세력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여야가 바뀌면 이번에는 반대의 현상이 생기면서 중수부는 정치권에게는 애증의 존재처럼 자리 잡아왔다.

이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간 중수부의 수사 행태는 분명 비난 받을 소지가 다분했던 것이 사실이며 권력의 시녀 노릇을 부분적으로 해왔던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정치권 역시 이런 중수부의 입장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해왔고 이 또한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정치권이 중수부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특수수사청의 수사대상에 정치인이 빠져 있는 것이나 상설 특별검사를 국회가 임명하겠다고 하는 것 등을 보면 정치인들을 검찰 수사권으로부터 '성역화'하려는 시도가 읽히기 때문이다.

중수부는 지난 10년간 모두 93명의 국회의원을 기소했다. 1년에 10명 가까운 정치인 비리를 적발한 셈이다.

그리고 이번에 저축은행 수사에서 정치인들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사개특위가 전격적으로 중수부 폐지에 합의했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하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너무도 다분하다.

이 문제는 과거 수십년간 끌어온 것이고 18대 국회 들어서도 오랫동안 공방을 벌이며 결론을 내지 못하던 사안이었는데 묘한 시기에 전격적으로 처리됐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의 핵심은 중수부 자체의 존폐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검찰수사가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키고 공정성을 띠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제도 개선 논의 역시 이런 생각에 바탕에 두고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생산성 있는 토론이 가능하고 진정한 사법제도 개혁도 가능하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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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6월8일자 A14면

청와대가 국회 사법개혁특위 검찰관계법 소위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결정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후 민주당은 반발했고,한나라당은 혼란에 빠졌다.

한나라당 소장파와 민주당은 청와대를 강력 비판한 가운데 한나라당 지도부와 자유선진당 등 일부 야당은 '폐지 신중론' 쪽으로 돌아섰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며 국회 결정에 항의하고 있어 중수부 폐지 카드가 이제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7일 중수부 폐지 문제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었다.

중수부 폐지안을 밀어붙이자니 여론의 역풍이 두렵고,그렇다고 사개특위 소위에서의 여야 합의 사항을 뒤집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중수부 폐지 반대 쪽으로 흐르고 있다.

사개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10명 중 6명이 폐지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한 명만 찬성이고 나머지 3명은 유보였다.

한 위원은 "중수부 폐지에 국민이 절대적으로 찬성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개혁을 하자는 것인데 국민과 따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당 고위 관계자도 "당 내부 의견이 엇갈려 한쪽으로 얘기하기 힘들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중수부 폐지를 강행하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도 "필요하다면 당론을 만들겠지만 여야가 사개특위를 하고 있으니 결론을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냈다.

박수진/김정은/허란 한국경제신문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