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로서 독립선언서를 기초하였고,제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는 무수히 많은 투쟁과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환생하여 한국에 오게 된다면 그의 생각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지금 한국에서는 시위의 패러다임을 뒤바꿀 새로운 시위 문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오후 5시 서울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는 이색적인 '책 읽기 시위'가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의 이행을 촉구하고자 하는 집회였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무력대립으로 치닫던 기존의 시위와 달리 학생들이 모여서 기증받은 책을 읽으면서 집회를 함으로써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서울대 조국 교수,방송인 김제동 씨,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등이 기증한 책 400여권으로 시위가 시작되었는데, '돈 걱정 없이 공부하고자' 하는 시위의 취지에 공감한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책을 기증하면서 2시간이 지나자 800여권의 책이 모인 것이다.

한편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서울대의 '공부 시위'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법인화 추진 방식의 비민주성을 규탄하며 행정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한 서울대생들은 점거 중에도 공부하며 학생의 본분을 잃지 않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 네티즌들의 지지를 얻었다.

일부 교수는 학생들의 사정을 배려해 직접 점거 현장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러한 '책 읽기 시위'와 '공부 시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우선,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시위 문화를 창출해냈다는 것이다. 과거 군사 정권 시절에는 폭력 시위가 불가피했다.

정권에 반감을 갖는 시민들을 투옥하고 고문하는 시대상황 하에서는 무력을 동반하지 않는 시위는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이다.

명저 [시민 불복종]을 저술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호소], [매사추세츠의 노예제]? 등에서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사회가 민주화되고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면서 폭력 시위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폭력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도 자신들의 의지를 얼마든지 관철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두 시위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진행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 목적과 의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위문화의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대의 '공부 시위'는 정치의 생활화가 이상적으로 구현된 예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시위를 하기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과 시위를 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생활화는 더 많은 학생의 참여를 촉진시키고 학내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시위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바다 건너 튀니지에서 일어난 재스민 혁명에서와 같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가 시위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반값 등록금' 시위도 '돈걱정 없이 공부하고 싶당'이라는 트위터 모임을 통해 계획되고 전파되었으며 서울대의 '공부 시위'도 트위터를 통해 여론의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결국 새로운 시위문화는 시민 의식의 성숙과 더불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러한 시위 문화를 보존하고 정착시켜 우리 사회의 시위 패러다임으로 만들어나가는 데 있다.

모든 사회문제들이 이와 같이 평화적이고도 효과적으로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지하에 있는 제퍼슨 씨가 즐거운 마음으로 입장을 번복하는 날이 있길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서정원 생글기자(상산고 3년)chyun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