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大를 위해 小를 희생?… '악마의 선택' 뜨거운 논쟁
미국 루이지애나주 정부가 미시시피강 범람으로 인한 대도시 피해를 막기 위해 '악마의 선택'을 했다.

강 중류의 인공배수로 수문을 열어 물길을 돌린 것이다.

그대로 두면 200만명이 사는 주도(州都) 배턴루지와 뉴올리언스 등 대도시가 피해를 입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인구 5만명의 소도시와 농경지를 물에 잠기게 하는(희생시키는) 선택을 했다.

언론들은 이를 '악마의 선택(devil's choice)'으로 불렀으며,이 같은 선택이 정당한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 루이지애나州 고뇌의 결정

미국 중부에 내린 기록적 폭우로 4월 중순부터 남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이 불어났다.

날이 따뜻해지며 겨울에 쌓인 눈까지 녹아내리면서 미시시피강 상류인 일리노이주 카이로에서 하류의 멕시코만에 이르는 635마일(약 1022㎞) 지역,63개 카운티 400만명의 주민들이 영향을 받았다.

오하이오강이 미시시피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하류에 위치한 테네시주 멤피스는 지난 10일 밤 강 수위가 범람 수위보다 4.4m 정도 높은 14.5m까지 치솟았다.

이번 홍수로 미시시피주에서만 1000여채의 가옥과 건물이 침수되고 12만㏊가 물에 잠겼다.

또 루이지애나에서는 옥수수와 콩 재배지 4856㏊가 침수되는 등 남동부의 비옥한 옥수수 재배지대와 면화 밀 콩 쌀 경작지가 피해를 입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테네시주에 이어 11일에는 미시시피주의 14개 카운티 지역을 연방 재해구역으로 선포해 긴급 침수피해 복구작업에 연방정부 자금과 장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존 미첼 라일리 미시시피대 경제학과장은 "미시시피강 범람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4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14일 주도 배턴루즈와 최대 도시 뉴올리언스의 수몰을 막기 위해 소도시와 농경지를 침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키자는 것이었다.

미시시피 수계를 관리하는 미 육군 공병대는 이날 배턴루즈 북쪽 70㎞에 위치한 미시시피강 모간자 방수로의 수문 125개 가운데 1개를 열었다.

모간자 방수로의 수문이 열린 것은 1973년 이후 38년 만이다.

범람하는 미시시피강의 물길을 서쪽으로 틀어 하류 동부에 위치한 배턴루즈와 뉴올리언스를 구하기 위해서다.

배턴루즈와 뉴올리언스에는 20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배수로 개방으로 물줄기를 남서쪽으로 틀면서 모건시티와 후마 등 인구가 적은 소도시와 농작물 경작지 1만2000㎢의 침수가 불가피해졌다.

모건시티와 후마의 인구는 모두 2만5000여명이다.

대규모 인명 피해와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소도시와 농경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미국 언론은 이를 '악마의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경작지 침수로 인한 국제 곡물가격 상승과 미시시피강 하류에 있는 메기 등 담수어 양식업체들의 피해를 예상했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이 지역에서 일자리 창출에 큰 역할을 하는 선상(船上) 카지노업계 종사자 1만3000명이 실직하고 카지노업계에서 들어오는 매달 1400만달러의 세입도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 악마의 선택 정당했나

미국 현지에서는 루이지애나 주정부가 인구가 많은 대도시를 살리기 위해 인구가 적은 소도시와 농촌을 희생하기로 한 것을 두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소도시와 농촌 주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고 재산 피해에 대한 사후 처리와 보상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않은 채 수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정부의 선택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또한 주정부가 정유업계를 위해 농촌을 희생시켰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뉴올리언스와 배턴루즈 등 미시시피강 유역에는 미국 휘발유 생산의 13%를 차지하는 11개의 정유 시설이 있는데 물길을 돌리지 않았다면 정유 시설이 침수되는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게 주정부의 설명이다.

주정부는 효용성의 기준에 입각한 가치 판단,즉 '공리주의'에 따른 결정을 내렸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시키는 것이 정당한가의 문제는 도덕의 오랜 논란거리다.

이런 상황은 국내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던진 질문과 유사하다.

질주하는 전차의 기관사가 그대로 가면 인부 5명을 치게 될 상황에서 인부 1명만 희생시킬 수 있는 비상선로가 있을 때 방향을 트는 게 정의일까 틀지 않는 게 정의일까.

우리가 종종 부딪치는 현실의 문제다. 비슷한 사례로 몇 해 전 국내 신종플루 백신 접종 과정을 떠올릴 수도 있다.

신종플루가 급속히 번지는 과정에서 샌델이 말하는 정의로운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부터 접종시켜야 맞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먼저 신종플루를 치료할 의료진부터 접종하고 군인 학생 등의 집단에 백신을 처방한 뒤에야 노인 어린이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정부가 정의롭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정부가 전염 가능성 차단이란 공리주의적 기준에 충실했기 때문에 더 큰 전염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샌델은 다수를 위해 소수를 죽여도 된다는 식의 극한 상황을 예로 들며 공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샌델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인부 5명도,다른 1명도 죽게 해선 안 된다면서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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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선택(?)한 '바비 진달' 누구길래?


'악마의 선택'을 한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백인이 아닌 피부색이면서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로 거론된다는 점 등 때문에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린다. 진달 주지사는 1971년 루이지애나주 배턴 루지에서 태어났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1995년 정계에 입문했고 2004년과 2006년 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2007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54%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2008년 8월에는 허리케인 '구스타브'가 미국 남부지역에 상륙했을 때 대규모 대피작전을 진두 지휘하면서 위기 대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학 시절 힌두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진달은 줄기세포 연구,낙태,동성애 등을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다.

젊은 나이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내며 인종과 문화적 장벽을 극복했다는 점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면이 많다.

진달이 유명해진 사건은 아니러니컬하게도 오바마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부터다.

진달 주지사는 2009년 2월 오바마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 후 공화당을 대표해 반론을 펴 공화당 내의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진달 주지사는 아직까지 대선에 출마할 뜻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공화당 내에서는 진달 주지사가 대중적 인기 때문에 잠재적인 대선 주자 혹은 공화당 대선주자의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